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보좌진 급수별 5인 심층 인터뷰

남성 보좌진에게 여성, 보육 등

젠더 법안은 후순위로 밀릴 때도

여성 채용 않는 일부 여성 의원도

 

현재 국회에서 근무하는 4급 보좌관 A씨(17년차), 4급 보좌관 B씨(9년차), 5급 비서관 C씨(7년차), 6급 비서 D씨(8년차), 인턴 E씨(2년차) 등 여성 보좌진 5명을 상대로 심층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들 모두 한 목소리로 국회 내 성차별이 심각하다고 했다.

이들 중 한 명은 지난해 취업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19대 국회에 보좌하던 의원이 20대 총선에서 낙방하면서 다른 의원실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동료 보좌진을 통해 구인 중이라는 의원실을 소개받아 면접을 보러 갔다. 그러나 면접을 본 남성 보좌관으로부터 남성을 채용할 거라는 말을 듣고는 그대로 돌아서야 했다. 실제로 9급 행정비서만 여성이고 나머지 보좌진은 전부 남성인 의원실도 적지 않다.

 

남성 보좌진에게 여성 관련 법안은 후순위로 밀릴 때도

여성 보좌진이 적은 문제는 단순한 유리천장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의 확대를 위해서는 정치인의 성비 뿐만 아니라 입법에 영향을 미치는 보좌진의 구성도 중요하다. 비서관 C씨는 “한 달에 수백건 씩 법안이 발의되는 상황에서, 전체회의에 법안 상정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보좌진들의 의식이나 관점이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보니 여성, 보육, 경력단절여성 등 여성 이슈 개정안은 후순위로 밀려날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젠더 관점에서의 입법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남성 위주의 인적 구성과 사고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것이다.

나아가 의정활동에 여성의 업무능력이 반드시 발휘돼야할 업무가 많다는 점에서도 여성 보좌진의 확대는 중요하다. 보좌관 B씨는 “여성 보좌진이 보건, 환경, 복지, 여성분야 등에서 두드러질 뿐만 아니라, 국회 예결위, 법사위, 국방위, 정보위에서도 섬세함과 꼼꼼함으로 사각지대의 문제점을 발굴해낼 수 있다. 실제 검찰을 맡고 있는 법사위와 경찰을 맡는 안행위, 국정원 문제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여성 보좌진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B씨는 또 “남성 중심의 학연, 지연의 형님문화, 술문화, 골프문화가 없기에 여성들의 원칙적 일처리가 장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상처받고 아파하는 민원인들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소통하는데 여성 보좌진들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다. 정치가 좀 더 여성 친화적으로, 여성성이 강화된다면 훨씬 더 따뜻한 정치, 시민들과 소통하는 권위 없는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성 채용하지 않는 일부 여성 비례대표 의원들은 문제 있다”

여성 의원들의 보좌진 채용 행태에 관한 지적도 나왔다.

인턴 E씨는 “여성 의원이 여성 보좌관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안다. 사회의 유리천장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해야 하는 국회 내에서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좌관 B씨는 “여성 의원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여성 보좌관 비율은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다. 여성의원들마저 여성 보좌관을 채용하고 있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정당별 여성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는 여성 50% 할당의 정책적 결정으로 당선됐지만, 정작 여성 보좌진을 50%로 채우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적으로나,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비서 D씨는 “여성 의원이 늘었다고 해서 여성보좌진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여성 보좌진의 진입장벽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의원실에만 여성 보좌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여성보좌진의 수가 늘어야 진정한 성평등을 이룰 수 있는 입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보좌진들은 여성 확대를 위한 개선 방안으로 할당제나 규제를 언급하면서도 부적절한 방법이라며 난색을 지었다.

보좌관 A씨는 “국회의원처럼 여성할당제를 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여성 보좌진을 채용했을 때 가령 국회입법및의정활동평가상 등에 가점이나 지표화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제시했다.

비서 D씨도 보좌진의 성비를 규제할 수는 없다고 전제한 후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 스스로 보좌진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유리천장을 만들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비서관 C씨도 고용 쿼터제는 남성 보좌진의 반발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육아휴직 6개월 의무 사용 등 보좌진의 근무 환경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성비 불균형 문제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턴 E씨는 “국회의원들 스스로 성평등을 말하기 이전에 본인의 의원실 조직 내 성평등은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국회 내 조직 문화를 비판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여론이 있으면 변할 수 있다”고 관심을 요구했다.

반면 보좌관 B씨는 여성계가 여성 의원뿐만 아니라 보좌진 비율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성 정치인, 정치 후보군이이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게 아니다. 정당과 국회에서 미리부터 준비되고 훈련할 수 있는 정당의 당직자와 6급 이상 국회 보좌진 여성비율부터 30%이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계에서도 자신들이 공천받을 여성 의원 숫자로만 비율을 늘리려 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정치의 토대가 건강해질 수 있는 다양한 방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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