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일본 시니어, 공동체 일구는 유럽 시니어

한국 시니어 고용률 1위지만 생계불안에 허덕

고용 기회 없고 연금 부족…시니어 대책 절실

 

‘할머니들의 하라주쿠’로 불리는 스가모 지조도리 상점가에선 일하는 여성 노인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스가모 상점가 입구에 있는 ‘모찌(찹쌀떡)’집 직원들이 손님을 맞고 있다. ⓒ여성신문
‘할머니들의 하라주쿠’로 불리는 스가모 지조도리 상점가에선 일하는 여성 노인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스가모 상점가 입구에 있는 ‘모찌(찹쌀떡)’집 직원들이 손님을 맞고 있다. ⓒ여성신문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르면 올해 말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14% 이상이 되는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5년에는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를 맞는다. 급속한 고령화로 가난과 질병, 고독 등 ‘3중고’에 시달리는 시니어의 증가와 생산 가능 인구 감소로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화 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유럽과 일본은 고령화 문제의 해법을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에서 찾는다.

 

프랑스 파리의 룩상부르그 공원에서 노인들이 모여 기공체조를 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프랑스 파리의 룩상부르그 공원에서 노인들이 모여 기공체조를 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프랑스는 이미 1864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에 이르는 고령화에 접어들었다. 고령사회를 의미하는 14%는 1979년 넘어섰다. 내년이면 초고령 사회를 뜻하는 20%에 진입할 것으로 프랑스 국립 경제통계경제연구소(INCEE)는 전망한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를 경험하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연금 체계를 구축한 나라인 만큼 프랑스는 안정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자랑한다. 그 덕분에 프랑스 시니어는 운동과 취미 생활, 자원봉사로 활동적인 노후를 즐긴다.

실제로 42년간 일한 70대 베티씨는 2012년 은퇴 후 매달 1850유로(한화 약 246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은퇴 전 받던 임금 2000유로의 90%를 넘는다. 고양이 한 마리와 단둘이 40㎡(12평) 크기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그는 “아주 넉넉하진 않아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안정적인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에는 ‘사회연대’(solidarité)라는 프랑스 복지정책의 기본철학이 있다. 소수만을 위한 특권을 지양하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연대의 가치를 지향한다.

2006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시니어노믹스’(Seniornomics=Senior+Economics, 시니어의 활발한 노동 참여를 통한 경제성장)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나라다. 5명 중 1명이 노인인 사회에서 노동력은 줄어들면서 성장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이 겪은 장기적인 경기불황의 이면에는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고령인구의 급증과 노인부양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 등이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일하는 노인도 늘었다. 의료·간호 시장에선 시니어 간호사나 간병사 고용이 늘었고, 농촌에선 노인이 주축이 된 마을기업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 사례도 있다. 일하는 노인을 유별나게 보지 않는 사회문화가 정착한 점도 시니어노믹스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일본 정부는 2006년 고령자고용안정법에 이어 2013년 4월부터 신고령자고용안정법을 시행 중이다. 정년을 65세로 연장한 것이 골자다. 60세 이후의 임금이 60세 당시 받은 임금의 75% 미만인 경우 고용보험에서 임금을 보전해준다. 예컨대 60세 때 임금이 40만 엔(보너스 제외)인데 그 이후 임금이 24만 엔으로 떨어졌으면 24만 엔의 15%인 3만6000엔을 지급해준다. 고령자 고용 촉진을 위해 기업에 직접적인 지원금 외에 세금 우대 혜택을 준다.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모은 수레를 밀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모은 수레를 밀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반면, 한국의 시니어는 은퇴 이후에도 일하는 노인은 많지만 생계불안에 허덕이는 이들도 많다. 한국의 75세 이상 고용률은 17.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OECD 평균은 4.8%로 한국보다 13.1%포인트나 낮았다. 65세 이상 고용률은 30.6%로 전체 OECD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38.7%)에 이어 2위였다. 아이슬란드는 70∼74세의 고용률이 17.2%로 뚝 떨어졌다. 일하는 노인이 많은데도 노인 빈곤율은 시장소득 기준(1인 가구 포함) 63.3%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원인은 이른 정년과 노후준비 부족, 넉넉지 않은 공적연금이다. 러다 보니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은퇴 직후인 55~59세의 고용률은 일본보다 떨어진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일본 고령자 일자리 창출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55~59세의 고용률은 70.6%였다. 이는 일본의 55~59세 고용률인 83.4%에 비하면 12.8%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60~64세의 고용률도 우리나라(59.4%)보다 일본(62.2%)이 2.8%포인트 높았다.

2006년 52.6%에 불과했던 일본의 60~64세 고용률이 빠르게 증가한 것은 고령자를 위한 맞춤형 고용 지원정책이 갖춰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1995년 ‘고령사회대책기본법’을 만들고 고령자 고용지원정책을 펼쳤고, 관련 예산은 연평균 4.7%씩 증가했다.

생산가능인구가 1% 늘어날 때 1인당 실질GDP(국내총생산)는 0.08%포인트 증가하는 반면 노인인구가 1% 늘어날 땐 0.041%포인트 감소한다는 게 IMF(국제통화기금)의 분석이다. 초고령사회에선 경제 성장과 사회적 비용 감소를 위해 시니어 인구의 경제 활동은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얘기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는 “국내 고령화 단계에 적합한 고령자 고용 관련 제도의 전반적인 재검토와 고령자의 생활 일 양립 등을 위한 정책 배려 등이 있어야 한다”며 “기업도 고령 인재 활용을 위한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