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95주년 주제는 회개·성찰·고백

여성 평화비·평화 순례 추진

섬김의 정신으로 100주년 준비

“10만 회원의 헌신이 YWCA의 힘”

 

이명혜 한국YWCA연합회 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명혜 한국YWCA연합회 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생명살림입니다. YWCA가 펼치는 탈핵운동, 다음세대를 위한 청년운동, 성평등운동 그리고 평화운동과 돌봄정의운동까지 모두 생명을 살리는 일이죠.”

이명혜(71) 한국YWCA연합회 회장은 100주년을 앞둔 지금 YWCA가 역점을 두는 비전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세워진 한국YWCA연합회는 올해로 창립 95주년을 맞았다.

올해 YWCA의 화두는 회개와 성찰 그리고 고백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을 고백하고, 100년을 향해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20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기념예배·기념식은 ‘고백’을 주제로 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겼다. YWCA 초기정신을 되새기고 회복하자는 뜻의 ‘과거를 돌아보다’(Go Back), 지금의 역사가 있기까지 우리 모습을 회개하고 성찰하자는 ‘오늘을 고백하다’(告白), 내일을 향한 비전과 희망의 행진을 시작하자는 ‘100년을 향해 나아가다’(Go 100)이다.

이 회장은 “창립 95주년은 100주년으로 향하는 여정 속에 있다”면서 “과거를 정직하게 성찰하고, 앞으로 역사에 대한 시대적 책임감을 인식해야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YWCA는 올해 ‘여성 평화비’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해 한국 여성들이 여사의 갈피마다 겪어야 했던 고통을 기억하고, 앞으로 시대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하겠다는 “고백이며 다짐의 상징”이다. 이와 함께 100주년까지 이어지는 ‘평화순례 한라에서 백두까지’를 올해부터 시작했다. 95명의 여성들이 한라산을 시작으로 5년 뒤 100주년에는 백두산에 올라 평화와 통일을 외치겠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100주년을 향한 Y피스보트, YWCA 심포지움 등 다양한 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 모든 사업들은 이 시대와 사회를 ‘정의, 평화, 생명’의 관점을 품고 섬기고자 하는 YWCA의 다짐과 의지”라고 강조했다.

 

한국YWCA는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 김필례 김활란 유각경 선생 등 기독여성 지도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YWCA 95년의 역사는 한국현대 여성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YWCA는 여성운동에 큰 흐름을 이끌어왔다. 30년대 교육받을 기회조차 없던 여성들의 문맹퇴치를 위한 야학반을 만들어 농촌계몽운동을 펼쳤고, 50년대엔 근로여성교육과 프로그램 운동을, 이후엔 소비자운동, 가족법개정운동을 펼쳤다 특히 파출부 직업개발로 시작한 돌봄노동의 전문화에 앞장섰다. 80년대 이후엔 평화통일, 환경운동을 펼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이 회장은 “YWCA 95주년은 여성 지위 향상과 역량 강화를 위해 애써온 자취라고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YWCA는 태동부터 여성이 주체가 돼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에요. 여성으로서, 여성과 함께, 여성을 위해, 그 시대 속에서 요청되는 일들을 수행해 왔습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도 뜻 있는 여성들이 모여 실행하면 이룰 수 있고 사회적 분위기와 흐름을 변화시킬 수도 있지요. YWCA 운동은 좁은 의미의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정의, 평화, 생명이라는 가치를 위해 일하는 곳이지요. 다만 그 주체는 항상 여성이었고 여성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 40년 간 실무자와 자원지도자로 YWCA와 동행했다. 프랑스 여성 지식인이자 사회운동가인 시몬느 베이유의 짧을 생을 다룬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라는 책에 감명을 받아 헌신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았다고 했다. 그렇게 1977년 마산YWCA에서 프로그램 간사로 YWCA 활동을 시작해 사무총장, 이사, 임원으로 활동했고 2016년 전국 52개 회원YWCA를 총괄하는 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YWCA 전국회원대회를 치르고, 10만명의 회원들과 함께 ‘신고리 5·6호기 건설 전면 백지화’를 촉구하며 탈핵 운동에도 앞장섰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지역에너지 자립을 이뤄나갈 것도 결의했다.

이 회장은 “연합회 회장은 매우 어려운 자리이기 때문에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함께 활동하는 실행위원, 사무총장, 실무활동가들과 협력해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지역을 기반으로 전 연령대 회원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한마음을 품고 같은 목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우리 YWCA가 가진 힘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무활동가로 활동했던 초기 10년이 40년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꼽았다. 이 회장은 “힘든 줄도 모르고 현장을 뛰어다녔던 그때 정말 행복했다”며 “실무활동가로 일에 대한 책임감과 가치를 깨달았던 그때 그 시간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직접 목격한 80년 광주의 모습도 잊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마산YWCA 간사로 일할 때 재정사업으로 영광굴비를 판매했는데, 4월 말에 주위 사람들에게 부탁해 알이 통통한 영광굴비 주문을 받아 물건 받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시 가격으로 15만원이면 굉장히 비쌌죠. 그런데 물건이 올 때가 됐는데 안 오는 거예요. 판매자는 연락도 안 되고요. 5.18이 일어난 거죠. 소문이 무성했죠. 그런데 광주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렇게 용감했는지 몰라요. 연락이 끊긴 판매자를 찾아 홀로 광주에 갔어요. 당시 광주 YWCA 간사가 제 친구인 고정희 시인이었어요. 그때 제가 본 광주는 정말 황폐하고 참담했어요. 총구멍이 선명했던 금남로 광주YWCA 건물의 참담한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1995년 세계YWCA 100주년 출판기념회에 참석 차 방문한 유럽도 YWCA 활동 중 잊지 못할 기억이다. 이 회장은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분리수거와 쓰레기종량제가 운영되고 있지만 당시엔 그런 개념이 희박하던 시기에 스위스 등 유럽 현장 견학을 통해 쓰레기종량제가 시행되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며 “그때의 충격이 한국YWCA가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에 앞장서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명혜 회장이 4월 20일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한국YWCA 창립95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한국YWCA연합회
이명혜 회장이 4월 20일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한국YWCA 창립95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한국YWCA연합회

이 회장은 앞으로 YWCA가 걸어가야 하는 길로 섬김과 청년성 회복을 꼽았다.

“기독여성으로서 시대와 사람을 섬기는 자원봉사정신과 청년성 회복을 YWCA의 비전으로 삼고 있어요. 여성과 청년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주체적으로 여량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리더십 개발에 더욱 힘쓰고 돌봄과 포용정신 상생의 가치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되도록 활동을 펼치겠습니다.”

 

•이명혜 회장

△경남 마산 출생 △1968년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1977~1986 마산YWCA 간사, 총무 △1989~1993년 한국YWCA연합회 위원 △1994~2016년 한국YWCA연합회 실행위원, 위원장△2009~2016년 한국YWCA연합회 후원회 이사 △2014~2015년 한국YWCA연합회 제1부회장△2016~현재 한국YWCA연합회 회장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부회장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이사 △국민총리실 제2기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여성인력개발센터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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