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오전 10시 반부터 ‘박유천 성폭력’ 고소 여성의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7명의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고, 이를 수용한 재판부는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 ⓒ뉴시스·여성신문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오전 10시 반부터 ‘박유천 성폭력’ 고소 여성의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7명의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고, 이를 수용한 재판부는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 ⓒ뉴시스·여성신문

 

“단단히 한몫 해보려는 거 아니야?” “여자도 좋으니까 따라갔겠지” “싫으면 제대로 저항을 했어야지”. 성폭행 관련 기사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반응들이다. 여성을 ‘꽃뱀’으로 몰거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가벼운 말 그리고 비뚤어진 눈. 한국사회 내 뿌리 깊은 여성혐오와 왜곡된 성폭력 통념은 오랜 시간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공고히 해왔다.

아이돌 그룹 멤버이자 배우 박유천을 성폭행으로 고소했다가 오히려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역고소당한 여성 A씨 재판에서도 이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4일 A씨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311호엔 여성들의 한숨이 가득했다. 검사의 ‘어이없는’ 발언 때문이었다. “허리 돌려 저항하면 성관계 막을 수 있지 않나” “(성폭행 당한 것이라면) 왜 당시 동료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나” 등 편견 섞인 질문은 A씨를 2차 가해하기에 충분했다. A씨 변호를 맡은 이은의 변호사가 “검사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말한 이유다.

성폭력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는 검찰에게서 정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검찰이 재판 내내 A씨를 대한 태도는 이러했다. “화대를 염두에 두고 성관계 했으나 (박유천이) 그냥 가버리자 홧김에 허위 고소한 것 아닌가”. 유흥업소 종사자를 색안경 끼고 보는 낡은 사고와 저급한 인권 감수성에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을 지켜보던 중 “여성인 내게 조국은 없다”(버지니아 울프)는 말이 떠올랐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피해를 입고도 가해자에게 무고죄로 역고소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신고·고소를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성중심적인 성 통념은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경·검찰의 의심 섞인 눈초리와 압박수사는 피해 여성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 2013년 성범죄 친고죄 폐지 이후 일부 지방검찰청이 대대적으로 실시한 성폭력 범죄 무고 단속은 성폭력 피해 여성의 입을 막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A씨의 무죄 판결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의 말대로 “그간 지속됐던 ‘성폭행 고소-무고죄 역고소’를 단절시키는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배심원 7명은 A씨의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재판부도 이를 수용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A씨가 허위사실을 신고하거나, 허위사실로 박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A씨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재판 결과에 A씨는 오열했다. “이제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그의 말에서 작지만 큰 희망을 본다. 마지막으로 이은의 변호사의 말을 빌리고자 한다. “이제야 첫 단추가 맞게 채워졌다. 무죄 판결을 기뻐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우리는 또 이렇게 한발짝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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