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린 ‘달빛불놀이, 정월대보름’ 행사에서 시민들이 타오르는 달집을 보며 한 해의 복을 빌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1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린 ‘달빛불놀이, 정월대보름’ 행사에서 시민들이 타오르는 달집을 보며 한 해의 복을 빌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엄지손가락만 한 100달러 지폐, 한 손에 잡히는 멋진 스포츠카, 여권, 박사학위기, 결혼반지 사진, 고용계약서, 운전면허증, 술과 음식, 집….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물건들의 미니어처로 가득 찬 장터가 눈길을 끈다. 가운데엔 화려한 인디오 복장을 하고 멋지게 콧수염을 기른 풍요의 신 ‘에케코’가 집, 자동차, TV, 음식, 여러 나라 돈을 주렁주렁 매단 채 미소를 띠고 있다. 1월말 서울시민청에서 열린 볼리비아의 새해 축제인 알라시타 축제에 가봤다.

참석자들은 주최 측에서 나눠준 가짜 화폐를 지불하고 아기자기한 모조품들을 구입하거나 볼리비아 전통 음료와 디저트를 맛보며 즐거워했다. 알라시타는 아이마라어로 “나를 사세요”라는 뜻으로 주민들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상징하는 미니어처를 구입해 에케코 인형에게 걸어주며 새해 소망을 기원한다고 한다. 과달루페 팔로메케 주한 볼리비아 대사는 “알라시타는 18세기경 안데스산맥의 아이마라 인디오들 사이에서 시작돼 현재는 다민족 국가인 볼리비아의 국민 화합과 희망을 상징하는 신년 축제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가 올 2월 5일로 100일째를 맞았다. 대통령의 퇴진 촉구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87년 구체제 청산, 전반적인 사회구조 개혁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개헌 논의에 불을 당겼다. 촛불집회는 유례없는 평화적인 집회로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 세대 갈등, 이념 갈등 같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분열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동창회, 향우회 등 각종 모임에서 집회 참가 여부를 놓고 상대방에 대한 비방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심지어 설 명절을 쇠느라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 사이에도 이념 공방이 벌어져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한다. 곳곳에서 횡행하는 편가르기와 진영 논리를 넘어설 수 있는 국민 화합 방안이 절실하다.

지난 3∼4년 사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이고 행동을 예측하기 힘든 지도자들이 유독 많이 등장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북한의 김정은,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가 하면 현재 아태 지역엔 4명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활약 중이란 중국의 유머도 있다. 진짜 푸틴, 푸틴을 넘어선 김정은, 푸틴을 좋아하는 도널드 트럼프, 푸틴을 넘어서려는 중국의 시진핑이 그들이다.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이들은 “지구촌이야 어떻게 되든 우선 내 나라부터 챙기겠다”며 기존 국제정치 질서를 무시하고 자국 중심의 공격적인 대·내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김정은은 날로 핵·미사일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어 우리를 둘러싼 국제 안보 무역환경은 그야말로 시계는 제로인데 폭풍우가 몰려오는 가시밭길 형국이다. 시계 제로의 가시밭길을 헤쳐나가려면 희망의 등불이 필수적이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국가안보만큼은 끼리끼리 흩어져서가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2월 11일은 정월대보름이다. 달집태우기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보름달이 떠오를 때 생솔가지와 짚등을 쌓아올린 무더기에 불을 질러 태우며 소원을 비는 민속 행사다. 우리 조상은 달집이 탈 때 고루 한꺼번에 잘 타오르면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 든다며 길흉화복을 점쳤다. 11일 촛불집회 때 시청앞 광장에 집채만 한 달집이 세워지고 모든 시민들이 함께 불태우며 소원을 비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정월대보름 촛불집회가 국민 화합을 다짐하는 희망의 달집태우기 축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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