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만난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 부모들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다”

마지막 한 명이 부모 곁에

돌아오는 그날까지 함께 할 것

 

4월 4일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만 미수습자 만남의 장소 컨테이너 앞에서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허다윤양 어머니 박은미 씨가 딸의 사진을 보며 얼굴을 만지고 있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지난 16일 객실 중앙부 우현 3-6구역에서 수습한 치아와 치열 등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법치의학 감정을 시행한 결과 허양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뉴시스·여성신문
4월 4일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만 미수습자 만남의 장소 컨테이너 앞에서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허다윤양 어머니 박은미 씨가 딸의 사진을 보며 얼굴을 만지고 있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지난 16일 객실 중앙부 우현 3-6구역에서 수습한 치아와 치열 등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법치의학 감정을 시행한 결과 허양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뉴시스·여성신문

감동으로 가득한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을 나와서 우리가 찾아간 곳은 목포신항이었다. 그곳은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늦은 오후 목포신항은 고즈넉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 길목을 지키는 근무자들 그리고 무심한 깃발과 현수막이 조용하게 서 있었다. 세월호는 철조망 벽 너머 저편에 길게 누워 있었다. 우리는 미수습자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우리 일행은 2003년 대구지하철화재참사 희생자 어머니, 아버지들이었다.

은화 엄마와 다윤이 엄마를 만났다. 두 엄마가 눈물을 삼키며 우리에게 한 말은 ‘마지막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무서움’에 대해서였다.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팽목항에 달려갔는데, 혼절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까닭모를 두려움과 무서움이 밀려왔다고 했다. 한 분 두 분 차디찬 바다 속에서 올라온 가족들을 부여안고 오열하며 팽목항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남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애끓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세월호 희생자 가운데 9명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단원고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학생과 고창석, 양승진 선생님, 여섯 살 어린이 권혁규군과 아버지 권재근님, 그리고 이영숙님이었다.

기다림은 고통이었다. 아니 공포였다.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약해지면 어떻게 하나. 은화 엄마와 다윤이 엄마는 차디찬 바다 밑에 있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몸서리를 쳤다고 했다. 물론 엄마들은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아이들을 찾기 위해 3년 동안 팽목항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전국을 다니며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렸다. 정부에, 정치인들에게, 시민사회에 “세월호 거기에 아직 사람이 있다”고 외쳤다. 인양의 필요성을 부르짖었다. 간절했다. 그리움 그리고 죄책감 때문이었다.

다정하고 속 깊은 딸 조은화는 공무원이 꿈이었다. 몸이 아픈 엄마를 챙기는 착한 딸 허다윤은 아빠의 모자가 좋다고 그것을 가지고 수학여행을 떠났다. 남현철은 기타를 좋아했고 글솜씨도 좋았다. 운동을 좋아했던 박영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줄 축구화에 애절한 글을 써서 기다리고 있다. 고창석 선생님은 배가 기울자 자기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탈출을 도왔다. 양승진 선생님도 구명조끼를 제자들에게 벗어주며 제자들을 더 탈출시키기 위해 자신은 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제주로 이사를 가던 한 가족 가운데 여동생만 살았고 엄마는 주검이 돼 돌아왔으며 여섯 살 권혁규와 아빠 권재근님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이영숙님은 일찍 남편을 잃고 외아들을 시댁에 맡기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세월호가 바다 위로 올라왔다. 실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간절한 기도가 이룬 기적이었다. 유골과 유류품을 수습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은화 엄마와 다윤 엄마는 고맙고 또 고맙다고 했다. 그 기적 같은 일에 고맙고 함께 기도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맙고, 현장에서 수습에 나서고 있는 분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미수습자 발견, 확인이 조금씩 진전되고 있었다. 고창석 선생님의 유골을 확인했고, 박영인의 교복을 발견했다. 조은화로 보이는 유골은 확인 과정에 있다. 우리가 목포신항을 방문한 날은 허다윤이 엄마의 품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그날 새로 발견한 치아와 유골이 다윤의 것으로 확인됐다.

은화 엄마와 다윤 엄마는 이제 또 다른 걱정을 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9명 가운데 여기에서 또 마지막 남게 될지도 모를 가족이 겪게 될 두려움과 무서움 그리고 죄책감을 염려하고 있었다. 295명이 수습되고 9명이 마지막으로 남게 됐을 때 느꼈던 절망감을 알기 때문이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저희는 유가족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절규했던 그 캄캄한 상황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의 고통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목포신항에서 돌아온 다음날, 다윤의 치아를 확인했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다. 그리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9명이 전원 발견될 때까지 함께 기다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지막 한 분이 돌아오는 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 미수습자 가족들은 훌륭하다. 위대하다. 또 눈물이 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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