[인터뷰] 조선희 작가

기자 출신 소설가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세 여자’에게 숨결 불어넣어

공직 거치며 12년 만에 탈고

“여유 갖고 숙성시킨 작품”

 

조선희 작가는 “여성 혁명가들은 이중의 소외를 당했다”며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주의 계열 인사는 주목의 대상이 아니었고, 여성은 여자라는 이유로 조명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조선희 작가는 “여성 혁명가들은 이중의 소외를 당했다”며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주의 계열 인사는 주목의 대상이 아니었고, 여성은 여자라는 이유로 조명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기 ‘세 여자’가 있다.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식민국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모진 풍파와 역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받아낸 이들이다. 조선희 작가의 장편소설 『세 여자』는 1920~50년대 여성 혁명가와 그의 남자들을 중심축 삼아 굴곡진 한국 공산주의운동사를 보여준다.

여성 혁명가들은 경성, 상해, 모스크바, 평양을 무대로 당대를 치열하게 살아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오랫동안 조명 받지 못했다. 조 작가는 세 여성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여성 혁명가들은 이중의 소외를 당했어요.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주의 계열 인사는 주목의 대상이 아니었고, 또 여자라는 이유로 조명되지 못했죠. 우리나라 역사라는 게 과거 백년 이전에는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거의 없잖아요. 여자들에게 중요한 역할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시대였던 거죠.” 조 작가의 말이다.

허정숙을 발견한 게 작품의 출발점이 됐다. 정숙이란 인물은 조 작가의 소설적 영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신여성이자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숙은 어느 모로나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중국에서 항일 투쟁을 한 뒤 북한으로 넘어가 북 정권의 사법상과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비롯해 팔순 가까운 나이에도 중앙위 대외사업 담당비서 등을 지냈다. 5개 국어가 가능한 정숙은 북한 사회에서 보기 드문 인텔리였다. 조 작가는 “정숙은 결혼도 여러 번 하고, 성이 다른 아이도 낳았다”며 “우리 세대에는 신여성 하면 나혜석 뿐이었다. 그래서 허정숙을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놀라웠다”고 당시 소감을 전했다.

 

정숙과 세죽, 명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책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1925년, 세 여자는 청계천으로 추정되는 개울가에 발을 담근 채 해사한 미소를 짓고 있다. 반듯이 자른 단발머리 신여성들의 쾌활함이 엿보인다. “1925년은 한국역사에서 어두운 시대였는데 이 사진은 너무 밝고 화사했어요. 여자들의 얼굴에는 구김살이 없어보였고 경쾌한 분위기가 굉장히 이채로웠죠. 그 시대가 요즘말로 하면 ‘헬조선’ 같은 시대였는데 ‘청년기를 맞은 여성들에게도 밝고 화사한 한 때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1920년,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사회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상해를 찾은 정숙과 세죽은 그곳에서 고려공산당 청년동맹을 이끌던 박헌영을 만난다. 이듬해 세죽은 헌영과 결혼하고, 귀국 후 정숙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여성운동 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결성하는 한편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해 활동한다. 이때 이화여전을 다니던 고명자가 참여하며, 이들 셋은 조선공산당의 여성 트로이카로 불리게 된다. 1930년대 후반부터 세 여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격랑의 시대를 맞는다.

세 여자는 뚜렷한 주관을 가진 혁명 동지였지만 여성관에 있어선 차이를 보였다. 특히 정숙은 가부장제에 맞서 성차별 비판에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말로 하면 정숙은 ‘사이다’ 같은 발언으로 ‘걸크러시’를 뿜어내는 존재였다. 동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지트키퍼가 된 세죽은 부엌을 벗어나지 못했고, 정숙은 이에 불만을 표했다.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체제를 뒤엎자고 혁명하는데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건 이율배반이야. 남편과 아내 사이라도 말이야.”(『세 여자 1』 134쪽)“차별 없이 평등하자면서 이게 뭐야? 조선공산당이나 공산청년회나 간부 중에 여자가 한 명도 없잖아. 멀쩡히 같이 토론하다가도 밥 먹을 때 되면 여자들한테 밥해오라 그러고.”(『세 여자 1』 134쪽) “혁명가라는 남자들이 남녀문제에 가서는 얼마나 고리타분한지 알아?”(『세 여자 1』 83쪽)

