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엔 여자만 다닐까
여대엔 여자만 다닐까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7.05.18 04:48
  • 수정 2017-05-25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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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자 성소수자라서 이중의 차별 받는

대학 내 ‘비남성 성소수자’들

여대생=여성, 성소수자=동성애자 편견 여전

 

젠더 이분법을 벗어나 자신만의 성적 지향·정체성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비남성’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화여대 성소수자 모임 갤럭시
젠더 이분법을 벗어나 자신만의 성적 지향·정체성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비남성’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화여대 성소수자 모임 갤럭시

“오~ 너 오늘 여자여자하다!” “왜 미팅 안 나가? 눈 되게 높다?” “남자 좀 만나!”

누군가에겐 ‘여자끼리’ 나누는 평범한 대화가, 누군가에겐 불편한 말들이다. 트랜스남성인 최모(이화여대 3) 씨, 퀘스처너리(Questionary,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해 의문을 갖고 탐색하는 사람)인 ‘이카리’(동덕여대 성소수자 모임 ‘코튼캔디’ 회원) 씨도 그렇다. “여성은 다 남성을 좋아할 거라는 고정관념 바깥의 사람”들은 “인기 남자 아이돌 얘기,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 얘기로 과 단톡방이 소란스러울 때면 늘 소외되는 기분”이다. 

“‘여대에 성소수자가 있어?’ ‘어떻게 여자끼리 그래?’ 같은 말을 들으면 불쾌하고 공중에 붕 뜨는 기분이에요. 내가 성소수자고 나 같은 사람들도 학교에 다니는데, 없다고 하니까.”(이카리)

‘여성’을 남성의 반대말로 여기던 시대는 갔다. 젠더 이분법을 깨고 자신만의 성적 지향·정체성을 찾아 동등한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게이가 아닌, ‘비남성’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성소수자 인권 감수성이 높은 편이라는 대학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대생은 모두 ‘여성’이며, 성소수자는 다 동성애자일 거라는 편견은 아직 굳건”하다.

 

지난달 28일 이대 게시판에 붙어 있던 성소수자 관련 자보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찢어져 버려졌다. ⓒ이화여대 성소수자 모임 갤럭시
지난달 28일 이대 게시판에 붙어 있던 성소수자 관련 자보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찢어져 버려졌다. ⓒ이화여대 성소수자 모임 갤럭시

요즘 각 여대엔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성소수자 여성’ 모임이 적어도 하나씩 존재한다. 이들이 체감하는 학내 성소수자 차별·혐오는 갈수록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때 아닌 ‘성소수자 인권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육군의 동성애자 색출 의혹, 대선 후보들의 토론 중 동성애 혐오발언이 불씨가 됐다. 이런 발언들이 쏟아졌다. “동성애자가 에이즈에 많이 걸리는 건 사실이잖아. 치료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하고.” “차별엔 반대하지만 동성혼 합법화는 안 돼.” “싫다고 말할 자유도 없나?” “퀴어가 완장이냐?” “그렇게 나오면 난 성소수자 지지 안 할란다.”

성신여대에선 한 재학생이 2주 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왜 동성애는 안 되는지 알려 주겠다. X날 X시에 얼굴 까고 나와라”라며 학내 성소수자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정작 당일 현장엔 나오지 않았다는 그 학생은 “퀴어가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글을 남겼다. “동성애는 정신병”이라고 주장하는 글도 거듭 올라와 많은 학내 성소수자들에게 상처를 줬다. 

학교도 성소수자들을 꾸준히 탄압했다. “보수 기독교적 학풍을 주도한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2008년 직접 학내 성소수자 단체의 게시물을 떼어내고 CCTV를 확인해 부착한 학생을 찾아내도록 했어요. 기존 학내 성소수자 모임은 와해됐죠. 지금 저희가 공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심 총장의 부재 덕이에요.” (키위·성신여대 성소수자 모임 ‘큐리스탈’ 회원) 심 총장은 교비 횡령, 사립학교법 위반 등 혐의로 올 3월부터 직무 정지됐다.

 

성신여대 성소수자 모임 ‘큐리스탈’은 부착 이후 몇 시간 만에 뜯겨 나간 대자보 자리에 “성신에 존재하는 혐오의 민낯을 똑똑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어 붙였다. ⓒ성신여대 성소수자 모임 큐리스탈
성신여대 성소수자 모임 ‘큐리스탈’은 부착 이후 몇 시간 만에 뜯겨 나간 대자보 자리에 “성신에 존재하는 혐오의 민낯을 똑똑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어 붙였다. ⓒ성신여대 성소수자 모임 큐리스탈

