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맞은 6·10민주항쟁

민중가요가 항쟁의 기폭제

 

민중가요 작사, 작곡해 부른

김민기, 문대현, 안치환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정치권 주요 인사들이 손을 잡고 ‘광야에서’를 제창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정치권 주요 인사들이 손을 잡고 ‘광야에서’를 제창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6월 1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1만5000여 명의 참석자들이 마지막 식순으로 ‘광야에서’를 제창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광야에서’는 필자의 대표적인 애창곡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민주화 유공자 유족들과 함께 손을 잡고 ‘광야에서’를 열창하는 모습이 잊고 있었던 30년 전 기억을 불러냈다.

1987년 여름은 뜨겁고 치열했다.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범국민규탄대회가 열린 6월 10일부터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수용한 6월 29일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6월 항쟁의 발단은 그해 1월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은 국민의 여망과는 달리 4월 13일 헌법수호 담화를 발표했고 이후 전국적으로 이를 규탄하는 성명과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축소은폐 폭로에 이어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의식불명상태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민주화 열기는 6·29선언이 나온 후에도 식을줄 몰랐다. 7월 9일 이한열 열사의 노제 때는 100만 인파와 수백 개의 만장이 광화문 시청을 메웠고 8월 21일엔 열사의 넋을 기리는 서울대 이애주 교수의 ‘바람맞이’ 살풀이춤 공연이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그해 10월 한국교회 100주년기념회관에서 열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첫 번째 정기공연에서 ‘광야에서’를 처음 들었다.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중략)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독립군 헌병대를 창설해 만주에서 일본군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였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노랫말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온몸을 휘감았고 소름이 돋았다.

당시 동아일보 3년차 기자였던 필자는 오전에 기사를 넘기고 오후면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넥타이 시위대들과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며 광화문 거리를 내달리고 노제 행렬에 참석했으며 마당극 공연에선 출연자들과 함께 해방춤을 췄다. 눈코입으로 사정없이 파고드는 매캐한 페퍼포그 냄새, 최루탄 파편이 박힌 다리를 동여맨 붕대에 스며드는 새빨간 피, 진압경찰을 피해 무작정 뛰어들었던 명동의 어느 카페….

단편적인 기억들을 연결하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건 노래였다. ‘상록수’, ‘아침이슬’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 ‘흔들리지 않게’, ‘우리 승리하리라’, ‘타는 목마름으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민중가요를 함께 부르다 보면 처음 보는 사람들도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스웨덴 한림원은 미국의 포크록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했다. 1901년 노벨문학상 수상이 시작된 이후 가수가 이 상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노벨상위원회는 “훌륭한 미국 음악 전통과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한” 점을 수상 이유로 들면서 논란을 예상한 듯 “호머나 사포 등 그리스 시인들의 시는 원래 (읽는 것이 아니라) 공연으로 듣던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밥 딜런의 수상 이유가 시의 물리적 한계를 확장한 공로라고 생각한다. 시는 특성상 혼자 읽거나 시 낭송을 통해 제한된 숫자의 사람들만이 음미할 수 있다. 하지만 시를 노래로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향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함께 노래한다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체험을 공유할 수 있다. 밥 딜런의 노래 중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블로잉 인 더 윈드’ 등 반전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은 실제로 1960년대 미국 반전 시민운동의 현장에서 주제곡처럼 애창됐고 한국에도 소개돼 많이 불렸다.

밥 딜런이 시적인 노랫말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에 대해 노랫말을 문학으로 볼 수 없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문학의 기능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 있다면 깊이 있는 사유의 바탕 위에 예술성과 대중성까지 겸비한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당연하고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시선을 민중의 염원과 시대정신이 담긴 민중가요로 돌려본다.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로 시작되는 ‘상록수’나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로 시작되는 ‘타는 목마름으로’, ‘광야에서’ 등은 밥 딜런의 노래 못지않게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대중과의 깊은 정서적 교감을 이끌어낸다.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면서도 처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노랫말도 울림이 크다. 사전에는 민중가요에 대해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특정 메시지를 담았고 사회운동에서 불리는 노래를 총칭하는 표현이며 6월 항쟁 기간 동안 많이 생겨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6·10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온전한 민주주의의 첫 출발점이자 억압되고 폐쇄됐던 민주주의 광장을 열고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6·10항쟁이 200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을 만큼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면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민중가요의 중요성 또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노래만큼 사람들과 소통하고 화합하며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수단이 또 있을까? 올해부터는 민중가요를 작사, 작곡해 부른 김민기, 문대현, 안치환 같은 이들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하면 어떨까? 그래서 이들 중 한사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면? ‘광야에서’를 혼자 불러보며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달성한 대한민국의 또 다른 기적이 민중가요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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