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여성 대통령’ 발언부터

풍자화 ‘더러운 잠’ 논란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계속되는

권력 비판과 여성혐오·차별 사이 위태로운 줄타기

 

지난 1월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열린 ‘곧, 바이! 展’에 전시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
지난 1월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열린 ‘곧, 바이! 展’에 전시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 ⓒ뉴시스·여성신문

나체로 잠든 박근혜 대통령을 그린 이구용 작가의 풍자화, ‘더러운 잠’이 논란이다. “국정 농단을 통해서 국가를 굉장히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들을 풍자했다고 한다. 원작은 마네의 ‘올랭피아’. 당당히 정면을 바라보는 성매매 여성을 그려 ‘시선의 전복’을 꾀했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그러나 ‘더러운 잠’은 여성의 나체를 수동적·전시적인 방식으로만 묘사함으로써, 풍자를 빌미로 여성혐오를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부 가운데 여자가 (대통령이) 됐다면 잘할 텐데, 여자 혼자 대통령이 됐다. 여자 대통령이 나오니까 신통치 않네.” “(박 대통령이) 결혼도 한 번 안 해보고, 애도 (안 낳았다). 역시 그 영향이 있다.” 올해 첫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 대통령을 두고 한 얘기다. 박 대통령 개인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 일반화했다. 비혼 여성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비선실세 국정 농단 사태’가 발발했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다. (바로가기▶ 전두환 ‘여성 비하’ 논란… “결혼 안한 여자 대통령 신통치 않다”)

 

지난 1월 2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린 트윗. ⓒ표창원 의원 트위터 캡처
지난 1월 2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린 트윗. ⓒ표창원 의원 트위터 캡처

“병신년이 가고 정유년이 오니 정유연(정유라 씨의 개명 전 이름)이 오는군요. 진짜 정유년(음력설)의 시작은 대한민국 쓰레기 대청소로!” 지난 1월 2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덴마크 경찰이 정 씨를 체포해 압송 절차에 착수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하며 이런 트윗을 올렸다. 부적절한 여성·장애인 비하 표현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표 의원은 다음날 “인권감수성이 부족한 잘못된 표현”이었다며 사과했다. 

새누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일을, 여성에 대한 성폭력으로 묘사한 만화도 나왔다. 지난해 12월 10일 한 누리꾼이 자신의 블로그와 디시인사이드 ‘카툰-연재 갤러리’에 올린 만화다. 박 대통령·새누리당을 비판하는 이들을 반라의 건장한 남성으로 그렸다. 남성들이 자신들을 깔보는 젊은 여성, 즉 새누리당을 성폭행하면서 “이제 진짜 주인이 누군지 알겠지?” “국민의 힘에 너도 맥을 못추겠지?”라며 조롱하는 내용이다.

 

새누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일을 여성에 대한 성폭력으로 묘사한 만화. 현재 원본은 삭제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새누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일을 여성에 대한 성폭력으로 묘사한 만화. 현재 원본은 삭제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촛불광장에 선 시민들이 ‘여성혐오는 민주주의와 함께 갈 수 없다’는 의지를 천명한 게 고작 수개월 전이다. 그러나 권력 비판과 소수자 혐오·차별 간의 경계는 여전히 흐릿하다. 박 대통령, 최순실 씨, 정유라 씨 등 사태의 핵심 인물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성’을 싸잡아 비꼬고 조롱하는 말들이 끊임없이 공론장에 등장한다. 사태의 핵심은 ‘권력의 사유화’지만, 알맹이가 빠진 분노와 비판, ‘풍자’의 탈을 쓴 여성혐오 콘텐츠가 넘쳐난다.

콘텐츠의 혐오적 요소를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 논쟁’이 일어나는 사례도 늘었다. 최근 풍자화 ‘더러운 잠’, 지난해 DJ DOC의 ‘수취인분명’이 촉발한 논쟁이 모두 그렇다. ‘페미니즘이 예술을 검열하려 한다’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이는 “오해”라고 여성철학자인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 교수는 일축했다. “‘검열’은 아예 한 작품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국가나 집단의 차원에서 삭제하는 일이고, 여성계는 그런 요구를 한 적 없다. 표현의 자유란 작가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이기도 하지만 그 생각을 대중이 씹을 자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촛불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박근혜 정권이나 가부장 카르텔뿐만 아니라, 그들을 비판하는 세력 내부의 가부장적 문화까지 바꿀 때 ‘진짜 시민혁명’을 이룰 수 있다는 논의였죠. 그런데 아직도 많은 이들이 낡은 해악을 고집합니다. 여성혐오를 등에 업지 않고선 권력을 비판하지 못하죠. 그런 고민조차 없어요.” 

 

 

촛불정국 속 여성혐오는 지난해 여성계의 중대 이슈 중 하나였다. 해가 바뀌었지만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촛불정국 속 여성혐오'는 지난해 여성계의 중대 이슈 중 하나였다. 해가 바뀌었지만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여성신문

만연한 여성혐오에 맞서 여성들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성별, 성적지향, 지역, 학력, 인종, 장애 등을 근거로 한 희화화, 패러디, 풍자 ‘예술’은 저열한 폭력일 뿐.”(1월 24일, 한국여성민우회)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성평등한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같은 날, 한국여성단체연합) “부패한 권력자라도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방식으로 비판되어선 안 된다.” (1월 25일, 민주당 소속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과 김상희 박영선 김영주 인재근 유은혜 한정애 이언주 정춘숙 백혜련 제윤경 권미혁 박경미 의원)

“여성혐오를 극복하려면 여성혐오 콘텐츠가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그 콘텐츠의 빈약한 상상력을 조롱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여성들에겐 “논쟁의 여지, 씹기의 기회”가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지금 제일 위험한 것은 여성혐오 담론을 단순하게.적용하는 겁니다. 여성계가 그간 여성혐오 관련 논의를 발전시킨 방식이 오히려 페미니즘에 불리하게 작용하진 않았나 돌아봐야해요. ‘년’은 여성비하적 표현이므로 무조건 쓰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논의에서 한 걸음 나아가야 해요. 어떤 구체적인 맥락에서 여성혐오·차별적 표현이 나오는지 반성하고, 더 확장적인 표현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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