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대통령’ ‘성평등 대통령’ 선언한 주요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선 보수 기독교계 눈치 보며 침묵하거나 후퇴

차별금지법·군형법 제92조의6항 폐지 공약 후보는 심상정 뿐

“성소수자 인권 보장은 시대적 흐름...후보들은 근시안적 표 계산에 갇히지 말라”

 

지난 25일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 2017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동성애 반대합니까?”라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질문에 “네, 저는 반대합니다”라고 답해 파문이 일었다. ⓒJTBC 영상 캡처
지난 25일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 2017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동성애 반대합니까?”라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질문에 “네, 저는 반대합니다”라고 답해 파문이 일었다. ⓒJTBC 영상 캡처

“군 부대 내 동성애는 군 기강을 약하게 합니다. 동의하십니까?”(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동의합니다.”(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동성애 반대합니까?”(홍 후보)

“네, 저는 반대합니다.”(문 후보)

지난 25일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 2017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의 한 장면. 각종 여론조사 결과 1위를 달리는 문 후보가 성소수자 인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발언을 하자, 지켜보던 시민들은 아연실색했다. 문 후보가 토론 후반 ‘동성혼 반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 반대’ 입장이라며 정정했지만, SNS에선 ‘성소수자 인권이 찬반의 문제냐’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 촛불을 든 시민들이 외쳤다. “나도 잡아가라!”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다!” 육군이 ‘동성 간 성행위’를 이유로 군형법 92조의6항을 적용해 동성애자 대위를 구속한 데 대해 항의하는 시위였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군인권센터 등 성소수자 단체는 오는 금요일에도 국방부 앞에서 시위를 열 예정이다.

성소수자 이슈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대통령’ ‘성평등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주요 대선 후보들은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선 침묵하거나 후퇴하는 모습이다. 새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도 높지만, 사회적 약자의 인권 문제조차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는 후보들의 태도에 대한 실망도 높아만 가고 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25일까지 밝힌 성소수자 인권 관련 입장 ⓒ여성신문
주요 대선 후보들이 25일까지 밝힌 성소수자 인권 관련 입장 ⓒ여성신문

후보들의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입장을 보면 이들의 성소수자 인권 척도를 가늠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뿐 아니라 개인의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을 막기 위한 법안이다.

25일 현재까지 심상정 정의당 후보만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군형법 92조의6항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나머지 주요 후보들은 보수 기독교계의 표심을 의식해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유보적이거나 퇴보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 후보·홍 후보·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지난 20일 ‘8천만민족복음화대성회’와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주최한 ‘제19대 대통령선거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를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입장을 밝혔다. 앞서 지난 20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인권 8대 의제 대선후보 답변서’에서 문 후보, 안 후보는 “(성소수자는) 차별받아서는 안 되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답한 바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지난 18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난 성소수자라는 용어를 싫어한다. 동성애도 아니다. (...) 성은 하늘이 정해준 것” 이라고 말했다. ⓒYTN '대선 안드로메다' 영상 캡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지난 18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난 성소수자라는 용어를 싫어한다. 동성애도 아니다. (...) 성은 하늘이 정해준 것” 이라고 말했다. ⓒYTN '대선 안드로메다' 영상 캡처

국내에선 성소수자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높다. ‘성소수자 인권이 전과자보다도 낮다’는 평가도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해 5월25일∼12월23일 만 15세 이상 국민 1504명을 대상으로 ‘2016 국민 인권의식 조사’를 벌인 결과다. 지난 2015년 11월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위원회(ICCPR)는 ‘한국 사회에 성소수자 혐오와 편견이 만연하다’고 우려했다. 외신들도 한국의 낯부끄러운 현실을 비판했다. 지난 13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지는 “급격한 기술과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며 사회적 이슈에서 뒤처지고 있다”고 평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는 대선을 앞두고 ‘더 이상의 퇴보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는 지난 15일 ‘2017 대선 게이 커뮤니티 요구안’을 후보들에게 전달했다. 같은 날 이 단체가 연 국내 최초 ‘게이 서밋’에서 나온 차별금지법, 동성결혼 법제화, 군형법 제92조의6항 폐지 등 요구를 담았다. 후보들에겐 다음달 1일까지 답변을 요청했다. 52개 대학 56개 성소수자 단체들의 모임인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큐브)’도 지난 20일 대선 후보들에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공약을 요구했다. 이들은 “성소수자 인권 보장은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대선 후보들은 근시안적인 표 계산에 갇히지 말고 차별금지법 제정 등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큐브)’는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후보들에게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공약을 요구했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제공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큐브)’는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후보들에게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공약을 요구했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제공

백승목 성공회대 총학생회장은 “성소수자 인권을 '합의의 대상'으로 보지 말라”고 말했다. 서울 한 사립대 내 성소수자 모임 대표 ‘래용’(25) 씨는 “대선후보들이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혐오 세력에 동조하고 성 불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 표명에 불과하다”며 “적폐 청산을 얘기하면서 소수자 인권 문제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나중에’ 보장해도 되는 인권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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