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임원 늘리는 기업 속속 등장

인사·재무·법무·홍보 등 분야 다양

일·가정 양립 위한 복지제도 갖춰

여성임원 비율 적정한 기업

수익적 성과에도 긍정적 영향

 

왼쪽부터 권금주 에뛰드 대표, 이지연 에스쁘아 대표, 이영미 한미약품 상무, 천미연 농심켈로그 상무, 한성숙 네이버 대표 ⓒ각 사
왼쪽부터 권금주 에뛰드 대표, 이지연 에스쁘아 대표, 이영미 한미약품 상무, 천미연 농심켈로그 상무, 한성숙 네이버 대표 ⓒ각 사

정부의 여성인재 등용 기조에 맞춰 기업들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조직 내 소수였던 여성 임원을 조금씩 늘리면서 최근에는 여성임원 비율 50%를 달성한 기업도 나왔다. 여성임원 비율이 높은 기업에는 ‘성평등한 인사정책’ ‘일·가정 양립을 위한 복지제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업문화를 선도해나간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한국의 여성임원 비율은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에서도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시리얼 전문 식품회사인 농심켈로그(대표 한종갑)가 여성임원 비중 50%를 달성했다.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원 비율을 여성과 남성 모두 동등하게 맞췄다. 한종갑 농심켈로그 대표 포함 총 8명의 임원 중 인사·재무·마케팅·홍보 등 4명이 여성이다. 남성 4명은 대표이사·영업·공장·IT 등을 담당한다.

30대 기업 중에서는 아모레퍼시픽(대표 서경배)의 여성임원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근을 제외한 임원 총 65명 중 여성임원은 11명이었다. 여성임원 비율은 16.92%로 화장품업계 경쟁사인 LG생활건강의 8.33%보다 약 2배 높았다.

100대 기업 중에서는 네이버(대표 한성숙)가 16.6%로 여성임원 비율 1위를 기록했다. 이는 IT업계에서도 제일 높은 비율이다. 현재 네이버의 여성임원은 6명이다. 500대 기업 평균인 2.6%보다 7배 높다. 특히 인터넷 업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를 발탁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한성숙 대표는 120여개에 달하는 네이버 서비스를 총괄한다.

제약업계에서는 한미약품(대표 권세창)이 최근 여성임원 비율 24%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10대 기업 평균 여성임원 비율 2.4%의 10배에 해당한다. 국내 제약사의 여성임원 비율 평균이 7% 수준인 것과 비교해도 3배 이상이다. 전체 임원 46명 중 여성은 총 11명이다. 전체 임직원 수 2246명, 그중 640명인 28%가 여성이다. 여성임원 비율이 전체 여성 임직원 비율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리천장’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농심켈로그는 최근 여성임원 비중 50%를 달성했다. 왼쪽부터 송혜경 홍보팀 이사, 최미로 마케팅팀 상무, 천미연 인사팀 상무, 김경은 파이낸스팀 상무 ⓒ농심켈로그
농심켈로그는 최근 여성임원 비중 50%를 달성했다. 왼쪽부터 송혜경 홍보팀 이사, 최미로 마케팅팀 상무, 천미연 인사팀 상무, 김경은 파이낸스팀 상무 ⓒ농심켈로그

이들 기업의 높은 여성임원 비율은 일·가정 양립을 위한 다양한 복지제도뿐만 아니라 고과 평가에서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성평등한 기업문화에서 기인한 결과라는 평가다. 이들 기업은 임직원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려는 다양한 복지제도를 갖췄다.

농심켈로그는 국내 여성 직원들을 위해 출산 전후 휴가와 육아휴직, ‘시차 출퇴근제’, 수유실·휴게실 등 편의시설을 제공한다. 매주 금요일 ‘5시 퇴근제도’도 도입했다. 또 ‘워크&라이프 코칭 프로그램’ 등 가족친화제도를 운영하며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받았다.

