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부터 한부모들의 연재글 ‘한부모의 마음풍경’을 시작합니다. 이혼, 미혼모, 사별 등 다양한 이유로 한부모가정의 가장이 된 이들은 글쓰기 모임을 구성해 여성신문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들이 펜을 들게 된 이유는 자신들의 모습이 외부인에 의해 타자화·대상화돼왔다는 문제의식 때문입니다.

앞으로 10명이 한부모만의 시선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 이야기를 차례로 들려줄 계획입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이들의 글쓰기모임’은 한국한부모연합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모임 참가문의 02)826-9925

시선에 관한 이야기

8년 전 쯤 길고양이를 구조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파트 단지 안 상가 앞에서 먹이를 구하던 고양이였다. 수컷인데 불임 수술이 돼있었다. 키우던 사람이 이사를 가면서 버리고 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치킨집 앞에서 물벼락을 맞았고, 사람들에게 괴롭힘 받아왔다는 말을 듣고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배고프지 않고 따뜻하게 잠잘 수 있으면 고양이가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집에 데리고 와서 제일 먼저 이름을 지어주었다. 덩치가 큰 만큼 마음도 넓게 다른 고양이들을 품어달라는 바람으로 ‘산’이라 불렀다. ‘산’은 바람과는 달리 집에 온 첫날부터 창문에 매달려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울음이라기보다 비명이었다. ‘우어어’, ‘와우우우어’.

‘산’의 울음에 고민과 갈등이 시작됐다.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넘어서도 나는 왜 ‘산’을 구조 한 것일까,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산’이 살던 곳이 집에서 좀 떨어져있어 매일매일 챙겨주지 못하는 불편한 내 마음 때문이었을까? 고양이니까 밥과 잠자리만 있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오만함이었을까? ‘산’이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지 못한 것은 구조하고 다시 버렸다는 시선이 두려워서였을까?

 

창밖을 바라보는 고양이 ⓒpixabay
창밖을 바라보는 고양이 ⓒpixabay

울음소리를 근 5년간 들을 때 쯤 확신이 섰다. ‘산’에게 행복은 먹을 것이 아니라 자유였음을, 조금 고달파도 자유롭게 살고자 했다는 것을. 길고양이 ‘산’을 가엾게만 바라본 건 나의 시선이었지만 시선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산’이가 맡아야 했다.

요물이라는 편견 속에 살아가는 길고양이에 대한 내 시선에서, 여성이며 한부모이자 캣맘인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혼을 하고 아이와 둘이 살게 됐을 때 나는 좋았다. 싫은 사람을 안 봐도 된다는 사실에 하루하루 설렜다. 가장으로 살아가는 일이 고단하긴 해도 삶이란 누구에게나 치열한 것이므로 나만의 고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연애를 하고 아이와 여행을 가고 내가 번 돈은 오로지 내 계획대로 쓰면서 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혼자라고 무시당하고 있지 않아?’, ‘어떡하니.’, ‘더 나이 들기 전에 좋은 남자 만나야지.’ 이런 말들은 나를 남편 없는 불쌍한 여자로 규정짓고 나의 소소한 행복을 재단한다. 게다가 ‘산’이의 비명 덕분에 동네에서 고양이아줌마로 불리면서 남편 없는 불쌍한 여자에다 고양이랑 사는 이상한 여자라는 시선을 하나 더 갖게 됐다. 늦은 밤 자동차 밑을 들여다보며 ‘밥 줄까?’라고 묻는 나를 누군가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면 고양이와 함께 더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간다. ‘고양이를 버려야 남자를 만나지’ 라는 말을 들으면서 웃는다.

여전히 나는 길고양이를 바라본다. 어떤 고양이는 먹을 것을 주려해도 두려움에 도망가기 바쁘다. 어쩌면 평생 단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본 적 없는 삶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세상에서 언제나 아웃사이더이며 늘 위험과 불안함을 느끼며 치열하게 살지도 모른다. 친구와의 이별과 죽음에 슬퍼하며 때로는 외로울 것이다. 하지만 인적 없는 풀숲에 비친 손바닥만 한 볕에 나른하고 게으른 표정으로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도 본다.

나와도 다르지 않다. 빠듯한 생활비를 계산하고 아이의 성적을 고민하며 노년에 대해 생각하고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며 친구를 만나 수다 떨고 드라마를 보고 밥을 먹는다. 주변의 삶과도 다르지 않다.

5년간 ‘산’이와 지내고서야 ‘길고양이는 불쌍하다’는 나의 편견이 ‘산’이를 더 힘들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일 뿐이다.

필자 박은주씨는 16년 전 이혼 후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한부모다.

(정리=진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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