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대구다. 정치·사회적으로도 그런 도시다. 남아선호가 가장 큰 곳이며 아직도 전통적 가부장 질서가 생활 현장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도시의 밥상머리 교육은 성평등과 같은 주제는 당연히 다루지 않는다. 다루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금기사항이다. 그것은 별난 여성들의 별난 소리쯤으로 여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보수적 도시에 비상이 걸렸다. 한 언론에 보도된 논문 때문이었다.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어느 교수께서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주제가, 함께 일하는 부부의 가사노동 행태에 관한 것이었다. 그 논문의 이런 부분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지역 남성과 결혼한 여성은 다른 어느 지역 남성과 결혼한 여성에 비해 하루에 가사노동 시간이 한 시간 가량 더 많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보수적 도시 출신의 남성과 결혼한 여성은 하루에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엄청 길다는 말이다.
이 논문 때문에 지역 여론이 발칵 뒤집혔다. 지역신문에 이를 걱정하는 전문가의 글이 올라오고, 급기야 신문사 내부기자가 쓰는 칼럼도 같은 걱정을 다루었다. 걱정의 요지는 지역의 미래가 염려된다는 것이었다. 이 지역출신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한다는 얘기는 이 지역출신 남성이 다른 지역출신보다 가사노동을 게을리한다는 얘기인데 이렇게 되면 이 지역 이미지가 나빠질 텐데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었다.
만일 이런 소문이 널리 퍼지면, 누가 이 지역출신 남성과 결혼을 하려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지역출신 남성들은 장가가기가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취직하기도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염려가 꼬리를 물었다. 요즘 세상에 어느 회사가 진취적인 젊은이를 뽑지, 보수적인 젊은이를 뽑겠느냐는 것이다. 낙인효과를 걱정하는 여론이 한 동안 이 도시를 가득 채웠다.
그 소동이 기억에서 사라질 즈음 지금 이 도시는 비슷한 걱정에 다시 휩싸이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 판단을 기다려야 할 일이나 지금까지 나온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인사의 그릇된 처신은 비난 받기에 충분하다. 대통령이 법을 위반했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더 이상 논란이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의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됐으며 대통령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분명한 민의의 평결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낙제 점수다. 그런데 이 도시는 다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연민이 살아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지나치다는 양형부당으로 시작한 동정 여론은 지금 탄핵 부당으로 발전하고 있다. 탄핵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도시의 여론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탄핵은 믿지 못할 정치세력에 의해, 그리고 이념적으로 의심스러운 세력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보이고 있는 패턴과 마찬가지로 이런 주장은 젊은 층보다는 나이 많은 층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아니 다른 어떤 지역과 달리 이 지역 여론이 독특하다는 점은 걱정이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이 신화로 남아 있고, 박 대통령은 신화로부터 걸어 나온 신의 딸이라는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국 모든 지역의 여론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이 지역의 태도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를 떠나서 걱정이다.
고립에 대한 걱정이고 낙인에 대한 걱정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이 다른 지역사람들에 비해 고리타분하여 여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더 크다든지 역사를 보는 눈이 퇴행적이어서 낡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든지 그래서 이 지역사람들은 보수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면 우리의 자식들은 이 나라에서 얼마나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인가?
이 도시의 보수성과 획일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한숨이 깊어간다. 보수성과 획일성이 생물학적 원인 때문일까, 아니면 지정학적 원인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회‧경제적 원인 때문일까? 혹은 정치적 원인 때문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젠더의식의 부재와 정치적 민주의식의 부재가 함께 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 여성에 비해 가사노동을 노골적으로 더 하게 하는 이 지역의 사회적 보수성과 박정희 대통령의 신탁으로 박 대통령을 믿고 있는 정치적 보수성이 단단히 결합해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