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대세로 자리 잡은 9인조 걸그룹 ‘트와이스’

‘우아하게-치얼업-티티-낙낙-시그널’로 이어지는 

노래에선 주체적인 여성 목소리 찾아볼 수 없어 

데뷔 이후 줄곧 노래로 ‘사랑’ 이야기하지만 

어린 아이가 떼 쓰듯 사랑 갈구하는 가사 반복

 

트와이스 ⓒJYP 엔터테인먼트
트와이스 ⓒJYP 엔터테인먼트

지금 연예계에서 가장 ‘핫’한 걸그룹은 트와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놓는 노래마다 ‘중박’ 이상은 거뜬히 해내며 연달아 히트를 치는 트와이스는 어느새 가요계 대세로 자리 잡았다. 2015년 데뷔곡 ‘우아하게’를 시작으로 ‘치얼 업(CHEER UP)-티티(TT)-낙낙(KNOCK KNOCK)-시그널(SIGNAL)’까지 1년 반 동안 쉼 없이 활동해오며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트와이스는 노래를 통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려는 주체로 나서지 않고, 수동적 위치에 머무른다. “내 맘도 모르고 너무해” “내 맘을 열어줘” “사인을 보내는데도 왜 못 알아채” 등의 노랫말에선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의 투정이 들린다.

“조르지 마 어디 가지 않아. 되어줄게 너의 Baby. 좀 더 힘을 내.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 돼. 그래야 네가 날 더 좋아하게 될 걸. (…) 상처 입을까봐 걱정되지만 여자니까 이해해주길. 속마음 들킬까봐 겁이 나.”(‘치얼 업’)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네. 그저 바라보며 매일 상상만 해. I'm like TT. Just like TT. 이런 내 맘 모르고 너무해. (…) 맴매매매 아무 죄도 없는 인형만 때찌”(‘티티’)

“열두시가 되면 닫혀요. 조금만 서둘러줄래요. 밤이 되면 내 맘속에 출입문이 열리죠. 누군가 필요해. 내 맘이 열리게 두드려줘. 세게 쿵 쿵 다시 한 번 쿵쿵. 내일도 모레도 다시 와줘. 준비하고 기다릴게”(‘낙낙’)

“시그널을 보내. 근데 전혀 안 통해. 눈빛을 보내 눈치를 주네. 근데 못 알아듣네. 답답해서 미치겠다 정말.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시그널을 보내. 만날 때마다 마음을 담아 찌릿 찌릿 찌릿 찌릿”(‘시그널’)

 

트와이스 ‘낙낙(KNOCK KNOCK)’ 뮤직비디오 영상. ⓒ‘낙낙’ 뮤직비디오 유튜브 영상
트와이스 ‘낙낙(KNOCK KNOCK)’ 뮤직비디오 영상. ⓒ‘낙낙’ 뮤직비디오 유튜브 영상

트와이스의 노래에서 여성은 ‘네가 좋다’는 표현을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다. “여자는 쉽게 맘을 주면 안 된다”며 상대방이 먼저 좋아한다는 말을 해주길 바란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기다리는 입장’을 노래할 뿐이다. 간혹 “난 너를 원해. 내 사랑을 알아줘”라는 식의 노랫말이 등장하지만, 이는 여성의 당당한 외침이 아닌 앙탈에 가깝다. ‘우아하게’ 이후 ‘치얼 업’ 때부터 시작된 애교 콘셉트는 가사뿐만 아니라 포인트 안무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눈을 크게 뜨고 주먹 쥔 손을 양 볼에 갖다 댄 채 고양이처럼 까딱대는 ‘샤샤샤(shy shy shy)’ 안무는 한때 열풍을 불러일으킨 ‘뿌잉뿌잉’ 애교를 연상케 한다. 우는 이모티콘을 손가락으로 표현한 ‘티티(TT)’와 ‘이런 내 맘 모르고 너무해’에 맞춰 손을 양 겨드랑이에 올리고 울상 짓는 얼굴에선 토라진 어린 아이가 보인다. 문을 두드리는 걸 표현한 ‘낙낙(KNOCK KNOCK)’과 안테나를 만들어 사랑의 신호를 보내는 ‘시그널(SIGNAL)’의 ‘찌릿찌릿’까지…. 이에 대해선 “안무라기보다는 유치원생의 율동 같다” “티티(TT) 이후 중독성을 노린 쉽고 간단하면서 귀여운 손동작 안무가 지속되고 있다” “트와이스의 포인트 안무에는 한국 걸그룹이 수행해야 하는 모든 게(순수하고 여린 소녀 이미지, 수동적인 여성 콘셉트 등) 담겨있다”(트위터리안 @mina********) 등의 반응이 뒤따른다. 

트와이스는 노래 가사도, 안무도, 의상도 어린 아이를 닮아가고 있다. 노래할 때 표정도 제한돼 있어 환한 웃음을 짓거나 애교 섞인 울상을 지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콘셉트를 트와이스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걸그룹 대부분은 무해하고 귀여운 소녀 콘셉트를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보너스베이비’라는 신인 걸그룹은 지난 12일 음악방송에서 ‘어른이 된다면’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턱받이 의상을 착용해 ‘로리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트와이스 ‘시그널(SIGNAL)’. ⓒJYP 엔터테인먼트
트와이스 ‘시그널(SIGNAL)’. ⓒJYP 엔터테인먼트

왜 걸그룹은 점점 10대 청소년 코스프레에 몰두하는 것일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린 여성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젠더 권력을 발휘할 수가 없어진 남성들이 점점 더 어린 여성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남성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혹은 돈과 권력으로 여성들을 누르고 ‘오빠만 믿어’가 됐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황 평론가는 “성인 여성을 제어하거나 만족시킬 수 없다는 두려움에 남성들은 회사 동료나 자기와 학점 경쟁을 하는 여성은 무서운 상대로 여기게 됐다”며 “만만하게 어깨에 손 걸치면서 ‘오빠 믿고 따라와’를 행할 수 있는 여성상이 중학생 정도로까지 내려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예쁜 교복을 입고 귀여운 표정을 지은 채 춤을 춰주는 여성을 원하는 남성들이 많아지면서 걸그룹이 점점 ‘소녀화’가 돼가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5일 발표된 신곡 ‘시그널’ 뮤직비디오에서 트와이스는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초능력은 외계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데 그친다. ‘시그널’ 티저 공개 당시 많은 이들은 멤버들이 각자 초능력으로 무엇을 할지 궁금해하며 호기심과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뮤직비디오 공개 후 기대감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고 “초능력을 고작 외계인 한 명 쫓아다니는 데 사용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JYP 엔터테인먼트가 9명의 소녀를 통해 묘사하는 여성 캐릭터는 점차 확고해지고 있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사랑을 기다리며 수동적이고 무해한 소녀’. 그리고 이것은 한국남성들이 바라는 여성상이기도 하다.

음악평론가 블럭(bluc)은 “‘티티-낙낙-시그널’ 순으로 트와이스 노래 가사와 퀄리티가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것 같다”며 “가사로 비판을 받았던 ‘치얼 업’ 이후 발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퇴행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제작자의 고민 없는 생산은 트와이스에게 커다란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블럭은 “안이한 기획과 가사가 지속될수록 노래 흥행은 물론이고 트와이스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기획사나 제작자들이 이를 분명히 인지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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