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해 대통령 만들었다고

부채 의식에 시달리지 말아야

 

범죄 혐의 받는 피의자는

박 전 대통령, 그와 공모한

공무원과 재벌 총수들이지

그를 선택한 유권자 아냐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최근 어떤 자리에서 만난 몇몇 분이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한 분은 “투표하기가 겁난다”고 했다. 2012년 대선에서 나름 고민 끝에 박근혜를 지지했는데, 그가 저지른 엄청난 일들을 보면서 또다시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게 겁이 난다고. 당시 문재인 후보는 국정 경험도 없어 보였고, 정치도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민주당에서 사람이 없으니 억지로 끌고 나온 것 같아 의지도 없어 보였다고. 그런데 박근혜는 국회의원도 여러 번 했고 자기가 속했던 당도 잘 이끈 것 같아 찍어 줬는데, 이런 일을 벌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허탈한 속내를 전했다.

또 다른 분은 “찍을 사람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그 분은 오랫동안 선거 때마다 한나라당, 새누리당이나 그 당 후보들에게 투표를 해 왔기 때문에, 다른 정당이나 정치인들에겐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고 어떤 사람들인지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 마당에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후보를 찍어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잘 모르는데 아무나 찍을 수도 없어서 그냥 투표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2012년 대선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고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잘되기를 더 바랐던 유권자들의 복잡한 속내를 조금은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2016년 가을부터 지난 3월 10일 대통령 해임에 이르기까지, 국회로 하여금 국정조사를 하게 하고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키게 만들고 검찰과 특별검사가 수사를 하게 만들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게 만든 것은 시민들의 힘이었다. 또 그 힘을 만드는데 주말마다 귀한 시간 쪼개어 광장에 나간 많은 시민들의 노력이 주요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역할은 한 것이, 2012년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고 마지막까지 박근혜 정부가 잘되기를 바랐으나, 그가 저지른 엄청난 일을 목격하고 지지를 철회했던 유권자들의 선택이었다. 사태가 발생한 이후 전체 선거권자 가운데 70∼80%가 국회 탄핵소추안 통과를 지지했고,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다음에도 흔들림 없이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을 지지했으며, 탄핵 인용 이후에는 “잘한 결정이었다”고 지지를 보냈다. 박근혜 정부를 지지했던 유권자 다수의 지지 철회 없이는 이런 여론이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지난 가을 이후 이어지고 있는 사태는 “없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시련이다. 하지만 어떤 유권자들은 박근혜를 “내가 선택해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부채의식 때문에 더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그와 공모한 친구들과 공무원들, 재벌총수들이지, 그를 선택했던 유권자들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2012년 우리가 ‘박근혜’라는 정치인에 대해 좀 더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고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고 법원이 제대로 판결을 했더라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라도, 잘못이 드러났을 때 그 정부가 범죄혐의를 감추는 데에만 급급하지 않고 그때그때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고 신속히 조치를 취했더라면 사태는 이렇게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여론의 변덕은 죄가 아니다. 여론의 변덕으로 오늘의 다수가 내일의 소수가 되고, 오늘의 소수가 내일의 다수가 되는 일이 가능해야 민주주의는 작동하는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인 우리는 때로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고 그 결정을 바꿀 수도 있다. 잘못된 결정을 두려워하기보다, 잘못을 발견했을 때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용기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드는데 훨씬 중요하다. 곧 닥친 2017년 대선에서의 선택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 선택에 문제가 있으면 우리가 또 바꾸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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