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화산역 인근에 위치한 한 카페가 써붙인 이벤트 포스터. 하의를 길게 입고 온 초·중·고 여학생들게에 음료를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열어 논란이 일었다. ⓒ트위터리안 @Aro_miC 님 제공
서울 봉화산역 인근에 위치한 한 카페가 써붙인 이벤트 포스터. 하의를 길게 입고 온 초·중·고 여학생들게에 음료를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열어 논란이 일었다. ⓒ트위터리안 @Aro_miC 님 제공

얼마 전 어느 동네의 한 카페에서 ‘옷다운 옷을 입은 초, 중, 고 여학생에게는 모든 음료를 30% 할인해주겠다’며 ‘좀 길게 입기 바래’라는 제목의 여름 이벤트 포스터를 내걸었다고 한다. 이 포스터는 온라인을 통해 알려지면서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몸매를 드러내면 몸을 탐하는 자들이 꼬이기 마련’이라는 말과 더불어 ‘사복을 포함해서 무릎 위 치마길이는 5cm’라는 구체적 기준까지 제시하고 있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면 몸매보다 마음을 드러내라’면서 여학생의 외모와 도덕성을 연결한 설명에서 성차별적인 태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웃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 카페는 지난 6월에도 화장하지 않은 여학생에게 음료값을 깎아주는 민낯 할인 이벤트를 벌였다고 한다.

최근 각종 광고 매체가 ‘성인 여성의 외모를 흉내 낸, 성적으로 대상화된 어린이’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전시하면서 이를 경계하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몸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외모꾸미기를 통해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려는 어린이들의 표현 욕구도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A는 외모 꾸미기에 관심이 많은 2005년생이다. 관심 있는 물건은 여러 가지 화장품, 가보고 싶은 곳은 시내의 커다란 화장품 가게라고 하더니 요즘 고민을 묻자 욕설이 먼저 튀어나왔다.

A는 새로 산 짧은 형광색 반바지를 입고 SNS 계정의 프로필 사진을 바꾸었다가 같은 반 남학생으로부터 자신을 돈육 가공식품에 빗대면서 경멸하는 말을 들었다. 그 남학생을 시작으로 학교 친구들이 보는 인터넷 공간에 사진이 퍼져나갔고 공격적인 댓글이 쏟아져 걷잡을 수가 없었다. A가 항의하자 가해 학생은 ‘자꾸 따지면 형들이 보는 사이트에서 조회수를 찍게 해 주겠다’며 A에게 폭력적인 말을 내뱉었다. 담임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상의하자 선생님은 가해 학생에게 주의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짧은 옷을 입은 사진을 SNS에 올린 A를 더 모질게 나무랐다. A는 너무 화가 났고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면서 자신이 읽을 만한 페미니즘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2017년의 한국은 더 어린 페미니스트들의 고민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흐름 속에 있다.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것과 다른 사람의 성차별적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일이 어떤 충돌을 불러오게 되는지 잘 모르고 지내다가 위와 같은 폭력적 경험을 통해 처음 현실과 부딪히는 일도 많다. 자신의 몸을 둘러싼 상업적 기획과 폭력적인 내막을 정교하게 헤아리기 어려운 어린이들은 “왜 짧은 반바지를 입고 나가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친구가 내 몸을 놀리거나 이상한 눈으로 누군가 자기를 훑어보는 것은 싫다”고 분노한다. 짧은 반바지는 죄가 없고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는 건강한 것이며 그런 네 몸을 다른 의도로 바라보는 이들이 잘못 한 것이라는 말을 들려주는 어른들조차 곁에 별로 없다. 부모와 교사뿐 아니라 동네 카페의 주인까지 무조건 길게 입으라는 통제가 훨씬 가까운 형편이다. 어린이들이 읽을 만한 여성주의에 관한 책은 드물고 동화 속에서든 생활에서든 자신의 몸을 주체적으로 대하는 시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다.

어린이의 몸을 대하는 어른들에게도 공부가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세상이 위험하다는 말만을 되풀이하게 된다며 사춘기 자녀의 외모 꾸미기를 놓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자칭 페미니스트 엄마들이 많다. 직장 동료의 딸 사진에 칭찬이라며 “아이답지 않게 몸의 선이 매혹적이다”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는 형편이고 누군가는 야릇한 용도로 그 사진을 개인적으로 저장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이와 함께 몸에 대한 이야기, 외모꾸미기와 페미니즘에 관한 대화를 더 자주 나누어야 한다. 어린이와 성에 대한 고민이 우리보다 앞섰던 북유럽의 동화작가들은 ‘어린이들이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를 더 솔직하게 들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 동화도 그동안 없는 것처럼 취급해 온 ‘어린이의 몸’과 그를 존중하기 위한 이야기를 더 적극적으로 나눌 때가 되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