‘페미니스트 파라다이스’로 알려진 이대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 본관 점거 시위 땐 무척 퀴어 친화적인 분위기였어요. 커밍아웃한 학생들, 트랜스젠더 남성 졸업생의 방문도 환영받았죠. ‘벗’들 간의 연대감이 혐오 감정을 눌렀어요. 대선 토론에서 유력 후보들의 동성애 혐오 발언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죠. 학내 커뮤니티엔 심각한 혐오발언이 쏟아지고, 성소수자 인권 대자보를 붙이면 누군가 떼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찢어요. 작년 시위 이후로 교직원, 총장, 경찰도 자보에 손을 안 대는데, 학생들이 자보를 찢는다니까요.” (‘헤일러’, 이대 3) “대자보 훼손 사태를 비난했다가 ‘퀴어가 학교를 위해 한 게 뭔데 생색내냐’란 말을 들었어요. 터무니없고 서운해요. 이대 구성원들이 말하는 페미니즘에 성소수자의 자리는 없나....” (김모씨·이대 성소수자 모임 ‘갤럭시’ 회원)

강의실 내 차별·혐오 발언은 이들에게 일상이다. “여러분이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려면...” “남자친구 있는 사람 손들어봐라” 등은 기본이다. “수업 중 하리수, 홍석천 씨 얘기를 하면서 징그럽다,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라는 식으로 말한 교수도 있었어요. 일부 여성학 수업에서조차 트랜스젠더, 젠더퀴어의 존재를 비난하는 강사가 있어서 당황스러웠죠.” (최모 씨·이대 3)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다가 ‘아웃팅’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이들을 더 위축시킨다. 학내 커뮤니티의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모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이카리’ 씨는 ‘외부 유출죄’로 지난해 학내 커뮤니티 활동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가 속한 동아리의 대표는 “너 때문에 동아리의 명예가 실추됐다. 글 빨리 내려”라며 윽박질렀다. 수업에서 출석 확인차 이름이 불리면 “쟤가 걔야?” 하는 수군거림과 시선을 느꼈다. “많은 ‘여대’엔 ‘우리’와 다른 ‘외부인’을 철저히 나누고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정말 심한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어요.” (최모 씨·이대 3)  

 

지난해 이대 재학생과 졸업생 등이 단결해 학교 본부를 상대로 승리했을 때, 학생들 내부에선 정치적 의사 표현과 연대를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일어 논란을 빚었다. ⓒ이정실 사진기자
지난해 이대 재학생과 졸업생 등이 단결해 학교 본부를 상대로 승리했을 때, 학생들 내부에선 정치적 의사 표현과 연대를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일어 논란을 빚었다. ⓒ이정실 사진기자

 

“나는 페미니스트 성소수자다. 순수한 이화인으로 소속되고자 내 정체성을 숨겼다. (...) 느린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이런 배제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지 않는가?” 당시 이대에 붙었던 대자보엔 이런 비판이 담겼다.
“나는 페미니스트 성소수자다. 순수한 이화인으로 소속되고자 내 정체성을 숨겼다. (...) 느린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이런 배제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지 않는가?” 당시 이대에 붙었던 대자보엔 이런 비판이 담겼다.

헤테로 여성이나 남성은 모르는 

미묘한 차별과 두려움 겪지만

경험을 기록·공유하고 담론 축적할 기회 부족해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싸움 아닌

폭넓은 젠더 아우르는 페미니즘 필요해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비남성’ 성소수자로 사는 일은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여성이나 남성은 모르는 미묘한 차별과 두려움을 경험하는 일”이다. “학내 커뮤니티의 성소수자 관련 이야기는 거의 게이 얘기에요. 레즈비언 얘기는 드물고, 성소수자 여성,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등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없죠.” (헤일러)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역대 대표도 지정성별 남성들뿐이에요. 게이들이 활동을 이끌죠. 뒷풀이 자리에선 여성혐오적 농담이 자연스레 오가요. ‘여성’은 발언권도 적은데다, 그런 분위기에 더 주눅 들게 되죠.”(소양·동덕여대 여성학 동아리 ‘WTF’ 회원) 

그러나 같은 처지의 성소수자들끼리 모여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며 담론을 축적할 기회는 늘 부족했다. “여대 퀴어 대표들이 지난 겨울에야 처음으로 한데 모였어요. 이런 문제의식들을 함께 나눴고, 우리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앞으로 여대 성소수자들의 정기 모임을 여는 등 꾸준히 연대(sisterhood)를 도모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의 문제를 가시화할 중요한 기초가 될 거예요.” (이다솜·‘큐리스탈’ 대표)

이들이 원하는 새 시대의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다. 여성과 성소수자 내부의 다양한 차이와 고민을 직시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대세로 떠올랐지만,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여성 인권은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여성의 인권’에 머물러 있어요. 비남성의 젠더 범주로 규정된 이들까지 아우르는 교차성 페미니즘이 필요해요.” (최씨) “어느 집단에나 ‘내부투쟁’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죠. 잘 모른다는 핑계만 대면서 서로를 피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으면 해요. 지금 우리에겐 대면하고 토론하는 페미니즘이 필요해요.” (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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