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영 서울여대 교수의 기고 ‘10대 가출 여성의 생존 전략 ‘피해자 되기’와 관련해, 이소희님이 기고를 보내왔습니다. 관련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 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흥가를 젊은이들이 걷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흥가를 젊은이들이 걷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가정폭력으로 탈가정하고 16살에 성판매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24살이고 출장 업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민가영님의 기사를 두고 논란이 있는 걸 보고, 민가영님이 당사자가 아니라 엘리트 페미니스트여서 문제가 되는 거라면 당사자가 말하면 다르게 읽힐 수 있는 건지 싶어 부족하지만 글 써보았습니다. 제 글이 진영 논리로 이해되지 않길 바라며 우선 저는 성노동 지지자가 아님을 밝힙니다. 

민가영님의 글은 성판매를 하는 청소년을 꽃뱀이라고 비난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이 겪는 일이 피해, 착취라는 것을 부정하는 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가영님의 글의 요점은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피해자의 위치를 점유하지 않으면 부당한 경험,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일을 겪어도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서 청소년들이 생존전략으로 자신의 서사를 피해서사로 재구성하는 것이 정말 장기적으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 질문을 던지고 ‘불쌍하고 무기력한 피해자’, ‘비행청소년’ 이분법을 넘어 ‘나’로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자고 저는 읽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피해자의 위치를 점유하지 않으면 부당한 경험,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일을 겪어도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란 이런 겁니다. 탈가정하고 지낼 곳이 없을 때 애인의 자취집에서 같이 산 적이 있습니다. 서로 좋아해서 사귀었고 합의 하에 관계를 하다가 임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두려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임신 테스트기의 결과가 틀리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산부인과에 진료 받으러 갔습니다.

산부인과에서는 ‘어린 애가 왜 왔지?’ 라는 눈초리, 이 워딩 그대로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저에게 우호적이진 않다는 건 느낄 수 있는 시선으로 저를 훑었습니다. 불쾌한 눈초리들 속에서 제 차례가 올 때까지 대기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진료실에 들어가 임신이 맞다는 결과를 받아 의사선생님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딱 봐도 어려 보이는데 왜 그랬냐. 책임질 수는 있냐며 한숨 쉬고 비난했습니다. 그 당시에 위압적인 분위기에 눌려 저도 모르게 “원해서 한 거 아닌데...” 라 대답했습니다. 원해서 한 게 아니라고 얘기해야만 이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그 자리에 있던 간호사, 의사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신고는 했냐, 누가 그랬냐, 언제 그랬냐, 대신 신고해주냐, 어디어디에 연락해라. 이 병원은 임신중절 수술은 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최근에 문제가 있었다. 그제서야 설명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행법상 임신중절은 불법이지만 성폭력 피해자는 예외다. 꼭 상담소에 전화해봐라 조언들을 해줬습니다.

저는 임신중단이 피해자만 누려야 하는 권리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저의 문란함에 초점이 맞춰지거나 피해자로 동정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결정권을 가진 사람으로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들 임신중단 합법화 시위를 하는 거죠. 하지만 지금 사회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피해자상에 들어맞아야만 선별적으로 허락해주고 있습니다.

낙태뿐만이 아닙니다. 잘 곳이 없어 쉼터를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10대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쉼터들이 생기고 지원들이 마련되고 있지만 이 지원을 받으려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순수한 피해자 상에 들어맞아야만, 사회가 요구하는 10대 이미지에 부합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통금 시간이 정해져 있고 이성과도 교제하면 안 됩니다. 시설마다 다르지만 단체 생활을 위한 규칙에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피해를 증명해야만 합니다. 사회적 비용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피해자인지 아닌지 늘 증명해야만 합니다.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음을, 저의 무력함을 호소해야만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재 성매매특별법은 성판매 여성을 피해자와 범죄자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은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 법 적용이나 단속 맞았을 때 경찰의 태도, 관계자들의 태도는 법과는 또 다릅니다. 비난을 피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으려면 나에게 성매매밖에 선택지가 없었다는 것을 이 사회가 인정할 만한 논리로 답변해야만 합니다. 피해를 강조할수록,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저는 제가 처한 가난이나 고통의 상황을 더욱 자극적으로 드러내야만 했습니다. 고통을 자극적으로 전시해야만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가 정당한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존엄을 지키면서 필요한 지원을 받고 싶습니다.

