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내 하얏트 리젠시 제주에서 아트제주2017을 주최한 아트제주(주) 강명순 대표가 호텔 로비의 야자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아트제주㈜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내 하얏트 리젠시 제주에서 아트제주2017을 주최한 아트제주(주) 강명순 대표가 호텔 로비의 야자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아트제주㈜

아트제주2017 주최한 강명순 아트제주(주) 대표

“세계적 관광지인 제주도가 저가관광지가 되고 있어 안타까워요. 국내 허니문관광객들이 찾았던 제주도를 앞으로 외국 허니문관광객들이 찾도록 하는 게 저의 꿈입니다.”

7월 중순부터 제주도는 연중 최고성수기에 접어들었다. 밀려드는 관광객에 숙박·항공료 등 가격이 치솟아 평범한 관광객들이라면 부담이 될 수 있는 때다. 일부러 이 시기에 5성급 호텔 객실 50개와 연회장을 빌려 예술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아트페어를 개최한 이가 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관광경영인 강명순(48) 아트제주(주) 대표다.

강명순 대표가 육지와 대륙을 넘나들며 준비한 ‘아트제주2017’이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내 하얏트리젠시제주호텔에서 개최됐다. 올해 2회를 맞이한 아트제주는 홍명표 조직위원장을 중심으로 제주도 안팎의 화랑들과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제주를 대표하는 이왈종 화백과 백은주 작가가 특별전으로 참여했다. 또 아이들이 직접 미술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키즈스타’도 마련했다.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영화배우 하정우·구혜선 씨의 작품 특별전도 마련하고 방송인 허수경이 진행하는 작가 인터뷰를 볼 수 있는 자리도 꾸몄다.

강 대표는 행사장 안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았다. 손님맞이부터 갤러리들의 전시, 행사 총괄까지 직접 챙기다보니 눈앞에 있다가도 금세 사라지고는 다시 불쑥 나타났다. 날렵한 몸과 강한 눈매가 주는 인상까지, 축지법을 쓴다고 해도 믿을 것만 같았다.

호텔 로비에 마련된 아트제주 안내데스크에는 강 대표와 닮은 여성 두 명이 있었다. 5자매 중 셋째 딸인 강 대표의 동생인 강명선·강명옥 씨다. 행사 자금이 부족하기도 하고 큰 행사를 치르기 위해 팀워크가 절실했던 언니의 ‘지시’로 일을 맡게 됐다고. 이렇게 큰 일을 벌이는 언니를 말리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당연히 말렸다”고 했다. 그러나 셋째의 고집을 꺾지 못한 가족들은 이제 일당백으로 일을 해내고 있다.

“해외 허니문관광객 찾아오는 고품격 관광지로”

행사 이틀째 늦은 오후에야 강 대표는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겠다”며 기자와 처음 마주앉았다. 예술공부를 해본 적 없다는 그는 “18년 째 서귀포 중문관광단지의 다른 특급호텔에서 아트샵을 운영하는 관광업 종사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트샵을 포함해 관광업을 20년 넘게 하다 하다보니 관광객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새로운 상품을 고민하는 게 저의 일이죠. 관광객들은 새로운 볼거리를 찾는데 제주의 관광상품은 자연경관이나 농수산물 등에 머물러 발전이 없어요. 특히 호텔 안에 있으니 장기간 체류하는 VIP 관광객들을 만나게 되요. 기념품을 파는 것도 의미가 없어요. 문화상품과 예술품을 찾는 거죠. 그 흐름 같은 게 보여요. 그들이 보고 즐길만한 문화상품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는 제주도가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보니 수준높은 관광객들은 해외에 빼앗기고 이제는 학생들 수학여행이나 중국관광객들이 찾는 저가관광지로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고 했다. 과거 국내 허니문관광객들이 제주도를 찾았듯이, 외국 허니문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고품격관광지가 돼야 하고, 이를 위해 예술과 휴양의 접목을 통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렇게 해서 강 대표가 생각한 것이 아트페어다.

 

아트제주2017을 주최한 아트제주(주)의 강명순 대표 ⓒ아트제주㈜
아트제주2017을 주최한 아트제주(주)의 강명순 대표 ⓒ아트제주㈜

“휴양의 차원을 달리하고 싶어요. 자연경관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작품 감상이 힐링이 될 수 있어요. 단순히 새로운 볼거리라는 의미 이상입니다. 예술치유라는 개념이 있듯이요. 또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입해 안방에, 거실에 그림을 걸어 실컷 보고 즐기면서 시간이 지났을 때 경제적 가치로 돌아온다면 좋은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풍요도 주고 투자도 하는 관광이죠.

아트페어기 홍콩이나 싱가포르, 마이애미비치 등 유명 관광지에서 열리며 성황을 이룬 것을 보고 제주에도 충분히 그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했다. 국내에서는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에서 지자체가 주도해 열고 있다.

