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성을 상품화한들 

특정인에게 몸을 사고팔든

성폭력 정당화되는 직업 없어

누구든 강간할 권리는 없다

 

서울역에서 열린 ‘성폭력 추방 주간’ 캠페인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역에서 열린 ‘성폭력 추방 주간’ 캠페인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하루가 멀다 하고 성폭력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다른 성폭력 범죄도 그렇지만 일상을 함께 영위하는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사건이 생기게 되는 배경에도,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 범죄로 인정받는 데에도, 권력 문제가 작동한다.

가해자는 자신이 하는 행위가 범죄라고 잘 생각하지 못하고 피해자는 자신이 당하는 행위 앞에 쉽게 입장을 정하지 못한다. 가해자는 “이쯤이야”라고 생각하며 손을 뻗고, 피해자는 “어떡하지”라는 고민에 입을 떼지 못한다. 같은 순간 가해자는 자기가 피해자에게 줄 수 있는 유리함을 생각하고, 피해자는 자기가 가해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불리함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폭력이 벌어진 순간이 지나고, 피해자는 많은 갈등을 거쳐 법에 호소하기에 이른다. 안타깝게도 이를 범죄로 소명받는 것은 순탄치 않다.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객관적인 증거 자료가 충분하기 어려운 까닭도 있지만 성폭력이 발생했던 때에 가해자를 안일하게 만들고 피해자를 소극적으로 만든 권력의 메커니즘이 상식처럼 통용돼온 편견도 큰 걸림돌이다.

그렇다보니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은 사건 후유증도 겪지만 이를 소명하는 지난한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를 받는다. 한국사회는 유난히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왜’를 묻는다.

왜 그날 술을 먹었느냐, 왜 가해자와 단 둘이 노래방을 갔느냐, 왜 가해자에게 강력하게 저항하지 못했느냐.

반면 가해자에게 왜 그날 술을 먹었는지, 피해자와 단 둘이 남았는지, 원하지 않아 보이는데 멈추지 않았는지를 묻지 않는다. 가해자의 행위가 범죄로 인정된 요건에 해당하는지는 살피지만, 성폭력이 발생하기까지 기울였어야 할 주의 의무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지운다. 상당수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의도나 암묵적 동의 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근거로 면죄부를 받는다. 그런 면죄부는 의도에 상관없이 가해자의 반성 대신 피해자의 자책으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순결한 피해자’ ‘애전한 피해자’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한다. 정확히는 순결해야 하는 피해자, 애전해야 하는 피해자다.

최근 유명연예인의 유흥업소 종사자에 대한 성폭행 고소 사건, 여자연예인의 동의 없이 노출 장면을 유통시킨 사건, 촬영과 연기를 이유로 시나리오와 시퀀스에서 벗어난 정도로 여배우를 폭행한 사건, 연예기획사 사장이 연예인지망생 청소년을 성폭행한 사건 등에 대한 고소와 재판 등이 있었다. 아직 결과가 다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대부분이 중간결과까지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만 하더라도 범죄는 아니라는 법적 판단이 내려졌다.

그러한 배경에는 가해자에 대한 이해가 크고, 피해자에 대한 편견도 적지 않게 자리한다. 피해자가 유흥업소 종사자라거나 연예인이나 연예인 지망생 같이 이른바 성 상품화의 영역에 있는 경우 쉽게 이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성폭력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이른바 2차를 나가기도 하는 성매매 종사자가 업소에서 손님에게 강간을 당했다면 그런 직업을 선택할 때 감수한 일이 아니냐라든가, 섹시 화보를 찍었던 여배우가 19금 영화에 출연하면서 일단 노출 장면을 찍었다면 해당 장면에 대해 어떤 계약서를 쓰거나 약속을 했더라도 상영을 감수한 일이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창가에서 성매매를 전업으로 하는 여성이라고 해도, 설령 화대를 지급하고 여성의 방에 들어갔다고 해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강간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과거 노출 경험이 있든 극단적으로 포르노 영화를 찍었던 적이 있었다한들 배우 동의를 전제로 찍은 신체 부위를 공연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성을 대중에게 상품화하든 특정인들에게 사고 팔았든, 성폭력이 정당화되는 피해자의 직업이나 이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법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원칙을 제시하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사회변화 속에서 신중하고 느리게 검증하며 변화를 담보해간다. 성폭력 문제에서, 성 상품화의 구조 속에서 더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법조계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그러나 느리게 변화하는 법이 먼저 변화해가는 사회의 인식보다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성폭력에서 권력 구조가 갖는 문제에 대한 인식과 공감은 늘어났다. 그 이해의 깊이를 이제는 사회가 가진 선입견과도 싸워야 하는 특정 영역의 피해자들에게까지 넓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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