아모레퍼시픽은 직장 내 어린이집 운영, ‘예비맘’ 배려 등을 운용한다. 자율 시차 출퇴근 제도인 ‘ABC워킹타임’ 등을 운영해 일·가정양립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ABC 워킹타임은 출근시간을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1시간 단위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네이버는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을 사내 복지 핵심으로 삼는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탄력적으로 업무 시간을 조정하는 ‘책임근무제’도 같은 맥락에서 결정됐다. 직원이 개인 업무 특성과 개별 업무 일정에 맞춰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꼭 채워야 하는 의무시간도 없다.

 

한미약품은 제약업계 최초 여성임원 비율 24%를 기록했다. 왼쪽부터 강자훈 상무, 김수진 상무, 박명희 상무, 이영미 상무 ⓒ한미약품
한미약품은 제약업계 최초 여성임원 비율 24%를 기록했다. 왼쪽부터 강자훈 상무, 김수진 상무, 박명희 상무, 이영미 상무 ⓒ한미약품

여성임원들의 분포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농심켈로그의 여성 임원들은 인사·재무·마케팅·홍보 등에 속해 있다. 2009년부터 근무한 천미연 인사상무는 농심켈로그 역사상 첫 여성임원이다. 재무부서는 김경은 상무가 진두지휘한다. 브랜드 포지셔닝을 주도하는 마케팅 부서장은 최미로 상무가 맡았다. 대내외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홍보 수장은 송혜경 이사가 담당한다.

​아모레퍼시픽 여성임원은 브랜드 영업과 마케팅, 고객전략, 디자인 등 여러 부서에 포진했다. 여성임원 11명 중 7명이 1970년대 생으로 젊다. 가장 나이가 어린 이수연 상무(41)가 아이오페 브랜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14년 권금주 에뛰드 대표와 이지연 에스쁘아 대표 등 계열사 두 곳에서 최초 여성대표가 나왔다.

네이버 여성임원들도 법무·홍보·커머스 등 다양한 분야에 있다. 글로벌 사업과 법무, 홍보까지 여성임원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드문 사례다. 한성숙 대표는 2007년 검색품질센터 이사로 합류한 뒤 네이버의 서비스를 총괄하는 역할을 줄곧 맡아왔다. 글로벌 사업 지원을 총괄하는 이문자 이사와 커머스콘텐츠를 총괄하는 이윤숙 이사, 법무 총괄 정연아 이사, 홍보와 인사 등을 담당하는 채선주 부사장, ‘V LIVE’를 맡은 박선영 이사 등도 대표적인 여성임원이다.

한미약품의 여성임원은 전무 1명, 상무 6명, 이사 대우 4명으로 임상·개발·해외사업·연구 등 전문 분야뿐 아니라 과거 남성 임원이 주로 맡았던 공장 책임자, 마케팅·비즈니스 부문도 두루 맡고 있다. 여성임원 중에는 임성기 회장의 딸인 임주현 전무가 속해 있다.

 

2016년도 아태 지역 20개국 기업 여성 임원 비율 순위.(미국 캐나다 제외) ⓒCWDI, FT
2016년도 아태 지역 20개국 기업 여성 임원 비율 순위.(미국 캐나다 제외) ⓒCWDI, FT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 10대 기업 여성임원 비율은 아직도 100명 중 2명꼴에 불과하다. 지난 5월 ‘국제여성기업이사협회’가 발표한 ‘2017 아시아·태평양 지역 여성 이사회 임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임원 비율은 2.4%로 아태 지역 20개국 가운데 최하위다. 한국보다 낮은 곳은 0.9%인 중동뿐이다. 실제로 국내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 중 절반은 여성임원이 단 1명도 없다. 현대차그룹에서도 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에는 여성임원이 없다. 한화와 현대중공업도 여성임원 비율이 0%다.

아시아개발은행 분석에 따르면 “여성임원 비율이 적정하게 구성되면 수익적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여성임원을 늘리기 위해 ‘할당제’ 등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단체는 말레이시아의 경우 ‘대기업 이사회 여성임원 30% 할당제’를 실시하면서 여성임원 비율이 2011년 7.6%에서 16.6%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현재 인도는 ‘모든 상장기업은 이사회에 1명 이상의 여성임원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의 할당제 정책을 펴고 있다. 인도는 여성임원 비율이 2010년 5.5%에서 현재 12.7%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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