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파격으로 장르를 넘나들다

하나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엔 굉장한 용기와 열의가 필요합니다. 언제 돌출할지 모르는 위협을 감내하는 배짱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경계와 그 경계를 만든 하나의 현상에 대한 배움에의 열의 또한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실현하였을 때, 바로 진정한 자유와 다양성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오늘은 자유의 날개를 달고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비요크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어둠 속의 댄서>의 셀마. 기억하시죠?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그러하듯, 1965년 아이슬랜드의 레이캬비크에서 태어난 비요크 역시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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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의 히피 문화를 몸소 실천했던 부모는 비요크에게 자유로운 사고를 안겨주었고, 6세 때부터 시작한 전문적인 음악 공부는 탄탄한 기본기를 선사하였습니다. 이후 이 두 가지 요소는 비요크의 삶과 음악세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비요크가 11살이 되던 해, 그의 재능은 첫 번째 앨범 의 발표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후 비요크의 음악활동은 펑크 록, 재즈, 유로 팝을 연주하는 다양한 밴드를 거치면서 폭을 넓혀갑니다.

하지만 1992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던 슈가큐브의 활동을 접으며 비요크만의 음악세계는 시작됩니다. 1993년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발표한 앨범 에서는 그가 지나온 과정과 음악적 성과들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폭넓은 장르에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의 답으로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함은 지금까지 비요크 음악의 한 특징이 됩니다.

그리고 한없이 순진해 보이는 얼굴에 언뜻 언뜻 내비치는 거치른 감성, 끓어오르는 분노 속에서 느껴지는 천진한 장난기는 비요크의 모호한 이미지를 더더욱 증폭시킵니다.

1995년에 발표된 두 번째 앨범 는 비요크의 능력을 더욱 공고히 쌓아갑니다. 테크노와 전통이 절묘하게 융합된 이 앨범은 비요크에게 일렉트로니카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안겨줍니다. 더불어 이 앨범에 수록된 빅 밴드 재즈 스타일의 ‘It's Oh So Quiet’는 비요크를 영화 배우로의 길로 안내합니다.

<어둠 속의 댄서>의 감독인 라스 폰 트리에가 의 뮤직 비디오를 통해서 비요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본격적인 뮤지컬 영화였던 <어둠 속의 댄서>는 노래와 연기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였고, 비요크는 셀마가 되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내보였습니다.

덕분에 영화음악만 맡기로 되어 있었던 그는 주인공 ‘셀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감성으로 노래, 춤, 연기를 소화한 비요크에게, 지난 해 칸 영화제는 여우주연상을 헌정하였습니다.

<어둠 속의 댄서>의 셀마를 잊고 이제 비요크는 다시 뮤지션으로 귀환합니다. 다가오는 5월 발표 예정인 새로운 앨범 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비요크를 다시 스크린에서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지난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그는 배우로서 자신의 경력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선언했기 때문이지요. <어둠 속의 댄서>가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견인차는 비요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만, 쏟아부은 열정만큼이나 상대적인 공허함도 그만큼 컸기 때문인가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슬퍼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음악만으로도 자유와 파격의 날개를 달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요크의 마력에 빠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김이 혁상 객원기자WEIRDO@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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