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강간 모의’ 고백에 경험 털어놓는 남성들

성범죄를 ‘추억’ ‘철없는 시절 치기’로 덮으려 해

성폭력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강간 문화’ 드러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운데)가 10일 오후 경남 창녕군 남지읍 선친 묘소 참배를 마치고 선영을 떠나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운데)가 10일 오후 경남 창녕군 남지읍 선친 묘소 참배를 마치고 선영을 떠나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그 시절 유행임~ 소인도 친구들과 장난친 경험 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요힘빈’”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강간 모의’ 사실을 인정하는 해명 글을 올리자 달린 댓글이다. 요힘빈은 돼지흥분제의 주 성분으로 흔히 돼지흥분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선후보가 과거 강간 모의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후보 사퇴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일각에선 성폭력범죄를 ‘혈기왕성한 때의 치기’로 덮으려 하고 있다.

이른바 ‘돼지흥분제’ 논란은 지난 2005년 출간된 홍 후보의 자전적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 내용 중 일부분이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촉발됐다. 책에는 홍 후보가 고려대 법대 1학년 시절 친구가 하숙집 친구의 부탁으로 다른 친구들과 돼지흥분제를 구해줬던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가 짝사랑하는 여성에게 돼지흥분제를 탄 맥주를 마시게 했으며, 옷을 벗기려고 시도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잇따른 해명에도 비판 여론이 잦아들지 않자 홍 후보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45년 전의 잘못이다. 이미 12년전에 스스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일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제와서 공개된 자서전 내용을 다시 재론하는 것을 보니 저에 대해서는 검증할것이 없기는 없나 보다”면서 “어릴때 저질렀던 잘못이고 스스로 고백했다. 이제 그만 용서해주시기 바란다”고 해명글에서조차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홍 후보의 글에는 “남자라면 돼지흥분제 얘기 안해본 남자 없다” 등 그의 행동을 옹호하며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댓글이 난무한다. 홍 후보의 강간 모의 사실만큼이나 충격적인 댓글 내용은 이렇다.

“철없는 시절에 치기어린 친구들의 장난에 반성까지 했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드러내 놓고 말은 안해도 그 시절 머스마들의 치기죠.”

“어릴 때 준강간정도 대다수 청년, 소년들 다 했죠. 그게 지금 생각하면 떳떳한 건 아니지만요.”

“그때야 정절이 최고 가치이나 지금은 세태가 그렇지 않기에 아무도 그걸 최후수단이라 생각안하죠. 그 옛날엔 보쌈해서 여자 얻기도 했다는데.”

“청소년 시절 그런 추억 한 두건 없는 대한민국사람 없습니다.”

홍 후보의 강간 모의 관련 기사에도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솔까(솔직히 까놓고 말해) 남자는 그럴 수 있지. 별 것 아닌 일에 트집잡지 마라.”

“그 당시에는 연애 못한 순진한 청년들이 저런 식으로 결혼하는 순수의 시대였다.”

“남자면 청춘 때 그런 일 없는 사람 있습니까.”

“어릴 때 모험심 강하고 호기심 많은 때 남자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여성 몰래 돼지흥분제를 먹여 성폭행을 시도하는 게 젊은 시절 치기이며, 청소년 시절 추억이라는 남성들의 댓글 고백은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강간 문화(rape culture)를 그대로 보여준다. 강간 문화는 성폭력을 농담이나 친근감의 표현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가해자보다는 피해자 행실을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가리킨다. 미국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강간 문화에 대해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이라고 정의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도 22일 SNS 논평을 통해 이번 논란에 대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여성을 폭력으로 강압하는 것을 터프한 로맨스로, 일상적으로 성적 대상화하는 것을 남성성의 발현으로 여기도록 방조한다”며 공고한 강간 문화를 비판했다.

단체는 “(이번 사건은)소라넷, ‘남학생 단톡방’ 등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져 온 강간모의와 같은 축에 있다”며 “홍 후보가 돼지흥분제를 구하러 다닌 1972년에서 반백년이나 되는 시간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강간모의 수단이 더 다양하고 악랄해졌다는 것뿐”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여성단체는 홍 후보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여성단체연합(상임대표 백미순)을 비롯한 28개 여성단체는 4월 25일 성명을 낸 후 “성폭력 범죄 모의에 가담한 홍 후보는 즉각 사퇴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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