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취임하는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시위 전력으로 행시·사시 면접 낙방

네 번의 좌절이 오히려 약

변협회장도 재도전 끝에 당선

여성·청년 변호사 지지 큰 힘

‘이중고’ 겪는 여성변호사 위해

대체인력 지원하는 ‘시프트제’ 공약

버킷리스트 100개 임기 내 실천

엄정중립·공정무사 원칙 지키겠다

 

2월 27일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김현(61)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신임 회장은 스스로를 “왠만한 좌절에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소개한다. 누구한테라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좌절을 겪어서다. 그는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모두 면접에서 떨어진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흔히 사법고시 2차 시험까지 붙으면 합격은 ‘따논 당상’이라고 한다. 특히 사시 3차 시험인 면접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1980년 행시에 합격하고도 면접에서 떨어졌고 이듬해 재면접에서도 전례없이 낙방했다. 82년 사법시험 14회에 합격했지만 또 다시 면접해서 고배를 마셨다. 모든 걸 접고 유학을 준비할 때도 국비유학생시험에 합격하고도 면접에서 낙방했다. 대학교 2학년 시절인 1977년 학생운동에 참가했다 받은 유기정학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네 번이나 줄줄이 실패를 맛봤지만. 과거 전력이 족쇄처럼 따라 붙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 대신 또 다시 도전을 택했다. 김 회장은 “잃을 것이 없기에 한번만 더 해보자는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혹시나’하고 사시 재면접을 치르고 은사 송상현 교수의 신원보증이 보태져서야 겨우 사시 25회 합격통지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이제 왠만한 좌절에는 흔들리지 않는 내성이 생겼어요. 당시 고생이 오히려 약이 됐죠.”

이번 대한변호사회협회장 선거도 그에겐 ‘재수’였다. 4년 전 선거에서 아쉽고 패배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 훌훌 털어버렸다고 했다. “굉장히 긍정적인 성격이에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실패하면 툴툴 털고 잊어버리거나 다시 도전하는 편이죠.”

특히 그의 선거 승리엔 여성 변호사와 로펌 출신 청년 변호사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김 회장은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대한변협 부협회장으로 임명하고, 변협 상임이사 중 여성을 30% 임용하는 등 여성변호사의 회무 참여 기회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변호사를 위해 변호사 대체인력 풀을 만들어 지원하는 ‘시프트제’도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정운호 게이트’에서 법조비리가 드러났고 사상 초유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는 여러 법조인들이 연루돼 법조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바닥을 쳤다. 사법시험 존치여부를 둘러싼 변호사업계 내의 갈등, 여성변호사의 열악한 처우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하다. 여기에 올해는 대법원, 헌법재판소, 검찰의 수장이 모두 교체되는 사법 교체기이자 대통령 선거와 개헌까지 앞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1만8000명 변호사를 대표하는 변협회장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는 그는 빼곡히 글씨가 적힌 A4 종이 석장을 꺼내 보였다. “제 공약과 상대 후보의 공약 중 좋은 부분, 전국을 순회하며 회원들로부터 얻은 아이디어가 100가지 정도 됩니다. 그 100가지를 모두 정리해 버킷리스트를 만들었어요. 이걸 집무실에 걸어두고 임기 2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실행하려고 합니다.” 그의 세심함에서 수천마디 말보다 행동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진리가 새삼 다가왔다.

법무법인 세창의 집무실에서 그와 마주했다. 그의 집무실은 사무공간이라는 느낌보단 고 김규동 시인의 작품을 전시한 작은 박물관 같았다. 그는 「나비와 광장」로 잘 알려진 김 시인의 차남이다. 집무실 곳곳에 걸려 있는 김 시인의 생전 사진과 서각화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애틋함이 느껴졌다. 

-협회장 선거에서 로스쿨 출신 변호사와 여성 변호사들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다.

“변협 사무총장과 서울변호사회 회장을 거쳐 변협 변호사연수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변협 회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오랜 기간 수많은 회원들과 소통해 왔다. 차별 받는 로스쿨 변호사와 약자인 여성변호사들의 어려움을 깊이 공감하고, 사시 폐지와 여성변호사 지원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앞으로 여성변호사들을 위해 준비한 많은 공약을 하나도 빠짐없이 실천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변협 회장은 전체 회원들을 아우르는 자리다. 앞으로 대한변협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사시와 로스쿨 출신 사이의 갈등을 봉합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법조대화합 특별위원회를 신설할 생각이다. 중견·원로 변호사도 참여시켜 재야 법조계가 한마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여성변호사의 근로실태 개선과 집행부 임원진 구성 등 실질적으로 여성변호사들이 업무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공약이 많은데.

