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절반 여성이 평화를 만든다

전쟁중의 프리슈티나 여성·아동에 의료지원

르완다 대학살 후 홀로 남은 여성 자립 도와

평화와 인권에 공헌한 여성들을 위한‘밀레니엄 평화상’의 첫 수상자가 14일 발표됐다. 밀레니엄 평화상은 유엔 여성개발기금과 인터내셔널 알러트가 제정한 것으로 폭력사태 시 여성이 희생자에 머물지 않고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수상자는 코소보의 플로라 브로비나, 파키스탄의 아스마 야한기르와 히나 질라니 자매, 르완다의 베네란다 은잠바자마리야 등이다. 단체 수상자로는 콜롬비아의‘루타 파시피카 데 라스 무제레스’와 파푸아 뉴기니의 ‘레이타나 네한 여성개발기구’가 선정됐다.

1901년부터 시상된 노벨상의 수상자 총 106명 중 여성이나 여성단체는 단 10명에 불과한 현실이 단적으로 나타내듯 그 동안 여성들이 평화에 기여한 공로는 과소평가 돼 왔다,

유엔 여성개발기금 사무총장 노엘린 헤이저는 “성간의 불평등과 분쟁을 조장하는 세력들은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면서 “이 상을 통해 이제는 평화를 정착시키는 과정과 정치·경제 영역에서 여성이 동등한 협력자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내셔널 알러트의 케빈 클레민츠 사무총장은 “무력갈등 시에 여성들은 흔히 그려지는 것처럼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라 평화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면서 “단지 전 인구의 반만이 참여하는 평화가 과연 어떤 모습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밀레니엄 평화상’ 수상자들은 내달 7일 유엔본부에서 열릴 시상식에서 미 조각가 팀 홈즈가 만든 청동 조각상을 받는다.

송안은아 기자sea@womennews.co.kr

■수상자·단체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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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라 브로비나

플로라 브로비나=알바니아 의사인 플로라 브로비나(사진)는 코소보의 독립과 여성과 아동의 인권보호에 주력했다. 그는 전시 지역인 프리슈티나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위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브로비나가 1992년 조직한 알바니아여성연합은 1998년 드레니카에서 알바니아인에 대한 세르비아군의 야만적 행위를 중지시키기도 했다. 1999년 4월 코소보 군에 의식과 의료품을 제공하고 유고슬라비아에 테러를 시도한 혐의로 기소된 그는 지난해 11월 슬로보단 밀로세비치가 실각할 때까지 옥살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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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마 야한기르

아스마와 히나 자매=아스마 야한기르(사진)와 히나 질라니 자매는 늘 파키스탄 여성·인권 운동의 선두에 서 있었다. 이들은 1980년 남편으로부터 학대받는 여성들을 위해 ‘여성행동포럼’을 설립하는 데 참여했다. 이듬해에는 파키스탄 최초로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법률회사를 설립했으며 1986년에는 파키스탄인권위원회의 공동설립자가 됐다. 이들은 96년 이래로 24시간 정부 감시 대상이 됐다.

베네란다 은잠바자마리야=4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지를 떠나야 했던 1994년 르완다 대학살 이후 홀로 남은 여성들은 집과 마을이 파괴된 고향에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베네란다 은잠바자마리야는 이 같은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해 30여개의 여성단체가 모인 ‘프로-팜므 트웨세 암웨’의 대표를 맡는다, 또한 그는 아프리카 여성평화네트워크 연합(FERFAP)에 참여하고 아프리카단일여성평화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베네란다는 르완다 여성의 정치력·경제력을 키우는 데 헌신했다. 더불어 자국내 여성차별적인 법을 개정하고 정치와 경제 상황을 바로잡는 데 힘을 기울였다.

루타 파시피카 데 라스 무제레스=콜롬비아가 분쟁에 휩싸였을 때 ‘루타 파시피카 데 라스 무제레스’는 핵심적인 중재자 역할을 했다. 이 단체는 국내·국외 각 분야 정책 결정자들과 교류하면서 공존과 평화를 위한 여성들의 대안을 강조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계층의 여성들이 함께 일하기 위한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또한 1996년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원주민 조직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전문직과 농민 여성의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레이타나 네한 여성개발기구=1990년대부터 레이타나 네한 여성개발기구는 파푸아 뉴기니의 부겐빌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1989년 정부와 반군 사이에 소규모 전투가 발발했을 때 부겐빌의 경제는 폐쇄되고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1992년부터 레이타나 네한은 이웃과 지역사회 사이에 파괴된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전쟁 기간 중 여성들이 평화를 가져오는 데 참여하고 가정을 이끌 수 있도록 도왔다. 또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할 수 있도록 소규모 수익사업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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