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으로 지구촌이 발칵 뒤집혔다. 7개 무슬림 국가 출신자의 미국 입국을 제한한다는 반이민 난민 행정명령으로 미국시민들은 분노하며 저항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도발적인’ 처방은 전면적인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행정명령을 수행해야 할 법무부에서조차 장관 대행이 백악관의 조치를 변호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가 즉각 해임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력한 미국의 재건을 위해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조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스스로 미국의 존엄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애국심은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보다못한 오바마 직전 대통령이 일련의 사태를 ‘미국적 가치의 상실’로 규정하고 새 행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주의 수호가 모든 미국 시민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오바마 전대통령의 성명은 진정한 미국민의 자부심을 표현한다. 다양성과 개인의 존중, 개방과 협력, 효율과 나눔의 공존 등의 민주주의 가치는 다인종 이민사회 미국을 지탱하는 정신적 힘이고 국제무대에서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는 근간이었다.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탄핵 정국 속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상실한 것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것, 여성 리더십의 가치 상실이다. 유독 지독하게 가부장적이었던 대한민국에는 여성들이 정말 어렵사리 이뤄낸 ‘여성리더십의 가치’라는 자산이 있었다. 여성들은 부패의 고리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원칙과 정의를 중시하고, 이타적이고, 모성적인 리더십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리천장이 굳건하기로 세계 1위, 남녀간 임금격차 OECD 1위인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을 승진시킬 때나 고위직으로 발탁할 때 차용되는 논리가 여성리더십의 이런 명분이었다.

그런데 탄핵 정국 속에서 이런 여성리더십의 명분과 가치가 사라져 버렸다. 더이상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장점을 주장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위법, 무능, 부정, 뇌물, 사익, 갈취, 태만, 농단, 약물 등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부정적 의미들이 ‘여성’이라는 단어 속에 스며 들었다. ‘여성리더십의 오염’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마침내 ‘더러운 잠’이라는 제목의 대통령 누드화로까지 이어진 일련의 여혐 현상과 그의 반격으로 발생한 더 끔찍하고 추악한 공격들은 점입가경이었다. ‘여성리더십의 오염’이란 현실 속에서 여성은 더이상 원칙적이지도, 믿을 만하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았다. 2017년 대한민국 여성들은 이런 불리한 현실 속에서 한 해를 시작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이런 현실을 가르켜서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이 한국여성 지위에 타격을 가져왔다”는 기사를 발신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암묵적 편견을 강화시겼고, 여성사회진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면서 ‘유리천장을 깰 것으로 기대했던 여성대통령의 취임 이후로 성평등지수는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고 보도한다.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라 더 화가 났다.

이제 여성리더십에 디톡스를 해야 할 때다. 디톡스는 성평등 가치의 재확인에서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성평등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여성리더십의 오염이 여성의 책임만은 아니다. 그 숙주에 붙어서 부패의 고리를 확산시킨 이들은 너나 할 것 없는 이 사회의 엘리트 권력층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탄핵정국에서 만난 추악한 민낯들은 우리 사회 전체가 오랫동안 가부장제의 지배구조에 잠식당했기 때문에 생겨난 소수의 독점적 지배와 계급화, 차별과 억압이 당연시되는 지배구조의 적폐, 부작용이 만들어낸 탄핵정국이다. 범죄는 범죄로서 명백히 밝혀지고 정확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정국의 책임에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바마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의 책임’인 것처럼 대한민국의 성평등 역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새로운 질서를 절실히 원한다. 그 새로움을 얻는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강력한 방법은 모든 사람이 책임을 다하는 성평등 가치의 실현이다. 남성, 여성 모두 성평등의 가치를 회복함으로써 여성리더십 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정상화, 정치의 교체가 가능하다.

대선후보들의 출마 선언과 공약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선후보들의 머리속에는 성평등 실현에 대한 사명이 확고하지 않다. 정책 공약 속의 성평등 지수는 아직 미진하다. 성평등 정책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무다. 2017년의 모든 개혁구상은 이 출발점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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