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진잼, 시발비용, 빡침비용 등  

‘돈 아끼지 말자’는 말로 잘못 해석

기업들 ‘욜로 마케팅’ 남발 

“계획 없는 욜로소비 경계해야 

 

SNS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탕진잼’ ⓒ케이툰
SNS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탕진잼’ ⓒ케이툰

“YOLO!” 박겨레(26)씨가 올 들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박씨는 지난 6월 중형차 한 대를 구매하면서도 “욜로”를 외쳤다. 한 번 뿐인 인생,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최근 월세를 얻어 독립까지 했다. 승용차 가격은 약 2500만원. 1000만원을 할부로 한 달에 33만원씩 3년을 내야 한다. 한 달 월세 50만원, 차세 33만원, 보험 13만원까지 약 100만원이 ‘욜로비용’으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인생은 한 번 뿐(You Only Live Once)’라는 뜻의 욜로는 지난해 말 국내에 알려져 급속도로 퍼졌다.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경쟁에 지친 이들은 한 번 사는 인생, 지금의 만족을 위해 살자는 욜로식 가치관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적금을 해지하고 여행에 떠나거나 승용차를 구매하는 등 ‘순간을 위한 소비’가 젊은층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탕진잼’ ‘시발비용’ ‘빡침비용’ 등 소비를 부추기는 용어도 유행이다. ‘탕진잼’은 소비하는 자체의 즐거움을 강조한다. ‘시발비용’은 현재의 분노를 조절할 방안으로 소비를 사용한다. 야근 후 홧김에 탄 택시, 스트레스받아 지른 치킨, 상사한테 혼나고 지른 립스틱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20~30대 10명 중 8명은 욜로 라이프를 긍정적으로 봤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20~30대 8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4.1%가 “(욜로는) 긍정적이다”라고 답했을 정도다. 지마켓이 946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설문을 한 결과, 응답자의 93%도 “올 들어 본인을 위한 소비를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욜로 트렌드가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욜로라는 말이 국내에 들어오며 변질됐다고 주장한다. ‘미래보다 현재 행복을 추구하라’는 의미가 ‘돈을 아끼지 말라’는 식으로 잘못 해석되며 사치와 낭비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욜로 열풍에 휩쓸려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가 후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박 씨는 “차를 구매했을 당시에는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앞으로 부담해야 할 금액을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이혜영(28)씨 또한 욜로식 결단을 내렸다가 좌절을 겪었다. 이씨는 최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후 해외여행에 다녀왔다. 적금을 깨고 남은 돈은 옷과 화장품 쇼핑, 네일아트, 피부미용 등 자신에게 투자했다. 이씨는 “금방 이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해 걱정된다”며 “남은 건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 자랑한 사진뿐”이라고 한탄했다.

SNS와 미디어도 이 같은 분위기 조성에 한 몫하고 있다. 18일 기준 인스타그램에 욜로라는 말을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약 5만9000건의 게시물이 나오는데 지갑과 구두, 가방, 음식, 운동화 등 소비를 과시하는 게시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난해 방영된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편’에서도 한 여행객이 인사 대신 욜로라는 말을 사용해 화제가 됐다. 

기업들도 욜로 마케팅을 남발하고 있다. “욜로족을 위한 이벤트” “떠나라 욜로족” “욜로 신발” “욜로 가방” 등 욜로가 마치 구매력을 상승시키는 마법의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음료부터 호텔과 해외여행 패키지까지 쓰임새도 다양하다. 이는 ‘인생은 한 번뿐이니 마음껏 지르세요’라는 뜻으로 소비 욕구를 자극한다.

 

시원한 백화점을 찾은 쇼핑객들로 서울 시내 백화점이 붐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시원한 백화점을 찾은 쇼핑객들로 서울 시내 백화점이 붐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대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욜로세대 소비성향에 대해 “저성장·저물가·저금리 시대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고도성장기에는 가계경제에서 ‘투자’ 비중이 높았지만 최근처럼 이자와 물가가 낮은 상황에서는 무언가 아끼고 희생하며 투자한다는 것은 부질없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씨 또한 “부모님 세대에는 한 푼 두 푼 모아 아파트를 사기도 하고 했지만 요즘은 연봉 4000만원 대기업 직장인도 10년을 모아야 서울에 아파트를 살까 말까 한다. 미래 걱정보단 현재에 충실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회초년생의 경우 무작정 소비하고 보는 욜로형 소비패턴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무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임채란씨는 “요즘 20~30대의 소비패턴을 보면 필요 없는 물건을 홧김에 구매한다든지 기본적인 소비습관이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일정 금액씩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재무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범준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책임연구원 또한 “1인 가구는 저축과 투자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며 “소득 대비 지출이 많다는 것은 미래와 노후에 대한 준비가 소홀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나홀로족’도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반대편에서는 다른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청취자들이 보내온 영수증을 보고 경제조언을 해주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은 “욜로하다간 골로간다”를 모토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공식 방송 한 달 만에 전체 팟캐스트 순위 6위, 코미디 부문 순위 1위까지 올랐다.

김생민은 청취자가 자신의 직업과 평균수익, 자산규모 등을 적은 자기소개서와 함께 한 달간 쓴 영수증을 보내주면 이를 신랄하게 컨설팅해준다. 그는 영수증에서 불필요한 낭비요소를 발견할 때마다 “스뜌삣!(Stupid)”이라고 외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스뜌삣을 적어 신용카드에 붙여뒀다” “뭔가 사려고 할 때마다 스뜌삣이 환청처럼 들린다”는 말도 나온다. 

26년 차 개그맨 김생민은 1992년부터 자동이체 적금을 한 달도 빼먹은 적 없는 재테크 전문가다. 많지 않은 고정 출연금으로 약 10년 동안 10억원을 모았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아끼고 모으다 보니 어느새 전문가로 불렸다”고 말한 그는 오늘도 과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스뜌삣!!” “스몰 스뜌삣!!!” “울트라 맥심 스뜌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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