“인권옹호를 사명으로 하는 변협이 앞장서서 여성변호사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해 나가야 한다. 대한변협 내 한국여성변호사회의 독립 집무 공간을 마련하고 전담 직원을 배치해 여성변호사들을 적극 지원하고,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부협회장으로 임명하고 변협 상임이사의 30%를 여성으로 임용해 여성변호사들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겠다. 변협 여성변호사특위와 일·가정양립위원회 활동이 활성화되도록 적극 지원하고 예산도 증액하겠다. 어린이집을 지방변호사회에 확대 운영하고 변협 내 별도 보육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여성변호사회 활동을 지원하고 활동 시간을 공익시간으로 인정할 예정이다.

 

-변협 자료를 보면 개업변호사 중 여성변호사는 23.4%의 비율을 차지한다. 10년간 8배나 증가했지만 여성변호사는 법률사무소에 취업할 때부터 성차별을 겪고 결혼해서는 일과 가정 양립에 어려움을 겪는 등 처우 문제가 심각하다.

“여성변호사는 여성이자 청년으로 이중고를 겪는다. 취업에선 임신과 육아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영세한 법률사무소에서는 변호사 한 명이 빠지면 업무 공백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여성변호사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법률사무소 전체에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 문제는 개인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문제다. 사회정책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저도 15명의 직원을 둔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변호사지만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사회적비용으로 감수해야 한다. 여성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일종의 세금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는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적어 휴직을 하는 게 더 어려울 듯 한데.

“그래서 생각한 게 ‘시프트제’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간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는 변호사풀(pool)을 만들어 법률사무소에 지원하면 휴직을 하는 사람도 마음 편하고, 의뢰인도 만족할 수 있다. 여성변호사 뿐 아니라 남성변호사에게 필요한 제도다. 파트타임으로 일하거나 고용하고 싶어하는 수요도 늘고 있다. 경력단절을 예방할 수 있고 변호사 입장에서는 경험을 쌓으면서 수익도 얻을 수 있고, 고용주 입장에서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어려운 변호사업계에 활로를 틀 수 있고 숨을 돌릴 수 있는 좋은 제도일 수 있다. 변협은 변호사풀을 구축하고 변호사와 사무실을 연계해주는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변호사업계가 풀타임(전일제)잡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틀에서 벗어나 유연한 근무환경 도입하는 참신한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말처럼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할 생각이다.”

-여성변호사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이유는.

“지난 6년간 변협 여성변호사특위 활동을 계속해온 유일한 남성위원이다. 이런 활동의 직접적인 계기는 1999년 막내딸이 출생하면서부터다. 딸을 키우는 아빠가 되고보니 자연스럽게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딸이 차별 받지 않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활약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게 됐다. 현재 딸이 고3인데 3년간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석하면서 목소리도 내고 여권 신장에도 앞장서게 됐다. 특히 변협 여성특위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누구보다 여성 회원들의 어려움을 잘 알게 됐다. 일·가정 양립으로 여성변호사 나아가 모든 여성이 고통받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국가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변협이 선두에 서겠다.”

-최우선 과제로 변호사 시장의 불황 개선을 꼽았고, 일자리 창출도 공약했는데.

“변호사 시장의 불황이 심해지고, 변호사들의 일자리가 매우 부족하다. 위기의 원인은 공급 과잉이다. 변호사가 102년에 걸쳐 1만명이 됐는데, 최근 7년 만에 2만명을 돌파했다. 2015년 서울 지역 변호사들의 월 평균 수임사건이 1.69건에 그쳤는데도 신규 변호사 1800여명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변호사들의 새로운 일자리를 반드시 창출해야 한다. 변호사 필수적 변론주의를 도입하고 아파트 감사제도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법무담당관제도를 실현하고, 준법지원인 제도를 모든 상장기업에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변호사를 늘린다고 해서 국민의 변호사 접근이 쉬워지지 않는다. 변호사 사무실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 이하로 수임료가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국민들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변호사 신규배출을 연 1000명 정도로 감축하는 것을 추진할 생각이다. 인접 로스쿨 간 학사 일정과 강의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로스쿨의 입학 정원을 2000명에서 1500명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의 면적, 인구와 경제규모를 생각하면 25개 로스쿨은 너무 많다. 일단 20개 정도로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통폐합 기준은 변호사시험 합격률, 졸업생의 취업률, 입학관리와 학사관리의 우수성 등이 될 수 있을 거다. 이런 모든 방안은 대화와 합의로 풀어나갈 생각이다.”

