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당연히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허드렛일’ 한다고?

 

집안의 모든 일 함께 ‘나누는 것’

고정관념 버리고 양성평등 사고로

 

여전히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다르고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허드렛일’ 한다는 사고가 존재한다. 사진은 전업주부 남편 김국남씨가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전히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다르고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허드렛일’ 한다는 사고가 존재한다. 사진은 전업주부 남편 김국남씨가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5월 말 제주도 한라산에는 철쭉이 아직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진달래와 섞여 장관일 터여서 일찌감치 늦봄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42년 만의 수학여행이어서 들떴다. 마침 제주도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초대해서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중년 끝자락의 사내 열 명이 친구 집에 모여 수다도 떨며 저녁 시간을 즐겼다. 맥주에 과일이며 과자 등을 먹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데 누구랄 것도 없이 자연스러워 보기 좋았다.

마무리한 뒤 거실에서 한담 중에 집안일을 어떻게 하는지가 화제에 올랐다. 예순 코앞이니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거의 곧 은퇴할 것이고 사업하는 친구들도 예전 같지는 않을 터다. ‘삼식이’가 되지 않기 위해 각자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남성중심사회에서 살아온 사내들이라 은근히 걱정돼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그래도 집에서 설거지도 해주고 청소도 해줘. 이쯤이면 착한 남편 아니냐?” 그런 친구들이 절반쯤이고 “가사에 내 일, 네 일이 어디 있어. 가족 모두의 일인데. 당연히 해야지” 하는 친구가 절반쯤이었다. 그래도 손 놓고 나 몰라라 하는 녀석들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집안일을 ‘해준다’는 말이 걸렸다. “해주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하면 하는 거지. 무슨 대단한 봉사라도 하는 거야? 그 말을 하는 거 보니 아직 양성평등의 사고가 덜 여물었네. 그런 사고부터 고쳐야 해.”

그렇게 ‘해준다’는 파가 수세에 몰렸다. 물론 말의 습관에서 오는 것이지, 편견의 사고를 가져서 그런 게 아니어서 그게 비판이나 타박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를 굳이 빌지 않더라도 말은 그 나름의 힘과 질서를 갖고 있다. 별 생각 없이 내뱉는 말에 우리의 관성과 인식이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해주는 것’과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서 쉬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집에서 일하는 건 결코 만만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는 밖에서 일하고 누구는 집에서 ‘놀거나 쉬고’ 있는 게 아니다. 단 며칠만이라도 출근하지 않고 집안일 하다 보면 그건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다르고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허드렛일’ 한다는 사고가 존재한다. “Men for the field, woman for the hearth”라는 서양 속담도 마찬가지다. ‘함께’ 하면 모든 일 또한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잘한 일을 ‘해주는 게’ 아니다.

며느리 본 친구들은 아들에게 집안일 함께 하라고 가르쳤다는 친구들이, 당연하지만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사위 본 친구들은 ‘그 녀석’이 집에 돌아오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게 그렇게 못마땅하더라며 야속해한다. 아마도 자신의 옛날 모습은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아 쓴웃음이 절로 났다. 이제 우리 세대만 해도 많이 변화하고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 낡은 생각이 여전히 남았고 특히 남녀의 일이 다르다고 여기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는 그런 생각을 강요하거나 학습시키지 않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우리 세대에서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딸 집에 갔더니 사위가 설거지하고 있으면 그렇게 예쁘고 딸 잘 키웠다고 흐뭇한데 돌아오는 길에 아들 집에 갔더니 아들이 청소하고 있으면 그대로 돌아 나오면서 “못된 며느리가 들어와서 금쪽같은 내 새끼를 부려먹는다”며 화를 낸다는 말이 우스갯소리였던 때가 엊그제다. 물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부모도 있겠지만 그런 사고의 바탕에는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따로 있으며 설령 맞벌이 부부라 하더라도 ‘집안일’은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다. 낡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낡은 사람이다. 내 친구들이 낡은 생각을 갖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이제는 집안일을 ‘해주는 게’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한다’는 싱싱한 생각으로 푸르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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