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쎈 여자도 나긋나긋해야 사랑받는다?
힘쎈 여자도 나긋나긋해야 사랑받는다?
  • 강푸름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7.03.24 18:02
  • 수정 2017-04-04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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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의 빛과 그림자]

‘도봉순’이 한국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JTBC 홈페이지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JTBC 홈페이지

도봉순은 힘이 ‘쎄’다. 모계혈통으로부터 물려받은 괴력은 초능력에 가깝다. ‘응애’하고 태어나자마자 휘두른 주먹은 의사를 뒤로 넘어뜨리고, 스윙 한 번에 깡패의 치아 네 개가 날아간다. (원 펀치 ‘포’ 강냉이!) 기분 좋아 친구와 얼싸 안고 폴짝폴짝 뛸라치면 땅이 들썩댄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이야기다.

도봉순(박보영)은 가히 히어로라 할만하다. 의로운 일에 힘을 쓰지 않으면 힘이 소멸한다는 설정도 ‘영웅’ 이미지에 힘을 보탠다. 마블 히어로가 전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라면, 도봉순은 생활밀착형 히어로다. 조폭에게 위협받는 유치원 버스기사 아저씨를 구해주고, 으슥한 골목에서 약한 아이를 상대로 돈을 뺏는 ‘불량 학생’들을 시원하게 혼내준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 절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버스를 멈추는 건 일도 아니다.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JTBC 홈페이지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JTBC 홈페이지

한국 드라마에 여성 히어로가 등장하는 건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도봉순’은 흥미요소가 다분하다. 여자 주인공이 민폐캐릭터 혹은 악역에서 벗어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은 여성 시청자들을 흥분케 할만하다. 여자라고 무시하고, 때리고, 욕하는 남자들을 향해 거침없는 복수를 행하는 도봉순은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고 귀여운 배우 박보영이 ‘괴력 소녀’를 열연한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아담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리라곤 상상 못할 괴력으로 성차별 만연한 우리사회에 날리는 펀치 ‘한 방’은 통쾌함을 자아낸다.

‘도봉순’은 여성 히어로를 내세우고, 젠더폭력에 저항하는 드라마다. 여자라고, 몸집이 작다고, 만만해 보인다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에 봉순은 당당하게 맞선다. 드라마는 도봉순을 통해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여자들이 겪는 일상 속 차별과 폭력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도봉순’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의 아쉬운 점과 희망적인 부분을 요모조모 따져봤다.

➀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연쇄납치범의 범행

 

‘싸이코패스’ 여성연쇄납치범은 여성을 자신의 은신처(7개의 감옥이 마련된 음침하고 어두운 공간)로 데려가 가두고, 여자의 손발을 침대에 묶어 꼼짝 못하게 한 뒤 몸을 감상하거나 쓰다듬는다. ⓒJTBC ‘힘쎈여자 도봉순’ 방송 영상
‘싸이코패스’ 여성연쇄납치범은 여성을 자신의 은신처(7개의 감옥이 마련된 음침하고 어두운 공간)로 데려가 가두고, 여자의 손발을 침대에 묶어 꼼짝 못하게 한 뒤 몸을 감상하거나 쓰다듬는다. ⓒJTBC ‘힘쎈여자 도봉순’ 방송 영상

극중에선 ‘싸이코패스’ 여성연쇄납치범이 등장하는데, 그의 잔인한 범행은 드라마 상에서 적나라하게 재현된다. ‘여성혐오자’인 그는 44 사이즈의 마른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고, 늦은 밤 홀로 귀가하는 여성을 납치해 감금한다. 여성을 납치할 때 공격하는 장면(배를 가격하거나 쇠파이프로 얼굴 폭행)도 화면에 노골적으로 담긴다. 그는 납치한 여성을 자신의 은신처(7개의 감옥이 마련된 음침하고 어두운 공간)로 데려가 가두고, 여자의 손발을 침대에 묶어 꼼짝 못하게 한 뒤 몸을 감상하거나 쓰다듬는다. 여성들은 납치범의 손길에 두려움을 느끼고 “살려 달라”며 울부짖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감금 이후 여성들의 극한 공포는 화면 안에 전시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해당 장면은 너무 노골적”이라며 “여자의 손발이 묶인 장면과 ‘살려 달라’고 비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잔인한 연출”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여성이 감금돼있다’ 정도로만 암시해도 됐을 텐데, 제작진의 연출이 지나쳤다”며 “폭력에 대한 적정 수위를 넘나든다”고 지적했다.

