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맡길 기부처로 자리잡아

한비야 세계시민학교 공익신탁,

허구연 야구사랑 공익신탁 등

19개 공익신탁에 12만6000명

참여해 736억원 신탁재산 모아

 

가수 이승철씨가 아프리카 차드 도고레마을에 건립된 ‘리앤차드 스쿨’ 교실에서 음악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가수 이승철씨가 아프리카 차드 도고레마을에 건립된 ‘리앤차드 스쿨’ 교실에서 음악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법무부 직원과 소속기관 공무원들은 매달 월급에서 1000원 미만 끝전을 기부한다. “급여 끝전을 모아봤자 얼마나 될까”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만명 넘는 직원이 매달 이렇게 모은 돈이 해마다 1억원이 넘는다. 법무부 상사법무과 A씨는 “급여 끝전이 법무부 천사(千捨) 공익신탁 기금으로 출연돼 뿌듯하다”며 “힘겨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힘을 보탰다니 기분 좋더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천사공익신탁 기금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범죄피해자, 난민, 수용자가족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천사공익신탁에서 출연된 기금 3000만원을 종잣돈으로 범죄 피해자 지원 스마일 공익신탁이 공식 출범했다. 스마일 공익신탁의 지원 대상자는 기존 제도 내에서 지원이 어려웠거나 앞으로 지속적 지원이 필요한 범죄 피해자다.

적은 비용으로 ‘나만의 재단’을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는 공익신탁이 믿고 맡길만한 기부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익사업에 자주 이용되는 공익법인이 설립 절차가 다소 복잡하고, 새로 조직을 갖춰 운영해야 하는 반면 공익신탁은 인가 절차가 간편하고, 별도의 조직을 만들 필요 없이 신탁 계약만으로 이용 가능하다. 공익신탁 인가는 신청일로부터 3개월 내에 결정된다.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새로 제정된 공익신탁법이 시행된 것은 재작년 3월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인데도 기부는 세계 64위에 머물러 있다. 공익신탁법은 기존 공익신탁 제도를 전면 재정비한 것으로, 공익신탁을 허가제에서 인가제로 완화해 누구나 쉽게 공익신탁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되 공시제도를 도입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공익신탁은 외부 감사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또 법무부가 관리, 감독을 전담해 공익신탁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강화했다.

 

세계시민학교 공익신탁을 만든 국제구호전문가 한비야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세계시민학교 공익신탁을 만든 국제구호전문가 한비야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법무부 관계자는 “신탁재산 100억원 이상인 공익신탁은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하고 사업계획서, 사업보고서 등 주요서류가 공시사이트(trust.go.kr)에 공시되기 때문에 기부자와 일반인들이 쉽게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 기부금품은 모집자의 파산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집 목적이 다양할 경우 기부한 사람의 의지대로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와 달리 공익신탁은 기부자가 신탁계약으로 구체적인 사용 목적을 정하면 기부한 금품이 목적대로만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재작년 7월 ‘상처받은 아이 보듬는 법무가족 파랑새 공익신탁’을 시작으로 2월말 현재 개설된 공익신탁은 모두 19개로 12만6000명이 참여해 736억원을 모았다. 신탁 재산이 가장 많은 공익신탁은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이다. 신탁 재산이 435억2246만5000원에 달한다. 국제구호전문가 한비야씨는 청년들이 세계와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세계시민학교 공익신탁’을 설립했고, ‘난치성 질환 어린이 치료를 위한 공익신탁’은 분당서울대병원과 월드비전이 함께 뜻을 모았다. 또 독립유공자 후손의 생계비와 교육비 등을 지원하기 위한 ‘광복 70주년 나라사랑 공익신탁’도 설립돼 있다. 복지와 장학부터 스포츠, 학술분야 발전을 꾀하는 공익신탁까지 다양하다.

가수 이승철씨가 설립한 ‘이승철의 희망 리앤차드 공익신탁’도 눈에 띈다. 이씨는 2010년 세계 최빈국인 아프리카 ‘차드’에 10년간 10개 학교를 짓기로 하고 현재까지 4개 학교를 세웠고 시각장애, 구순구개열 등 어린이들에게 의료 지원도 해오고 있다. 이씨는 “아프리카 지역에 교육시설 지원 등 관련 프로젝트를 통해 아프리카 지역의 교육환경 개선에 일조하고 싶다. 아프리카 최빈국인 차드에 더 많은 학교를 세울 것”이라며 “팬들이 쉽게 기부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공익신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신탁 재산은 5500만원. 이씨는 배우 홍은희씨와 함께 법무부 공익신탁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KEB하나은행과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위원장은 야구 저변 확대와 유소년 야구 활동 등을 돕는 ‘허구연의 야구사랑 공익신탁’을 설립했다. 국내 저소득층 유소년 야구 활동을 돕는 것은 물론 저개발국가의 야구시설 건립 등 글로벌 사회공헌에 활용될 계획이다. 허구연 위원장은 “공익신탁을 통해 다양한 공익사업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시작했다”며 “‘허구연의 야구사랑 공익신탁’을 통해 야구 저변을 넓히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5월 서울 KEB하나은행 명동본점에서 한국야구위원회 야구발전위원장인 허구연씨와 ‘허구연의 야구사랑 공익신탁’ 협약을 체결했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과 허 위원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나은행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5월 서울 KEB하나은행 명동본점에서 한국야구위원회 야구발전위원장인 허구연씨와 ‘허구연의 야구사랑 공익신탁’ 협약을 체결했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과 허 위원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나은행

공익신탁 Q & A

-아동범죄 보도를 보고 범죄피해 아동을 위해 기부하려고 마음먹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목적사업, 명칭과 신탁관리인을 맡을 사람을 정하고, 공익신탁을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나 단체(수탁자)와 신탁계약을 체결한 후 법무부의 인가를 받으면 된다. 수탁자는 공익단체나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개인도 될 수 있다. 개인과 금융기관이 함께 수탁자가 되는 등 공동수탁도 가능하다.”

-소액이라도 공익신탁을 이용할 수 있나.

“가능하다. 다만 수탁자 입장에선 공익신탁 인가, 집행, 보고 등 행정 업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소액인 경우 뜻을 같이 하는 다른 위탁자와 함께 하나의 공익신탁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어떤 목적사업을 해야 공익신탁으로 인정받나.

“장학, 아동·청소년이나 탈북자 지원, 범죄피해자 지원, 근로자 생활 향상, 지역사회 발전, 소비자 권익 증진, 환경보호 등 공익성이 인정될 수 있는 사업은 모두 해당된다.”

-반드시 단독으로만 위탁해야 하나.

“당사자들 간에 합의가 되면 공동으로도 위탁자가 될 수 있다. 부부나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공익신탁을 설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신탁재산은 금전만 가능한가.

“금전뿐 아니라 부동산과 같은 현물도 가능하다. 현물은 금전에 비해 운용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수탁자가 재산을 운용할 능력을 갖췄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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