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부터 살해·염산 테러 예고 등 …

각종 범죄에 몸살 앓는 걸그룹

이나영 교수 “남자들은 여자 연예인을

인간 아닌 인형 혹은 장난감으로 여겨”

 

“여자도 인간이다.” 이 당연하고도 쉬운 말이 한국사회에선 수용되지 않는 듯하다. 특히 걸그룹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몰카에 살해 협박, 염산 테러 예고까지…. 걸그룹에 대한 낮은 인권 감수성은 실제 범죄로 나타나고 있다. 날로 더해가는 위험 수위에 경각심이 요구되는 이유다.

“염산이 기다리고 있다” “칼 들고 죽이러 갈 것”

 

걸그룹 트와이스 ⓒJYP 엔터테인먼트 제공
걸그룹 트와이스 ⓒJYP 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걸그룹 트와이스는 염산 테러 협박을 받았다. 지난 2일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걸그룹 게시판에는 트와이스의 일본 쇼케이스 사진과 함께 염산 테러를 예고하는 글이 게재됐다. 한 일베 회원은 “트와이스가 우리나라 버리고 일본에서 돈 엄청 번다”며 “한국 버려도 되니까 두 번 다시는 한국에 오지 마라. 공항에서 염산 10L가 대기 중일 테니”라고 적어 올렸다. 이와 함께 트와이스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선 일본 팬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게시했다. 글쓴이는 해당 글이 논란이 되자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에 트와이스 소속사 JYP는 3일 입장문을 내고 “해당 글을 올린 이에 대해서는 IP 추적을 통해 신원을 파악하고 고소 등 단호한 법적 조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소속 아티스트의 신변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행동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3일에도 한 일베 회원은 트와이스 멤버 미나에 대한 살해 협박 글과 사진을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그는 손목에 칼을 대고 있는 사진과 함께 “칼 들었어요. 내가 너 죽이러 갈 거예요”라는 글을 올렸다. 논란이 커지자 “인기글로 가기 위해 작성한 것”이라며 자필 사과문을 쓰고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소속사 측은 법률적 조처를 하는 등 강경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걸그룹 에이핑크 ⓒ뉴시스·여성신문
걸그룹 에이핑크 ⓒ뉴시스·여성신문

트와이스에 앞서 에이핑크는 네 차례에 걸쳐 살해 협박을 당했다. 신원 미상의 남성은 지난 5월 16일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에이핑크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어 6월 14일 강남경찰서는 ‘에이핑크를 칼로 죽이겠다’는 협박 전화를 받고 긴급 출동했으나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6월 26일과 30일엔 각각 마포경찰서와 영등포경찰서에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협박범은 쇼케이스 공연장과 KBS ‘뮤직뱅크’ 사전 녹화실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며 에이핑크를 테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현장에는 경찰 특공대와 폭발물 처리반이 출동했다. 당시 경찰은 건물에 있던 150여명을 긴급대피 시키고 수색을 이어갔지만 폭발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조사 결과 전화는 모두 캐나다에서 걸려온 것으로 확인됐으며, 용의자는 캐나다에 체류 중인 30세 한국계 미국인 남성으로 밝혀졌다. 협박범은 에이핑크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소개팅하는 모습에 분노해 이 같은 범행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걸그룹 여자친구 ⓒ뉴시스·여성신문
걸그룹 여자친구 ⓒ뉴시스·여성신문

3월 31일. 걸그룹 여자친구의 팬사인회에서 한 남성 팬은 뿔테안경 모양의 몰래카메라를 사용해 멤버들을 촬영하다 적발됐다. 멤버 중 한 명인 예린은 남성의 안경에서 이상함을 감지하고 자세히 살펴본 후 ‘안경 몰카’임을 잡아냈다. 소속사 측은 해당 남성의 영상을 압수하고 퇴장시킨 후 앞으로 여자친구의 공식 일정에 참석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당시 이 사건이 공론화된 후 오히려 몰카범을 옹호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몰카를 발견한 멤버를 두고 일부 남성들은 “연예인이 돈 벌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되게 예민하네” “영악하다”며 나무랐다. “뭐가 문제지? 노출 사진을 찍길 했나 사적인 공간에서 찍길 했나” “속옷을 찍은 것도 아닌데 왜 난리지” “가까이서 찍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등의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등장하기도 했다.

1세대 걸그룹의 수난사…‘오빠들’이 뭐길래

 

1세대 걸그룹 베이비복스(위)와 핑클(아래)
1세대 걸그룹 베이비복스(위)와 핑클(아래)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1세대 걸그룹에 대한 테러는 보이그룹과 열애설에 의한 것이 다반사였다. 일단 열애설이 퍼지면 보이그룹 팬들은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걸그룹 멤버에게 무차별적인 테러를 가했다. 1999년 베이비복스가 3집 앨범으로 활동하던 당시, 멤버 간미연은 HOT 멤버 문희준과의 교제설로 인해 각종 수난을 겪어야 했다. 당시 불만을 품은 HOT 팬들은 간미연에게 면도칼이 든 피묻은 협박편지를 보냈다. 내용도 무시무시했다. “널 기필코 죽여버리겠어. 희준오빠가 없어도 외롭지 않게 해줄게. 몸조심하길”.

간미연은 팬사인회에서 안티 팬이 휘두른 면도날에 손을 다치거나 오물세례를 받거나, ‘우리 같이 지옥 가자’고 쓰인 혈서, 난도질당한 자신의 사진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베이비복스 소속사 대표 딸까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간미연의 모교인 성덕여자상업고등학교 축제 행사에 참석한 간미연은 후배들과 동료로부터 욕설과 언어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윤은혜는 안티 팬이 쏜 물총을 눈에 맞아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물총 안에는 간장, 식초, 고춧가루 등 자극적인 식재료가 섞여 있었다. 심은진은 안티팬으로부터 고양이 시체를 받기도 했다. 실제 안티 팬들의 공격과 수많은 루머는 그룹 해체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효리도 핑클 시절 젝스키스, HOT 팬들에게 테러당한 경험을 고백한 바 있다. 이효리는 2014년 한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지나가다 그냥 돌을 던지면 괜찮은데, (안티 팬들이) 사인회에 와서 몇 시간씩 줄을 서 내 앞에 온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이효리’라고 한다. 이효리라고 쓰면 내 얼굴에 계란을 던졌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안티 팬클럽 회원을 자처한 이에게 가시가 박힌 나무로 손등을 찍히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여성 가수나 배우 등 여자 연예인에 대한 협박은 꾸준히 있어왔다. 하지만 여성들에겐 그런 사실 자체가 낙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대상에 대한 열망이나 소유욕은 젠더에 따라 표현 방식이 달라진다”며 “남자들은 여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굉장히 폭력적인 양상을 나타낸다. 여성을 지배·통제하려 하고 심할 경우 폭력 혹은 살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갖고 있는 고정관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성은 걸그룹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브제 혹은 인형이나 장난감 정도로 여긴다며 그들의 낮은 젠더 감수성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걸그룹을 비롯한 여성 연예인들이 개별적 인간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존재라는 걸 (많은 남성들은) 인지해야 한다”면서 “연예인 스스로도 문제를 인식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고, 연예인 인권 침해에 대한 대중적 공분도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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