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퇴행한 10년의 세월

무능‧무지‧무치한 박 전 대통령

한 사람 퇴진이 끝은 아니다

아부하며 잇속 차린 사람 가려내야

 

2일 오전 검찰 조사를 마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일 오전 검찰 조사를 마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어찌하여 세상은 올바름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늘 사악함에 눌리고 내몰리는가. 그러나 그렇게 만만하게 여기고 충성스러운 제 신민쯤으로 대한 대통령에 대해 시민들은 물러나라 외쳤고 헌법재판소는 준엄하게 그 사악함을 심판했다. 비로소 바름을 세우고 사악함을 몰아냈으니 위대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니 명예로운 일이다.

물론 악은 언제나 치밀하고 끈질기며 심지어 부지런하다는 점을 잊는 순간 언제든 그 올바름은 다시 무너지거나 훼손될 것을 기억해야 한다. 미래로 나아가도 될까 말까 한 시기에 지난 10년은 과거로 퇴행하고 사악한 독점적 욕망만을 채우며 시민들의 삶을 망가뜨렸다. 다시는 사악함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무능‧무지‧무치한 대통령 한 사람 물러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거기에 아부하며 제 잇속 차렸던 부역자들을 철저하게 가려내 처단해야 한다. 더 이상 못 배운 사람들의 맹목과 배운 것들의 부역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 과거로 회귀한 것은 시대착오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험난한 미래를 개척하기는커녕 20세기 낡은 방식에 의존하고 그것을 강요했으며 심지어 교과서까지 국정화시키면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해 자신의 아버지를 신화화하는 일에만 몰두한 박근혜라는 정치인은 가장 전형적인 시대착오의 인물이고 그런 인물을 떠받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여성’ 대통령 한 사람에게 너무 모질게 대하지 말라는 헌법재판소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언사는 경악과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렇게도 여성을 ‘모시듯 떠받드는’ 자들이 과연 양성평등이라는 기본적 이해와 가치 추구에 얼마나 충실한지 물어보고 싶다.

아직도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살아가기’는 힘들고 치사하다. 게다가 말로는 그럴 듯하게 분칠하면서도 정작 권력과 잇속 앞에서는 무람하게 어깨를 밀치고 독차지하려는 저급한 수컷들의 행태가 여전하니 더더욱 그러하다. 여성가족부가 하는 일도 그리 눈에 쏙 들어오는 일은 없다. 장관은 강제로 끌려간 ‘전쟁성노예(엉뚱하게 ‘위안부’라 부르는)’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없이 어설프고 한심하게 몇 푼에 합의한 외교부의 뒤치다꺼리만 하러 다닌다. 

교육부라고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노동의 권리와 양성평등에 대한 올바른 교육은 여전히 뒷전이다. 생물학적 성(sex)에 관한 ‘시늉뿐인’ 비정례적 학습은 드문드문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제대로 된 사회적 성(gender)에 대해서는 거의 교육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마초가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남자 교장들은 여전히 여교사에게 노골적으로 혹은 교묘하게 대하거나 커피 차 심부름을 태연하게 시킨다.

학교에 강연하러 가서 교장이 직접 커피를 타주는 경우를 ‘어쩌다’ 만나면 기분이 참 좋다. 그런 사람이라면 양성평등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과 실천에 충실한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인간의 권리, 양성평등의 당위,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사고가 미흡하다면 과연 그에게 배우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정미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탄핵심판일에 머리에 헤어롤을 꽂은 채 출근한 게 화제다. 생명을 살려내야 할 비상상황에서도 올린머리에 시간 허비한 대통령과 완벽하게 대조적이어서 더 그랬다. 그러나 그건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더 많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감탄만 할 일이 아니다. 그 시간만큼 덜어주고 분담할 수 있는 배려가 21세기 양성평등의 시대가 직시해야 할 상징이다. 언제까지 시대착오에 갇혀 살 것인가. ‘척사현정(斥邪顯正)’이라는 말이 있다. 거짓과 삿됨을 물리치고 올바름을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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