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강대서 남성페미캠프 ‘케빈 인 더 캠프’ 열려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의 시우 활동가 특강
“페미니스트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
“‘남자다움’ 개념부터 의심하고 성찰해야”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 여성들은 일상 속에서 페미니즘을 체감한다는데, 저는 그럴 수가 없어요.” “바람직한 남성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뭘 해야 할까요?” “페미니즘을 주변에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은’ 남성들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난 9일 서강대학교 마태오관에서 열린 남성페미캠프 ‘케빈 인 더 캠프’. 페미니즘이 궁금한 남성,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남성 등 50여 명이 모여 앉았다. 알바노조, 인권네트워크 사람들, 노동당 여성위원회 소속 활동가 등이 기획한 자리다.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의 시우 활동가가 강단에 섰다. 2시간가량 진행된 강연과 질의응답 내용을 Q&A 형식으로 정리했다.
Q. 페미니스트란 무엇일까요?
“페미니스트가 되는 100가지 방법, 페미니스트 자격 취득법, ‘너 페미니스트야?’에 대한 모범답안.... 그런 건 없습니다. 멋지고 완벽한 사람일 필요도 없어요. 페미니스트란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 일상은 왜 이렇지? 사회는 왜 이렇지? 왜 여자라서, 군대에 안 가서, 한국인이 아니라서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지? 정의로운 관계, 평등한 사회,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죠. 명사보다는 형용사에 더 가까워요.”
Q. ‘시헤남(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자신이 인식하는 성정체성과 출생 시 신체적 성별이 모두 남성인 사람)’인 제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요? 당사자가 아닌데도, 여성과 퀴어의 이슈에 공감하고 발언할 수 있을까요?
“많은 남성들이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나는 남성이고, 결코 여성이 될 수 없는데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할 수 있나?’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정치적 투쟁의 결실인데, 이 단어를 여성이 아닌 내가 쉽게 사용해도 될까?’ 페미니즘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하는 남성들을 중심으로 ‘친 페미니즘’(Pro-Feminism)도 등장했습니다. 친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으로서 지니는 특권에 대한 성찰적 글쓰기, 성희롱 방지 운동 등 많은 활동을 했지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할게요. 흔히 ‘남자라면 공감할 텐데...’ ‘진짜 남자란...’ 같은 얘기를 하는데요. 동의하세요? ‘남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경험’이 존재하나요?
사실 우리는 ‘남자다운’ 게 뭔지 모릅니다. 나도 모르게 특정한 ‘남자다움’을 상정하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죠. 그런데 남성들은 묻지 않아요. 군대, 군사주의가 남성과 ‘남성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지 않고 ‘남자들이 군대에서 고생했는데....’라고 말하죠. ‘시헤남’이라는 개념 역시 너무 쉽게 받아들인 건 아닐까요? 질문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페미니즘을 가지고 나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가’예요.”
Q. 지정 성별이 여성인 학우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할수록 그것이 삶의 경험으로 와 닿는다고 합니다. 남성인 저는 그렇지가 않아요. 오히려 더 멀어지는 느낌이에요.
“페미니즘이 번역·소개되는 방식이 조금 전형적인 면이 있습니다.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 하에서 착취당하는 ‘여성’의 경험 위주죠.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남성적인 것을 분리·배제하자’고 주장하기도 해요. 이렇게 ‘가장 고통받은 사람은 여성’이라고 선을 긋고, 발언을 검열하거나 자격을 심사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여성의 문제, 피해자의 문제로만 보게 되니까요. ‘여성’은 단일한가요?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이 단지 ‘여성’이라서 함께 연대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페미니즘 내부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기존 모델의 한계를 넘어 삶의 복합성을 마주해야 한다는 거죠.
어쨌든 여러분과 같은 고민을 호소하는 ‘페미니스트 워너비’들이 정말 많아요. 누군가는 아예 새 판을 짜고, 누군가는 그 판에 남아서 투쟁하고 협상하기도 하죠. 이런 (남성들의) 고통에 관한 증언과 서사가 더 구축돼야 한다고 봅니다.”
Q. 메갈리아의 미러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일부 남성들이) 메갈리아를 재현하는 방식은 참 문제적입니다. ‘메갈은 가짜 페미니즘이다’, ‘남성의 고통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서구는 뛰어난데 한국은 이 모양이다’.... 이런 부정적인 재현은 메갈리아가 남성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위협적인 존재임을 보여주지요. (남성들은) ‘메갈 말고 진짜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 기저의 불안한 감정부터 어떻게 다룰지 고민해야 합니다.”
Q. 주변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이 있을까요?
“그런 건 없습니다. 안 듣는 사람은 절대 안 들어요. (웃음) 당장 나부터 “페미니즘을 자기 삶의 중요한 가치로 삼는 남자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해요.
아직도 폭력적이고, 성적으로 거칠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남성을 ‘남자답다’고들 하잖아요. 이런 ‘유독한 남성성’부터 중화해 나갑시다. 내가 남성 커뮤니티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도 중요해요. 페미니스트는 ‘내부에 있는 외부인’이 돼야 해요. 페미니스트 간에도 서로 지지하고,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비판해야죠. 기록도 중요해요. ‘내가 이렇게 페미니즘을 공부했고, 내 일상과 주변을 이렇게 바꿔왔다’는 사실을 기록해 남기면 다른 사람들은 덜 헤맬 수 있겠죠.
사실 지금 페미니스트들은 너무 많은 질문을 받고 있어요. ‘너는 페미니스트니?’ ‘페미니즘이 뭔지 알려주세요’ 같은 질문이 쏟아지고 있죠. 하지만 페미니스트는 답변보다 질문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더 많이 대화하고 부딪혀야 해요. 물론 가능하다면 덜 아프게, 현명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