 

『세 여자 1·2』를 발간한 조선희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세 여자 1·2』를 발간한 조선희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당시는 봉건 가부장제의 인습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여자가 주체적으로 자기 인생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대였어요. 그래서 시대에 비춰봤을 때 세 여자는 대단히 주관이 강한 여자들이라고 할 수 있죠. 집안에서 바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다들 유학을 가고 자기 인생을 개척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죽이나 명자는 남자들한테 휘둘리는 인생을 살았죠. 그에 비하면 정숙은 굉장히 자기 주체성이 강한 여자예요. 요즘 세상에도 그런 여자는 드물다고 할 수 있죠. 허정숙은 남자를 다 자기가 선택했고 사랑이 식으면 결혼제도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자유롭게 관계를 끝내고는 새로운 연애를 했어요.”

일제 강점기의 조선, 중국·소련 등지에서의 고려인 강제이주, 남한과 북한, 북한의 김정일 정권 수립과정, 해방 후 남한의 혼란기, 6·25 한국전쟁까지 이어지는 폭넓은 현대사는 세 여자와 남성 파트너를 통해 그려진다. 정숙, 세죽, 명자는 혁명의 여정에서 남편을 잃고, 투옥되고, 고문을 당하고, 아이를 잃고, 결국에는 시베리아에서, 평양에서, 경성에서 죽음을 맞는다. 

여성을 중심으로 한 역사소설 『세 여자』는 12년 만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조 작가는 2005년 허정숙을 발견하고 소설을 시작한 뒤, 허정숙과 주세죽, 고명자에 관한 자료를 찾아 읽으며 집필에 들어가려던 다음해 9월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을 맡게 됐다. 그러면서 역사책과 평전 등 소설 관련 서적과 노트가 라면박스에 봉인됐다. 3년 후 원장 직을 내려놓은 뒤 초고를 완성한 후, 수정을 거쳐 마무리하면 되겠다 싶을 때쯤 다시 서울문화재단 대표직(2012~2016년) 제의를 받게 된다. 소임을 다 한 후 4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정말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에 원주 토지문화관에 두 달 머무르며 소설을 탈고했다.

 

조 작가의 왼쪽 팔에는 반려묘에 대한 애정으로 고양이 문신이 새겨져있다. 작가는 3마리의 고양이과 함께 지낸다고 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조 작가의 왼쪽 팔에는 반려묘에 대한 애정으로 고양이 문신이 새겨져있다. 작가는 3마리의 고양이과 함께 지낸다고 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조 작가는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머릿속엔 항상 인물들이 돌아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예기치 않은 일들로 소설 완성이 늦어졌지만 덕분에 좀 더 여유를 갖고 작품을 숙성시킬 수 있었다. “내가 겪지 못한 역사 공간을 상상하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실존인물이 어디서 좌절하고 희망을 가졌는지 이해하는 건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일이에요. 그런데 공직생활 때문에 강제적으로 시간이 확보됐죠. 아니면 기자 출신이라 성질이 급해서 뭐 하나 오래 못 끌고 있어요. 12년 동안 한 가지 프로젝트를 끌고 있는다는 건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진심이 담긴 찬사들은 조 작가의 소설을 한층 빛낸다. 평화운동가 고은광순은 “분단이 강요한 70년 역사의 침묵을 세 여자가 깼다. 비로소 현대사에 숨구멍이 뚫렸다”고 평했다.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은 “세 여자의 삶은 고단한 한국현대사이며 여성의 삶 자체가 정치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여성주의 정치사이기도 하다”며 『세 여자』는 뛰어난 여성주의 역사소설이라고 말했다.

“소설을 집필하며 그녀들과 함께 백 년을 함께 산 기분이었어요. 소설을 쓰는 동안 한 시대를 탐사하느라 즐거웠지만 비통한 일들에 많이 울었습니다. 여자들은 씩씩했고 운명에 도전했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죠. 그분들의 삶을, 그분들 세대의 삶을, 그 시대의 역사를 위로하며 보내드립니다.”

<조선희 작가>

△1960년 강릉 출생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1982년 연합통신 기자

△1988년 한겨레신문 편집국 문화부 기자

△1997년 한겨레신문 출판 ‘씨네21’ 편집장

△2006~2009년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2012~2016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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