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꽃뱀으로 왜곡되는 건

가해자 혼자의 위력이 아냐

 

주변의 과잉된 호기심과

언론의 허울 좋은 비겁이

함께 만드는 슬픈 합작품

 

성폭력 사건은 언론이 좋아하는 기사거리다. 사건의 성격상 대중의 구미를 당길만한 내용인 데다 대개 읽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나 범죄의 내용이 엽기적이거나 가해자와 피해자 중에 누구라도 유명한 사람이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지난 한해 여성계를 달군 화두 중 하나는 해시태그 운동이었다. 문화예술계를 필두로 피해자들이 온라인상에서 자신이 당한 성폭력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같은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몇 가지 사실은 분명하게 확인됐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이에 발생하는 성폭력들이 얼마나 갑질의 소산인지,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는지, 피해 사실을 떠드는 것이 자칫 어떻게 범죄가 될 수 있는지 말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해관계가 얽힌 당사자들 간의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측에서 주변관계자들의 증언을 받는 일은 쉽지 않다. 나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다.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이해관계 때문에 성폭력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일이 많고, 이후에도 대처나 문제제기를 망설인다.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피해자가 직장이나 학교, 업계 등 가해자와의 이해관계가 있는 곳을 떠나는 일이 많다.

주변인들이 피해자 입장에서 증언을 꺼리는 이유도 비슷하다. 물론 주변인 모두가 가해자와의 관계에서 약자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주변인과 결국 이해관계가 계속될 사람이 가해자란 사실은, 주변인들로 하여금 가해자에게 불이익한 진술을 하기 찜찜하게 만든다. 그래서 많은 주변인이 침묵하거나, ‘중립’이라는 말을 내세워 모호한 증언을 한다. 약자여서가 아니라 약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잘못이 밝혀지는데 굳이 기여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피해자의 억울함이 은폐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주변인들이 본디 나쁜 사람들은 아니고 그저 약해서 생기는 일이지만, 실은 이것은 나쁜 일이다.

이러한 주변인들의 범주에는 사건을 보도한 언론도 포함된다. 사회적으로 일정한 지위를 가진 가해자들일수록 주변에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이런 가해자들일수록 피해자에게 공격적으로 대응한다.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고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를 하는 일은 최근 들어서는 무슨 공식처럼 돼버렸다. 언론 입장에서는 회를 거듭해서 방송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미니시리즈 같은 테제이기도 하다.

자극적인 성폭력 사건일수록 앞다퉈 단독 보도를 하거나 다른 매체에서는 미처 다루지 않은 내용으로 차별화하려고 노력한다.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읽히는 보도를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확인해야 할 사항을 확인하지 않거나 사건이나 사람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루는 일들이 생긴다. 문제는 이것을 다룬 언론 입장에서는 약간의 실수일 수 있는 일이 당사자에게는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와 상처가 된다는 것이다.

최근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언론 보도를 이유로 피해자에게 문제를 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에게는 보도 취지와 팩트체크의 노력이 방패가 된다. 이것은 언론이 다룬 사건의 취재원에 대해서도 방패가 된다. 하지만 이 방패의 주체도, 이 방패를 잘 아는 이도 언론이다. 따라서 성폭행 사건을 대하는데 언론은 욕망에 앞서 보도의 취지와 팩트체크라는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 사건을 보도할 때도, 자신들이 한 보도가 문제가 됐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해자가 힘센 언론 대신 약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자신들이 했던 보도를 무기로 들이댈 때, 부실하든 아니든 그 방패를 정직하게 꺼내들어야 한다. 이것은 언론의 존재가치이자 소명의식이다.

아쉽게도 보도를 할 때와 그 보도가 문제가 될 때의 상황이 다른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정작 대다수 가해자는 힘센 언론을 대상으로 명예훼손을 다투지도 않는다. 약한 주변인들이 ‘중립’이라는 말로 실은 피해자에게 등을 돌린 것처럼, 고약한 언론은 방패를 들고 피해자의 등 뒤에 선다. 억울한 사연을 입 밖에 꺼낸 피해자는 이런 과정을 거쳐 꽃뱀으로 내몰린다. 피해자를 졸지에 꽃뱀으로 왜곡시키는 것은 가해자 혼자의 위력이 아니다. 주변의 과잉된 호기심과 언론의 허울 좋은 비겁이 함께 만드는 슬픈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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