성판매를 경험하는 10대 청소년을 단순히 무력한 구조적 피해자로 고정하는 게 정말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될까요. 이러한 피해자 담론은 ‘사회가 인정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닌 사람을 배제합니다. 성판매를 경험하는 10대 청소년들은 필요한 지원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피해를 증명해야 하고 그리하여 피해 주장은 곧 피해자화의 과정이 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이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가꿔온 것들을 부정하고 도움이 필요한 불쌍하고 무능한 존재로 고정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은 구조에 대한 적응만이 아니라, 개인의 행위와 추구들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10대 성 판매 여성들 또한 성산업 구조를 무기력하게 수동적으로만 수용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의 자율성,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개인들의 실제 처한 조건과 환경에 따라 발생하는 권력관계의 맥락 삭제될 위험성 있긴 하지만요. 어떤 맥락에서 어떤 행위를 선택했는지 자신이 선택한 행위에 대해 돌아보고 자신의 삶의 주체로 책임지고 꾸려나갈 기회가 10대 성판매 여성들에게도 주어져야 합니다. 

저는 보호받고 싶지 않습니다. 탈가정한 청소년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이유는, 잠자리를 제공하는 남성들을 찾게 되는 이유는 청소년들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권리들을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은 청소년을 경제주체로 보지 않아서 보호자 없이는 집을 계약할 수 없기 때문에 청소년은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마저도 불가능합니다. 찜질방에 가면 찜질방에서 조차도 10대는 집에서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에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라고 귀가조치를 시킵니다. 그러면 저희는 갈 곳이 없죠. 그래서 서류계약이 필요없는 합법의 울타리 바깥에서 잘 곳을 구합니다. 

어찌어찌 운이 좋아 비청소년 지인이 있어서 대리계약을 하더라도 월세를 내려면 알바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청소년 알바는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불법이어서 노동권 침해로 신고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으며 일해도 구제받을 수 없고 이 돈으로는 생계비를 부담할 수 없고 그러면 저희는 성판매를 하는 수밖에요.

성판매로 세시간 만에 15만원을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돈을 움켜쥐고 한 행동은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내 돈을 주고 이동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 돈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사먹는 거였어요. 그게 너무 기뻐서 그 때 엄청 울었어요. 성판매를 해야만 내가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는 구나. 편의점 그거 해봐야 배고프고 힘들기만 하고 그런데도 삶의 지속이 가능해 보이지는 않고. 도덕, 자존심 그게 뭐라고 몸도 못 파냐. 미련한 너희들에 비해 나는 훨씬 잘 살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을 봐도 성판매로 돈 벌 수 있는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서 다행이다. 유일하게 부모에게 감사한 점이라고 성판매를 해서 삶의 질이 올라갔다고 얘기해요. 저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요.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이유는 생존에 급급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충족감을 느껴보기도 하고 자아실현하며 만족을 느끼는 삶을 상상할 수 없어서 그런 삶이 주어진 적 없어서. 잘 사는 삶의 기준이 원하는 시간에 먹고 자고 그저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일뿐인 삶이 되어서라고 생각합니다. 각자도생만이 남은 시대. 민가영님의 글도 이런 시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쓴 글이라 생각하고요.

혼자서 죽을만큼 노력하며 굴려지다가 피해자의 위치를 점유해야만 선별적으로 지원이 주어지는 사회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에게 필요한 건 피해자로 보호받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제가 피해자가 아니어도 제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권리들을 누리며 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의 맥락들을 부정당하거나 어떤 것들은 부풀려져 무력한 피해자로 보호받는 게 아니라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할 때 적절한 지원과 지지를 받으며 제 살길을 모색해보고 싶습니다. 내가 살아온 길이 무력한 피해자이거나 욕 먹어도 싼 창녀로 필요에 따라 덧씌워지지 않길 바라요. 

성산업을 긍정하려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성판매 괴로워요. 하기 싫어요. 내가 집에서 가정폭력을 겪지 않았다면, 학교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왕따 당하지 않았다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고 학원선생님에게는 성폭력 당하고 가출해야만 하지 않았다면 성판매 하지 않았을 거예요. 감금, 납치 당한 적도 있고 모욕은 기본 구타는 옵션. 이러다 어느 날 구매자에게 살해당하면 누가 나를 위해 울어줄까. 길게 보고 미래의 나를 상상해보자고 하지만 그 때 내가 살아있을까 확신할 수 없어요. 차에서 차로 실어 날라질 때마다 이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아니길 맞다면 깔끔하게 한 방에 죽여주길 기도해요.

그렇지만 저는 도움이 필요한 무력한 피해자로만 있고 싶지 않아요. 너를 착취하기 위해 잘해주는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성판매를 하며 저를 걱정하고 위해주는 의지가 되는 실장, 언니들도 있었고 분명 즐겁고 뿌듯한 순간들도 있었어요. 납치하려는 구매자 앞에서 기지를 발휘해서 골려주고 도망간 적도 있고 돈을 주지 않고 때리려는 구매자에게 맞서 싸우기도 했어요. 나는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 했고 그런 나에게 당당해요. 앞으로도 나로 내가 한 행동들에 책임지며 하지만 혼자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촘촘히 짜여진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길 바라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