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차별과 불평등 드러냈다는 호평

금태섭 의원, 국회의원 300명에게 선물하기도

의원들 “앞으로 태어날 수많은 ‘김지영’들은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목소리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책과 편지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책과 편지

대표적인 남성중심 조직인 국회에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뿌리 깊은 성차별적 현실을 그대로 녹여낸 소설 내용이 최근 불고 있는 페미니즘, 저출산 이슈와 맞물리면서 국회의원 사이에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조남주 작가의 작품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에 태어나 학생, 회사원을 거쳐 서른넷 주부로 살아가는 김지영씨의 삶을 통해 한국 여성들의 인생의 곳곳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묘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가시적인 성차별이 줄어든 이 시대에 보이지 않는 뿌리 깊은 성차별이 어떻게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고 억압하는지 보여준다.

국회에서 이 책을 처음 추천한 이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다. 그는 지난 2월 초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올해 세 권의 소설을 읽는다면 『82년생 김지영』, 이 책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도 좀 더 인간다운 사회가 되리라 확신한다. 강추!”라고 소개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여성신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여성신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2년생 김지영』 읽기에 불을 지핀 주인공이다. 금 의원은 3월 초 책 300권을 구입해 국회의원 전원에게 선물했다. 책과 함께 원고지 분량 7매가 넘는 장문의 편지도 보냈다.

금 의원은 편지에서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다. 육아휴직에서 복귀한지 일주일 만에 허망하게 죽은 복지부의 사무관도 ‘82년생 김지영’이다”라며 “‘82년생 김지영’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선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 원인에서 눈을 돌리고 현상에만 매달리는데 답이 나올 리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10년 후 ‘92년생 김지영’들이 절망에 빠지는 세상이 오지 않도록 모두 함께 노력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책 선물을 받은 의원들은 토론회나 행사에서 인사말 등을 통해 짤막한 감상을 소개하며 성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전했다.

“책을 읽는 내내 한숨이 났다”는 ‘65년생’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스무 해 가까이 차이 나지만 지난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 꽤 오래됐지만, 아이를 기르는 동안 당시 종종 나만 혼자 시간이 멈춘 듯한 알 수 없는 허탈과 상실감에 휘말리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지난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미국 월가의 상징인 ‘황소상’ 맞은편에 세워져 화제가 된 ‘당당한 소녀상(fearless girl)’을 직접 본 경험도 전했다. 그는 “82년생 김지영이 여봐란 듯 선 ‘당당한 소녀상’을 본다면 어땠을까? 82년생 김지영의 어머니가 자매의 방을 만들어주며 가졌던 바람처럼, 딸인 ‘15년생 정지원’의 세상을 상상해보지 않았을까?”라며 “순간, 65년생 박경미가 82년생 김지영이 되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여전히 유효한 명제”라며 소녀상에 있던 ‘여성이 변화를 만들어낸다(She makes a difference)’, ‘여성리더십의 힘을 인식하라(Know the power of women leadership)’는 문구도 소개했다.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미국 뉴욕에서 직접 찍은 당당한 소녀상. 3.8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해 미국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황소상 맞은편에 한시적으로 세워졌다.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미국 뉴욕에서 직접 찍은 '당당한 소녀상'. 3.8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해 미국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황소상' 맞은편에 한시적으로 세워졌다. ⓒ박경미 의원실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인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평범하고’ ‘익숙한’ 차별과 불평등이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제약하고 억압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가는 ‘82년생 김지영’을 위해서는 민주주의는 광장의 구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의원은 이어 “우리는 모두가 존중받으면서 각자 삶의 주체로, 사회구성원으로서, 일상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길 기대한다”면서 “지금의 김지영, 2002년생의 김지영,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수많은 김지영들은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도록 말해주고 싸워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 대목으로 ‘강된장을 시킨 김지영씨에게 ‘미스김도 된장녀였어? 하하하’ 웃으라고 한 말인지, 우습게 보고 한 말인지, 된장녀의 말뜻을 알기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구절을 꼽았다.

이 의원은 “김지영은 평범한 직장인, 아내, 아이를 가진 엄마일 뿐이지만, 더하지도 보태지도 않은 김지영의 이야기를 듣고 보는 사회의 시선은 비범하게 불편하다”면서 “내가 살았던 30대와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리고 곧 30대를 살게 될 여성의 삶은 무엇이 크게 달라져 있을까. 뒤이을 어린 많은 여성들은 ‘82년생 김지영’을 벗어날 수 있을까. 책을 덮는 순간까지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녀들의 익숙한, 예고된 좌절이 92년생 그 다음 김지영의 몫이 또다시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3·8 세계여성의 날에 “여성이 학교와 직장, 가정에서 어떤 성차별을 겪고 있는 처참하게 기록한 ‘82년생 김지영’이 유행”이라며 “대통령이 되면 ‘2017년생 김지영’으로 바꿔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고 당당하도록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대선 공약에 녹여냈다.

한편 이 책은 출간 5개월 만에 2만3000권의 판매고를 올린 ‘핫’한 소설로 떠올랐다. 현재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베스트셀러 7위에 올라있다. 출판사인 민음사 측은 “원래 인기 있는 소설이긴 하지만 금 의원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판매량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또 “여성들 못지않게 아니라 남성들의 관심이 뜨거운 것은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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