➁여성 향한 폭력, 도봉순 자극 장치로 활용

 

남자들은 ‘자신에게 대드는’ 봉순을 얕잡아보며 욕을 하거나 물리적 폭력을 가한다. 해당 장면은 깡패 김광복(김원해)이 봉순의 뺨을 때리는 모습. ⓒJTBC ‘힘쎈여자 도봉순’ 방송 영상
남자들은 ‘자신에게 대드는’ 봉순을 얕잡아보며 욕을 하거나 물리적 폭력을 가한다. 해당 장면은 깡패 김광복(김원해)이 봉순의 뺨을 때리는 모습. ⓒJTBC ‘힘쎈여자 도봉순’ 방송 영상

도봉순이 남자들을 혼내주기 전, 꼭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봉순을 향한 남자들의 손찌검이나 추근거림, 언어폭력 등이다. 남자들은 ‘자신에게 대드는’ 봉순을 얕잡아보며 욕을 하고, 뺨을 쓰다듬으며 성적 사인을 보내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가한다. 도봉순을 ‘만만한 여자’라 여기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그들은 곧 도봉순에게 응징당하며 웃음을 유발하지만, 현실에서 남자들의 위협은 여자에게 공포라는 점에서 찝찝한 ‘불편함’이 가시질 않는다.

‘도봉순’ 애청자라는 김희진(23·여)씨는 봉순의 힘을 표출하기 위한 장치로 폭력을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도봉순을 향한 남자들의 선행적 폭력은) 봉순이가 남자들을 혼내주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면서도 “그러나 그 방법이 너무 일차원적이며, 작고 힘없어 보이는 여성에겐 폭력을 휘둘러도 된다고 여기게끔 만든다”고 꼬집었다.

➂젠더 고정관념이 강요하는 도봉순의 ‘여성’성

 

국두는 봉순에게 “치마가 왜 이렇게 짧아. 옷을 왜 그렇게 입어. 화장은 또 이게 뭐야”라며 봉순의 옷차림과 화장을 지적한다. 그러곤 “너무 예쁘게 하고 다니지 마”라고 화내듯 말하는데, 봉순은 그 말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JTBC ‘힘쎈여자 도봉순’ 방송 영상
국두는 봉순에게 “치마가 왜 이렇게 짧아. 옷을 왜 그렇게 입어. 화장은 또 이게 뭐야”라며 봉순의 옷차림과 화장을 지적한다. 그러곤 “너무 예쁘게 하고 다니지 마”라고 화내듯 말하는데, 봉순은 그 말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JTBC ‘힘쎈여자 도봉순’ 방송 영상

도봉순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여자다. 하지만 봉순은 자신의 힘을 최대한 숨기려 하는데, 여기엔 봉순의 짝사랑남 인국두(지수)의 말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강력계 형사이자 무뚝뚝한 ‘상남자’로 대변되는 인국두는 강력한 젠더 고정관념을 가진 인물이다. “나는 하늘하늘한 코스모스 같은 여자가 좋아. 지켜주고 싶잖아”라는 국두의 말에 봉순은 ‘여린 여자’가 되고 싶어 한다.

“네가 아무리 튼튼해도 내 눈엔 그냥 연약한 여자”라는 말에 봉순은 더더욱 힘을 숨길 수밖에 없다. 자신의 힘을 ‘여자답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그녀는 국두 앞에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여성’성을 입고자 한다. 국두를 만나기 전에는 화장하고 치마를 입으며 한껏 단장한다. “너무 예쁘게 하고 다니지 마”라는 국두의 말 한마디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국두에게 보호받는 것을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여기는 봉순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그대로 보여준다. 능력 있는 여성이라도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는 한없이 여리고, 약하고, 보호받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황 평론가는 “도봉순은 사회에서 강요하는 젠더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난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이성애자 역할극으로서의 롤 플레이 안에 들어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문제는 이성애 관계 안에서 여성은 항상 작고, 사랑스럽고, 보호 받고, 애교를 떨어야 하는 존재로 위치한다는 것”이라며 이를 이성애 관계가 지닌 허구적인 속성이라고 짚었다.

➃그럼에도 ‘도봉순’이 희망적인 이유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JTBC 홈페이지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JTBC 홈페이지

도봉순은 변하고 있다. 자신의 힘이 특별한 능력이란 걸 인정하고,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알게 됐다. ‘여성혐오 범죄가 심각하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봉순은 생각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힘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여전하다. 약자를 향한 강자의 횡포. 동물의 왕국에선 약육강식이 순리일지 몰라도 적어도 인간들 세상에선 힘이 약자를 괴롭히는 일에 쓰여서는 안 된다.” “신이 나에게 이런 힘을 준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힘을 그 자식들을 쳐부수는 데 쓸 것이다!”

‘여혐’에 물들어있던 봉순은 각성하기 시작했다. ‘보호받던 대상’에서 벗어나 남을 위해 힘 쓸 줄 아는 주체적인 인물로 거듭나고 있다.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고, 전투력과 방어력을 키우는 데 몰두하는 장면에선 ‘힘을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을 내비친다. 봉순은 곧 괴력 넘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여성스럽지 않고, 유별난’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게 되는 모습을 기대한다.

‘도봉순’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편견이 판치는 우리사회에 귀엽고도 유쾌한 방식으로 일침을 가하고 있다. ‘러블리함’ 그 자체인 박보영이라는 배우가 ‘도봉순’을 연기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여성’관을 깨는 시도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자그마한 몸 안에 담긴 슈퍼 괴력으로 매회 통쾌함을 선사하는 도봉순.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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