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고소득 방송인 보수 공개

남녀 최고 연봉 5배 차이 

여성 방송인 공개서한으로

BBC에 즉각적 조치 촉구

“모든 여성 직장인의 문제…

전 분야 개선 필요" 목소리도

 

BBC 여성 방송인 연봉 1위를 기록한 클라우디아 윙클먼(왼쪽)과 BBC를 상대로 한 공개서한과 소송을 주도한 제인 가비. ⓒBBC Radio
BBC 여성 방송인 연봉 1위를 기록한 클라우디아 윙클먼(왼쪽)과 BBC를 상대로 한 공개서한과 소송을 주도한 제인 가비. ⓒBBC Radio

“방송인의 보수 내역이 담긴 연례 보고서는 우리가 수년 동안 의심해왔던 사항을 확인시켜주었다. 바로 BBC의 여성들이 같은 일을 하는 남성들보다 적은 보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우리도 좋은 보수를 받았으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평등의 시대이고 BBC는 자신의 가치에 자부심을 가진 조직이다.”

고소득 방송인 96명의 명단과 보수 내역이 담긴 연례 보고서를 공개 후 임금 성차별 논란에 휩싸인 영국 공영방송 BBC에 여성 방송인들이 23일(현지시간) 공개서한을 통해 비판을 제기하며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토니 홀 BBC 사장은 “2020년까지 임금 성차별을 바로잡겠다”고 발표했지만 여성 방송인들은 공개서한에서 “BBC는 이 문제를 수년 동안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우리 모두는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래 세대의 여성들이 이러한 차별을 만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꺼이 만나서 이러한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공개서한은 44명의 이름으로 발표됐다.

BBC가 공개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충격적이다. 이번에 공개된 15만 파운드 이상 연봉자 총 96명 중 여성은 34명으로 3분의 1에 불과했으며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여성은 두 명 뿐이었다.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은 BBC 라디오 아침 프로그램 진행자 크리스 에번스가 220만 파운드를 받은 반면 여성 1위인 클라우디아 윙클먼의 출연료는 에번스의 5분의 1 수준인 45만 파운드에 그쳤다.

성차별 뿐 아니라 인종차별도 문제가 됐다. 명단 중 백인이 아닌 인물은 총 10명뿐이며 대부분 명단의 하위권을 차지, 이들의 연봉을 모두 합한 금액이 1위인 에번스의 연봉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공개서한에 그치지 않고 일부 여성 방송인은 BBC를 상대로 법적 소송까지 준비 중이다. BBC 라디오 ‘우먼스 아워’ 진행자인 제인 가비를 비롯해 10여명이 소송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비는 20일 방송 오프닝에서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지만 BBC는 생각했던 대로 고용인에게 평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방송인뿐만 아니라 정치계에서도 BBC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테레사 메이 총리는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BBC 사건을 거론하고 “경영자라면 같은 일을 하는 여성과 남성이 어떤 보수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을 면밀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임금을 받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도 "BBC는 임금 성차별에 대해 자체분석이 필요하다“며 공개적으로 항의한 여성 방송인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BBC는 선도하며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BBC의 변화를 촉구했다.

BBC를 둘러싼 이번 논란을 방송인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직장 여성들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소피 워커 여성평등당 대표는 가디언 칼럼에서 “여성들이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은 그 가치가 낮게 평가되기 때문”이라며 “임금 성차별은 모든 산업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여성들이 당면한 구조적 장벽의 증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의 앤 맥클보이는 “BBC의 임금 성차별 문제는 모든 직장 여성들에게 충격요법이 되어야 한다”면서 “모든 일터에서 변화를 요구하고 나서야 할 순간”이라고 말했다.

임금 성차별은 지난 해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이슈 중 하나다. 이후 독일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을 위한 임금공개법을 제정, 7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도 이번 사건을 게기로 임금 성차별 철폐를 위한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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