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 

보석디자이너 꿈 키우던 스물아홉

치열한 경쟁서 한국지사 계약 따내

2002년 국내에 낯선 브랜드였던 러쉬

15년 만에 매장 70여곳 둔 기업으로

기혼자, 자녀둔 직원에게 복지 편중되자

비혼 선언 직원에게 축의금 유급휴가

2~3년차 직원이 신입사원 면접도

직원들 개성·인권 존중하니

능력 출중한 인재들 몰려

 

러쉬코리아 우미령 대표는 “러쉬의 핵심가치는 인권·동물·환경 3개가 어우러진 사회의 선순환”이라며 “직원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를 차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러쉬코리아 우미령 대표는 “러쉬의 핵심가치는 인권·동물·환경 3개가 어우러진 사회의 선순환”이라며 “직원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를 차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비혼’을 선언했더니 회사에서 축의금과 유급휴가를 선물받고, 5만원의 반려동물 수당까지 준다면? 축의금은 결혼해야 받을 수 있고, 아기를 낳아야 가족수당이 나오는 것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우미령(44) 러쉬코리아 대표는 “러쉬는 이상한 일을 하는 곳”이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채러티 팟’ ‘더티 스프레이’ 등의 코스메틱 제품으로 유명한 영국 브랜드 러쉬코리아(이하 러쉬)는 우 대표의 말처럼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 임직원들은 서로를 “러브님” “쥬시님” 등 제품명으로 부르고 신입사원은 회사 임원이 아닌 2~3년차 사원들이 면접을 보고 뽑는다. 우 대표는 ‘러쉬 스타일’의 조직 문화를 만들고 안착시킨 일명 러쉬의 ‘베이비시터’다. 2002년 러쉬를 국내에 들여와 현재 전국 70여개 매장, 500여명의 직원을 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저 또한 싱글로 시작해 아이를 낳고 회사가 커지면서 복지정책이 생겼어요. 매년 제도를 갱신하면서 살펴보니 기혼자들과 아이가 있는 직원에만 복지가 편중되어 있었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다 같이 복지를 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독신이나 성소수자 직원을 위한 제도도 만들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독신 직원을 위한 파티를 열자’ ‘기념휴가도 다녀오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였죠. 실제 제도에도 반영했습니다.”

러쉬의 핵심가치는 인권·동물·환경이 어우러진 ‘사회의 선순환’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구매행위를 단지 구매(Buying)로만 보지 않고 윤리적·창의적 구매(Ethical·Creative Buying)라고 한다. 제품 생산과 구매의 과정에서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사회공헌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미령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미령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업 초기엔 ‘어떤 회사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었어요. 매장 하나 내는 데만 해도 정신이 없었죠. 다만 한 가지는 명확했어요. 바로 ‘이상(異常)해지자’는 겁니다. 이상의 반대는 평범하다는 뜻이잖아요. 도발적이고 다른 생각이어도 우리는 서로 다 이야기해보자.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 같은 철학은 신입사원 채용에도 나타난다. 성별·나이·출신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이다. 학교와 전공도 묻지 않는다. 응시자격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거짓말하지 않고, 나쁜 건 권하지 않고, 환경·동물·사람을 사랑하는 분!” “사진·결혼 여부·대학·자격증·종교 등의 정보를 기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 대표는 “러쉬는 초기 채용부터 직원들의 개성과 인권을 존중했다. 쉽게 말해 문신을 해도 채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능력이 좋지만 개성이 강해 일반기업에 취업하지 못한 성소수자 인재들이 함께하는 계기가 됐다. 숨기고 들어왔지만 자연스럽게 커밍아웃하는 직원들도 생겼다”고 말했다.

러쉬의 행보는 ‘다양성’으로 귀결된다. 러쉬는 자체 캠페인인 ‘#GayIsOk’를 진행하며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청광장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도 공식 참가했다. 현장에서는 ‘핑크이력서’를 받아 성소수자 채용 기회를 마련했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는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 러쉬의 철학”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제 동료가 여자든 남자든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중요하지 않거든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궁금해할 필요도 없는 일이죠. 사적인 부분이잖아요.”

 

우미령 대표 뒤로 러쉬코리아 직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미령 대표 뒤로 러쉬코리아 직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 대표는 원래 보석가게를 운영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보석디자이너를 꿈꿨다. 대학을 졸업한 후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미국보석감정연구소(GIA)에서 보석감정과 디자인을 전공했다. 국내에 들어와 2002년 일본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러쉬에 반해 바로 영국 본사에 한국지사 계약 의사를 전했다. 이미 5~6개 기업이 경합을 벌이고 있었지만 러쉬는 자금력이 큰 대기업보다 브랜드를 알차게 키워줄 ‘베이비시터’를 원했다. 러쉬는 당시 29세였던 우 대표를 적임자로 봤다.

15년간 크고 작은 성과를 이루며 성장해온 러쉬는 ‘여성파워’가 센 기업이기도 하다. 현재 임직원 500여명 중 여성의 비율은 70%에 달한다. 대표와 영업이사, 마케팅 본부장 등 최고의사결정권을 맡는 임원직에도 여성이 대부분이다. 본사인 영국 러쉬 마크 콘스탄틴 대표가 남성이고 다른 국가들도 대부분 남성이 주요 요직을 맡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러쉬는 지난해까지 ‘디지털’ ‘행복’ ‘피플’을 회사의 핵심 정책으로 삼고 달려왔다면 올해는 소비자와의 소통을 목표로 PR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우 대표는 “남은 2017년도도 ‘고객과의 밀접한 소통’을 중점으로 더욱 열심히 달리겠다”며 “러쉬에서 묻어나는 가치들이 오히려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도 더 많이 깨닫고 부딪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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