“다른 지자체들보다 제주도가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다른 지역은 관광객이 중요하지 않아요. 여긴 달라요. 뿌리는 도민에게 있지만, 예술작품에 구매력이 있는 관광객이 저절로 찾아온다는 점이 특징이죠. 좋은 화랑들도 이들을 만나러 오기 위해 투자를 하는 거죠. 시장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봐요. 작년에는 7월 초에 아트페어를 열었는데, 올해는 중순으로 옮겼어요. 작은 차이 같지만 최고 성수기인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휴양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 관광객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대신 부담이 훨씬 커지는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그들이 쉽게 올 수 있도록 장소도 호텔로 유지하고 있고요.”

중국도 강대표는 고려하고 있다. “홍콩 등지에서는 예술품 시장이 금융시장과 같이 움직인다. 즉 투자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지금까지 중국인들이 제주도에 엄청나게 투자했다. 그 중 50% 이상이 부동산 투자인데 이젠 예술품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번 행사에서도 중국 예술가들의 참여를 대폭 확대할 예정이었으나 사드 갈등 때문에 무산됐다고.

 

아트제주2017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마산아트센터 김창수 대표로부터 전혁림 화백의 판화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아트제주2017
아트제주2017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마산아트센터 김창수 대표로부터 전혁림 화백의 판화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아트제주2017

“1년 내내 지자체·기업·화랑·컬렉터 설득”

행사를 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사업비를 마련하는 일이다. 다른 지역 아트페어와 달리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없이 스스로 헤쳐가고 있다. 올해는 공모전에서 선정돼 약간의 지원을 받지만 부족하기는 매한가지다. 초기여서 홍보를 많이 하면 할수록 좋지만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돼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가 지원할 만한 일이지만 그들에게 아트페어가 무엇인지 이해시키는 게 너무나 어려웠어요. 멀리 외국 사례까지 보지 않아도 다른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앞장서서 주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아트페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니까요. 기업 후원을 받아야 하지만 막상 그들은 도(지자체)가 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지원을 이끌어내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아트페어를 잘 아는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국내외 유명 화랑이나 컬렉터들을 설득해서 제주도까지 오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랑 측으로서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주최 측에 내는 참가비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고가의 작품을 제주도까지 가져오기 위해 운반비를 지불하고, 전시하고, 인건비도 써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작품이 팔릴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이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면 주최측이 우수한 컬렉터를 포함해, 수백 수천만원에 이르는 작품에 지갑을 열 수 있는 소비자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강 대표는 4일간의 행사를 알리기 위해 1년 내내 국내외 전시회를 쫒아 다니고 화랑을 찾아다니면서 명함과 브로슈어를 배포했다. 제주도 내에서는 오픈클래스도 매주 열었다. 도민들이 작품을 구매하려면 미술의 기본지식부터 알려 미술시장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겠다 싶었다. 기반을 닦는 작업이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이왈종 작가, 세월호와 종군위안부 치유활동으로 알려진 김선현 차의과대학 미술치료대학원장, 고양국제플라워아트비엔날레 전시감독이자 2017아트제주 김종근 운영위원장, 홍가이 한국외대 교수, 안영길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했다.

“누구나 즐기는 꽃축제 같은 아트페어 되길”

강 대표의 노력 덕분에 갤러리 대표, 전시기획자, 작가 등 행사 참가자들은 올해 행사가 지난해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고 호평했다. 강 대표도 좋은 갤러리, 좋은 작가들이 왔고, 구매도 생각보다 많이 이뤄졌다고 했다.

“지금은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다니면서 아트제주에도 참여해달라고 거의 부탁하듯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갤러리들의 신청을 받아 선별하고 그들이 가져올 작품도 엄선하고, 외국 갤러리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국내 작품들이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좋은 유통채널이 되죠.”

10년이면 그렇게 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 대표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면서 “5년 내 가능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2회를 치른 아트제주는 아직 흰 캔버스 같은 상태다. 강 대표가 전시장과 행사 무대, 제주도 바다에 그리고 싶은 그림은 수 백가지도 넘을 터. 시장과 투자, 사업성을 얘기하던 강 대표에게 아트제주가 어떤 행사로 발전하길 바라느냐고 묻자 뜻밖의 답변을 내놨다. “꽃축제처럼 만들고 싶어요.”

“성공적인 행사가 되려면 즐거움이 기반이 돼야 해요.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예술작품이라는 어려움과 부담감에다 수십, 수천만원이라는 비싼 가격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질 수 있다는 점을 가장 경계하고 있어요.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것이 기본이라고 봐요. 꽃축제처럼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아이들 손잡고 와서 구경할 수 있는 문화가 됐으면 합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