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유 피사로
카미유 피사로 <빨래 너는 여인>

-표백제- 

                    김영산

빨래터 둠벙에서 아낙들이

즐겁게 빨래하던 기억은 옛 동화다

옥시 가습기에 아이들이 어른들이 죽었지만

빨래는 하얗게 하얗게 말라간다

화공과를 나와 공장에 나가던 내가

처음 만난 사장은 표백제를 만든

깡마른 절름발이 오십대였다

(중략)

 

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햇살가득한 집이 경이롭기만 하다. 이 찬란한 햇살속에서 무어라도 하얗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 사는 일에 치여 기쁨과 경외심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아무 의심없이 빨래마다 표백제를 넣어 빨고, 온갖 합성세제로 뭐든 하얗고 깨끗하게 한다는 광고와 선전물을 믿고 기댄다. 점점 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이쁘게 보여지는 것만 원한다. 마음으로 보는 눈은 뒷전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건에 밀려 사라지는 숱한 사건중의 하나가 가습기 사건이다. 이는 마음을 잃어버린 업주가 저지른 간접살인이다. 이 사건을 아파하던 시인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되찾아야 할 것은 무언지 묻는다. 김영산 시인은 마음을 잃어버리는 이를 흔들고,  깊이 깨어나길 바란다. 똑똑한 거 같지만 멍텅구리같은 현대인의 허점이 무언지 보여준다. 눈에 보여지는 것만 믿는 어리석음이 왜 이리 슬프게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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