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변호사회·마이크로소프트 ‘SHE 4 SHE’ 포럼

네트워킹 위해 모인 선후배 여성변호사 100여명

커뮤니케이션 스킬·관계관리·협상·전문성 개발

주제로 경험과 노하우 공유·패널 토의 이어져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주최로 ‘SHE 4 SHE’ 포럼이 열렸다. ⓒ여성신문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주최로 ‘SHE 4 SHE’ 포럼이 열렸다. ⓒ여성신문

“‘히포시(He for She·여성을 위한 남성)’만 있으란 법 있나요? 쉬포쉬(SHE 4 SHE·여성을 위한 여성)’도 있습니다. 여성 변호사들이 서로 돕고 도움을 주는 상생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23일 저녁 서울 종로구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11층은 100여명의 여성 변호사들로 북적였다. ‘SHE 4 SHE: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skillset 쌓기의 비결’ 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행사를 공동 주최한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은경 회장은 “법조인은 식당에서 밥 먹을 때도 서열에 따라 식판을 들 정도로 수직적인 사회”라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편견 대신 여성에게 힘을 주는 여성이 함께 모여 네트워킹을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행사는 박선정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법무정책실 대표변호사의 제안으로 처음 마련됐다. 박 대표 변호사는 “여성 변호사가 많아지는 추세지만 그만큼 유리천장이 단단하다.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은 여성 변호사의 역량을 키우고 네트워킹을 강화하기 위해 여성변호사회에 제안했다”며 “유엔의 히포시 캠페인처럼 서로에게 힘이 됐으면 한다. 선후배 여성 변호사들이 더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는 ‘여성을 위한 여성’이라는 포럼의 이름처럼 ‘자매애’가 넘치는 자리였다. 선배 여성 변호사들은 커뮤니케이션 스킬·관계관리·협상·전문성 개발 등 변호사 생활에 필요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했다. 후배 여성 변호사들은 선배의 진심 어린 조언에 포럼 중간 중간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계속되는 질문세례로 기존 종료 시간보다 30분이 연장될 정도였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주최로  ‘SHE 4 SHE’ 포럼이 열렸다. 왼쪽부터 정교화 김앤장 변호사, 김지현 레이텀 앤 왓킨스 변호사, 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박선정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변호사, 이현경 SK건설 상무. ⓒ여성신문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주최로 ‘SHE 4 SHE’ 포럼이 열렸다. 왼쪽부터 정교화 김앤장 변호사, 김지현 레이텀 앤 왓킨스 변호사, 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박선정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변호사, 이현경 SK건설 상무. ⓒ여성신문

판사 출신의 정교화 김앤장 변호사는 자신을 “두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 변호사”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관계 맺기’ 노하우를 소개했다. 그는 “여성 변호사들은 직장에선 선배이자 동료, 후배이고 가정에선 엄마와 아내 등으로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즉, ‘Multi relational skill’이 남성보다 뛰어나다”면서 “그런데도 여성 변호사들은 고민하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일에서만큼은 전문성을 갖추고 ‘내가 제일 잘한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성 변호사로서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점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정 변호사는 “주니어 변호사 시절 술과 골프는 안 했지만 한 클라이언트와 꾸준히 소통하며 나름대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남자선배와 한번 술을 마신 그 클라이언트가 중요 결정을 앞두고 내가 아닌 남자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다”며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존 방식을 쫓기 보단 일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해 클라이언트와 정보를 공유하면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경 SK건설 상무는 후배들에게 전문성을 갖춘 협상의 비결을 제시했다. 이 상무는 MBC에서 아나운서와 PD로 13년 근무했다. 셋째아들을 낳은 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4년을 전업주부로 지냈다. 마흔 살이 넘어 공부를 시작했고 현재는 13~14시간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 상무는 “건설회사 임직원은 대부분 남성이고 국내 건설회사의 여성 임원은 단 5명밖에 안 된다”며 “SK건설은 전체 구성원의 11%가 여성이다. 이런 남성 위주 사회에서 저는 ‘여자이기 때문에 못한다’가 아니라 ‘여자라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협상은 ‘여성’이 더 잘한다. 여성은 상대방의 생각을 빨리 캐치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드럽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며 “협상에서 중요한 건 전략이다. 협상할 때 전략이 없으면 상대방 페이스에 말린다. 선승구전(先勝求戰), 즉 미리 이겨놓고 나서 싸워야 한다. 협상 참여자들의 역할 분담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니어 여성 변호사는 많지만

파트너·대표 변호사까지 못 올라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주최로  ‘SHE 4 SHE’ 포럼이 열렸다. ⓒ여성신문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주최로 ‘SHE 4 SHE’ 포럼이 열렸다. ⓒ여성신문

이날 패널로 참여한 선배 변호사들은 여성 변호사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유연근무제 강화, 재택근무 확산 등 여성 변호사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주니어 여성 변호사들이 파트너, 대표 변호사로 올라갈 수 있도록 법무법인과 입법기관 지원의 필요성도 제안했다.

박선정 대표변호사는 특히 변호사 사회의 견고한 ‘유리천장’에 대해 지적했다. 여성 변호사들이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으면서 진급에 서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현재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거래를 할 때 여성 변호사를 ‘파트너 레벨’로 약속하면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주려고 하고 있다”며 “IT 업계에도 여성 파트너 변호사가 많지 않아 이 같은 제도를 통해 여성 변호사가 고위직으로 가는 통로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성 변호사들은 결혼, 출산 등으로 남성 변호사에 비해 취업에서 불리한 경험을 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발표한 ‘2016년 여성 변호사 채용 및 근무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 시 ‘여성’인 점이 불리하다고 응답한 변호사가 706명 중 86.5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변호사가 취업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0.83%)은 그 이유로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의 이유’를 꼽았다. ‘고용주의 선입견(37.71%)’ 또한 일·가정양립 문제와 남성선호문화가 성차별을 경험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이는 승진·진급에 있어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히기도 했다.

정교화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육아휴직제도 등 여성 변호사를 지원하는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며 “현재로썬 그런 것들이 잘 안 되고 있다. 주변에서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후배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금선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법무정책실 변호사는 “제도가 있어도 분위기, 문화가 갖춰지지 않으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마이크로소프트도 파티션으로 돼 있는 포스코빌딩에 있을 땐 재택근무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스마트오피스인 지금은 직원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한다. 로펌이나 법률상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