-1호 법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선택했다. 이유는.

“최근 옥시 가습기 사건을 통해서 실손해액만 배상하면 되는 현재의 손해배상제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기업들의 반사회적인 범죄에 대해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제2, 제3의 옥시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면 기업 스스로가 더욱 고도의 주의를 기울여 품질유지를 하게 될 것이고, 이는 산업 전체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국적기업의 불법적인 횡포도 방지할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면 살인가습기를 판매한 옥시, 배출가스를 조작한 폭스바겐은 국내에서 제품을 판매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준다는 점에서도 큰 장점이 있다. 저는 소비자 주권의 확립과 건전한 시장질서를 위해서 이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제가 이끄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모임(징손모)’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협력해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을 2015년 7월에 발의했다. 임기 내에 꼭 관철할 생각이다.”

 

-사시 폐지 입장을 밝혔다. 로스쿨 제도가 신뢰받는 법조인 양성 시스템으로 자리 잡기 위해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사시와 사법연수원이 장점도 있지만 그 시대적 소명을 다했기 때문에 로스쿨 체제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로스쿨 제도가 신뢰받는 법조인 양성 시스템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엄정한 입학관리와 학사관리가 이뤄져야 하고, 실무가 출신 교수의 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실무계와 로스쿨간의 교류와 협력도 중요하다. 현재 로스쿨의 관리감독권을 교육부가 가지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처럼 로스쿨의 관리감독권이 변협으로 이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스쿨에 입학비리·학사관리 부실 등 문제가 많은데, 변협 법전원평가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해 로스쿨의 개선책을 찾을 것이다. 불필요한 결원보충제를 폐지해 각 로스쿨이 교육 경쟁력을 높여 자퇴자가 줄어들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대선을 앞둔 올해는 헌법재판관과 대법원장이 바뀌는 등 사법부의 대대적인 개편이 예정돼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정의감과 균형감각을 갖추고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분, 소수자를 배려할 수 있는 분들로 채워지도록 다양화를 추진해야 한다. 대법관도 여성과 소수자, 학자, 공무원, 외교관 등이 다양하게 분포돼야 하며 순수 재야 변호사 출신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순수 변호사 출신이 많이 배출된 것은 사시 합격 인원이 300명으로 증가한 사시 13기부터다. 13기 이후에 배출된 우수한 재야 변호사들이 대법관을 맡아 국민의 바램을 판결에 반영하기 바란다. 법관인사위원회에 참여하는 재야 변호사의 수를 늘려 국민과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올해 2월과 6월에는 이상훈·박병대 대법관, 9월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퇴임하는데 후임 대법관 인선 준비가 시작되면 강력하게 주장할 계획이다.

현재 대법원장이 임명하거나 제청·추천·위촉할 수 있는 자리가 매우 많다. 대법원장에게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돼 있다. 이를 줄여 법원의 관료화를 막고 법원의 민주화가 이뤄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합리적인 재판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대법원장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변호사단체 등 일선에 나눠줄 필요가 있다. 증인신문과 송달 같은 많은 절차를 변호사에 위임하고 법원은 좋은 판결을 내리는데 집중하면 좋을 것입니다.”

-국회 개헌특위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현행 87년 헌법은 권위주의시대 청산을 최우선의 과제로 설정하여 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제를 채택했다. 대통령과 행정부에 예산편성권, 인사권, 법안제출권 등 막강한 권한의 행사가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고, 특히 검찰 등 권력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결여돼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보듯이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데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왔으며 국민들도 이 같은 시대의 변화 속에 새롭고 다양한 욕구를 표출하고 있다. 시대변화에 맞는 인권과 국민 권리의 확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상고법원, 헌법재판소의 역할, 검찰개혁 등 바람직한 사법제도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다. 변협은 여·야, 보수·진보 프레임에 갇히지 않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국민의 이익을 위해 개헌 논의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겠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신임 회장

△1956년생 △경복고 졸업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고시 25회 합격(연수원 17기) △미국 코넬대 법학석사 △1990년 미국 워싱턴대 해상법박사 △1991년 미국 보글앤게이츠 로펌 근무, 뉴욕주 변호사 △법무법인 세창 구성원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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