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대구 중구 동아쇼핑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가 열린 가운데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6일 대구 중구 동아쇼핑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가 열린 가운데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대구다. 정치·사회적으로도 그런 도시다. 남아선호가 가장 큰 곳이며 아직도 전통적 가부장 질서가 생활 현장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도시의 밥상머리 교육은 성평등과 같은 주제는 당연히 다루지 않는다. 다루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금기사항이다. 그것은 별난 여성들의 별난 소리쯤으로 여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보수적 도시에 비상이 걸렸다. 한 언론에 보도된 논문 때문이었다.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어느 교수께서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주제가, 함께 일하는 부부의 가사노동 행태에 관한 것이었다. 그 논문의 이런 부분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지역 남성과 결혼한 여성은 다른 어느 지역 남성과 결혼한 여성에 비해 하루에 가사노동 시간이 한 시간 가량 더 많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보수적 도시 출신의 남성과 결혼한 여성은 하루에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엄청 길다는 말이다.

이 논문 때문에 지역 여론이 발칵 뒤집혔다. 지역신문에 이를 걱정하는 전문가의 글이 올라오고, 급기야 신문사 내부기자가 쓰는 칼럼도 같은 걱정을 다루었다. 걱정의 요지는 지역의 미래가 염려된다는 것이었다. 이 지역출신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한다는 얘기는 이 지역출신 남성이 다른 지역출신보다 가사노동을 게을리한다는 얘기인데 이렇게 되면 이 지역 이미지가 나빠질 텐데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었다.

만일 이런 소문이 널리 퍼지면, 누가 이 지역출신 남성과 결혼을 하려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지역출신 남성들은 장가가기가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취직하기도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염려가 꼬리를 물었다. 요즘 세상에 어느 회사가 진취적인 젊은이를 뽑지, 보수적인 젊은이를 뽑겠느냐는 것이다. 낙인효과를 걱정하는 여론이 한 동안 이 도시를 가득 채웠다.

그 소동이 기억에서 사라질 즈음 지금 이 도시는 비슷한 걱정에 다시 휩싸이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 판단을 기다려야 할 일이나 지금까지 나온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인사의 그릇된 처신은 비난 받기에 충분하다. 대통령이 법을 위반했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더 이상 논란이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의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됐으며 대통령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분명한 민의의 평결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낙제 점수다. 그런데 이 도시는 다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연민이 살아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지나치다는 양형부당으로 시작한 동정 여론은 지금 탄핵 부당으로 발전하고 있다. 탄핵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도시의 여론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탄핵은 믿지 못할 정치세력에 의해, 그리고 이념적으로 의심스러운 세력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보이고 있는 패턴과 마찬가지로 이런 주장은 젊은 층보다는 나이 많은 층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아니 다른 어떤 지역과 달리 이 지역 여론이 독특하다는 점은 걱정이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이 신화로 남아 있고, 박 대통령은 신화로부터 걸어 나온 신의 딸이라는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국 모든 지역의 여론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이 지역의 태도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를 떠나서 걱정이다.

고립에 대한 걱정이고 낙인에 대한 걱정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이 다른 지역사람들에 비해 고리타분하여 여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더 크다든지 역사를 보는 눈이 퇴행적이어서 낡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든지 그래서 이 지역사람들은 보수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면 우리의 자식들은 이 나라에서 얼마나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인가?

이 도시의 보수성과 획일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한숨이 깊어간다. 보수성과 획일성이 생물학적 원인 때문일까, 아니면 지정학적 원인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회‧경제적 원인 때문일까? 혹은 정치적 원인 때문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젠더의식의 부재와 정치적 민주의식의 부재가 함께 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 여성에 비해 가사노동을 노골적으로 더 하게 하는 이 지역의 사회적 보수성과 박정희 대통령의 신탁으로 박 대통령을 믿고 있는 정치적 보수성이 단단히 결합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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