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강남역 10번 출구서 ‘여성혐오살인 공론화 시위’ 열려

‘왁싱샵 살인사건’ 계기로 다시 모인 여성들 “여성살해 그만”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남역 살인사건/지난 지 어느덧 일여 년인데/역시나 변함없이/강력범죄 계속 일어나네/각종 여혐 콘텐츠/야동 찍는 것도 아니고/돈벌이에 여자를 마음대로 성 상품화/뉴스 제목 피해자부각/여혐 악플 성희롱하고/말을 해도 안 쳐들으니 시위 나왔다/여자라고 죽이지 말아요!”

6일 오후 3시 강남역 10번 출구 일대. 천막 아래 모여앉은 여성 110여 명은 쉴 새 없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메시지는 하나였다. ‘여자라는 이유로 죽이지 말라.’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여러 손팻말을 든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여러 손팻말을 든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들은 지난달 5일 한 30대 남성이 강남구의 왁싱업소를 찾아가 주인 여성을 살해한 사건을 ‘여성혐오 살인’으로 규정하고,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 모였다. 피해 여성의 신상은 지난 5월 모 유명 BJ의 인터넷 방송을 통해 유포됐다. 범인은 이 방송을 통해 피해 여성이 인적이 드문 주택가에서 홀로 업소를 운영한다는 점 등을 미리 파악하고 범행을 계획했다고 한다. 많은 여성들이 ‘또 여자라서 죽었다’ ‘여자인 나도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분노를 고백한 이유다. SNS에선 ‘#왁싱샵여혐살인사건’ ‘#남BJ시청남_여혐살인사건’ 등 이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한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고인의 외모를 품평하거나, ‘섹시한 여자가 남자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서 혼자 있었다니 무모했다’처럼 피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돌리는 이들도 있다. (관련기사▶ [여성살해 멈춰라] “왁싱녀 예뻤냐” 댓글로 고인 두 번 죽이는 남성들) ‘#그렇다고여자를죽이면안됩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도 등장했다. “페미니스트들이 강간하지 말라, 성차별하지 말라를 넘어서 사람을 살해하지 말라는 기초적인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 거냐”라는 푸념도 눈에 띄었다.

몇몇 여성들은 발 빠르게 거리 시위를 기획했다. 미리 온라인 카페를 열어 토론 끝에 시위 이름과 구호, 시위가 등을 정했다. 참가자는 여성으로만 제한했다. 이들이 강남역 10번출구를 시위 장소로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지난해 강남역 인근 빌딩에서 한 남성이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라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를 성토하는 상징적 장소가 됐기 때문이다. 

 

시위 주최 측이 배포한 스티커, 구호와 시위가 안내문. ⓒ이세아 기자
시위 주최 측이 배포한 스티커, 구호와 시위가 안내문. ⓒ이세아 기자

오후 4시. 한낮의 열기에도 시위대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몇몇은 ‘KOREA : THE SAFEST COUNTRY ONLY FOR MEN’ ‘내 현실은 당신의 판타지가 아닙니다’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2015년 강력범죄 피해자의 88.9%는 여성이다’, ‘여성 1인 가구의 46.2%는 안전에 대해 불안하다고 느낀다’ ‘강력범죄 가해자는 남성이 98%로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피해자는 여성이 84%로 많았다’ 등의 손팻말도 눈에 띄었다. 시위 중인 여성들의 모습을 몰래 촬영하는 남성들을 제지하느라 바삐 움직이는 여성들도 보였다. 이날 시위 장소 옆엔 서초구에서 관리하는 푸드트럭들이 늘어서 있었다. 줄을 서서 음식을 주문하던 사람들은 시위대를 지켜보며 “젊은 것들 참 할 일도 없다”며 혀를 차기도 했고, 시위대가 배포한 구호집을 받아들고 찬찬히 읽어 내려가기도 했다. 시위대가 한목소리로 ‘거위의 꿈’을 개사한 ‘여성의 꿈’을 불렀다. “난 꿈이 있어요/포기할 수 없는 간절한 꿈/여자란 이유로 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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