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여성학 전문가·여성의원들

한목소리로 ‘더러운 잠’ 강력비판

“‘더러운 잠’은 시국비판 아닌

여성혐오·비하, 성희롱에 불과”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열린 ‘곧, 바이! 전’에 전시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이번 전시회에 걸린 이 그림은 박 대통령이 누드로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묘사해 논란이 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열린 ‘곧, 바이! 전’에 전시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이번 전시회에 걸린 이 그림은 박 대통령이 누드로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묘사해 논란이 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에 걸린 일부 그림이 여성혐오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여성단체와 기관, 여성학 전문가들이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여성 국회의원들도 기자회견과 성명을 통해 표 의원에게 작품 전시 철회와 사과를 요구했다. 

문제가 된 그림은 이구영 작가가 그린 ‘더러운 잠’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와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차용해 그렸다. ‘더러운 잠’은 지난 20일부터 열린 ‘곧, 바이! 전(展)’에 다른 작품들과 함께 걸렸다. 그림 중앙부에는 나체 상태의 박 대통령이 잠들어 있고, 박 대통령의 복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화와 ‘사드(THAAD)’라고 적힌 미사일, 강아리 두 마리가 놓여 있다. 박 대통령 옆에는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주사기 다발을 들고 있으며, 그 뒤로는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 그림이 걸려 있다.  

해당 그림이 국회 의원회관에 전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단체들도 즉각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24일 성명을 통해 “‘더러운 잠’은 여성비하이자 인격모독, 저질적 성희롱”이라며 전시회를 주최한 표창원 의원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이 그림은 우리 민족이 지켜온 인간애와 예의 등의 가치를 무참히 훼손했으며, 나아가 국민을 모욕한 잔인하고 비열한 행위”라며 “인격비하, 여성비하, 저질적 성희롱”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단체는 특히 “이는 표현의 자유로 포장될 수 없는 잔인한 인격살인이고, 여성과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는 저질적인 범죄행위”라며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기본권, 존엄과 가치, 사생활 보호 등의 헌법적 가치를 무참히 짓밟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국론의 장이자,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여성 인격을 심각하게 모독하는 행위가 자행된 것은 폭거이며 어떤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며 “65개 회원단체를 비롯해 500만 회원은 전시회의 즉각 중단과 표창원 의원의 중징계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도 이날 “국정농단 등 헌정질서를 파괴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성적대상화나 여성혐오로 표현되는 것을 반대한다”며 “어떠한 비판이나 풍자도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성연합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성평등한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가족부도 이날 오후 ‘국회에서의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 관련 대변인 논평’이라는 제목의 비판 성명을 냈다.

여가부는 논평을 통해 “여가부는 모든 국민의 인권보호와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부처로서, 민의의 정당인 국회에서 최근 여성을 비하하는 성격의 전시가 개최된 데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예술이 지닌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언제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과 가치에 기반해야 할 것”이라며 “여가부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 비하가 우리사회에서 하루빨리 근절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여가부가 여성혐오 이슈와 관련해 공식 논평을 내고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여가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 논란을 비롯해 지난해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던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등 여성혐오 논란이 일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았었다.

여성학과 문화계 전문가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더러운 잠’이 풍자의 외피를 입었지만 그 내용은 여성혐오·비하”라며 “(현재 한국 남성들은) 스스로 깨닫기도 어려울 정도로 뿌리 깊은 여성혐오를 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혐오 없이 비판이 가능함을 이미 광장의 촛불이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표창원 의원은 여성혐오를 반복하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많은 이들은 현실에 있는 것들을 나열, 재현하기만 하면 풍자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건 풍자를 단순한 조롱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풍자는 날카로운 통찰과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더러운 잠’은 게으른 미학의 전용이라는 지적이다.

황 평론가는 이구영 작가가 그림의 구도는 올랭피아를 차용했지만, 그림 속 여체는 조르조네의 비너스를 빌렸다고 짚었다.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고,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육체 그림 소비가 절정이던 시기에 반기를 든 그림이다. 반면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속 여성의 시선과 자세는 ‘보여지는 존재인 여성’으로 소비되던 당시 누드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황 평론가는 그림에 숨어있는 의미를 설명하며 날카로운 평가를 이어갔다. 그는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 속 여성은 그림 밖 대중을 똑바로 쳐다본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시선의 역전’이 존재하는 것”이라며 “조르조네의 비너스는 대상화되는 관능적인 여성의 몸일 뿐이다. 따라서 ‘더러운 잠’은 소라넷에서 지인이나 유명인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한 것과 다를 바 없고, 성희롱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특히 황 평론가는 정치가의 악행은 ‘여성’의 악행으로 치환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여성의 악행은 반드시 섹슈얼리티적 의미를 지니는 요부로 재현된다”며 “여성 정치가의 사회적 악은 섹슈얼리티를 체현하는 여성의 몸으로 환원된다. 즉 박근혜의 정치적 악행을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여체로 환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표창원 의원은 전 국민에게 사과해야”

새누리당·바른 정당 소속 여성 의원들,

표 의원 국회 윤리위에 제소 방침 밝혀

여성 정치인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소속 여성 의원들은 표 의원을 향해 작품 전시 철회와 사과를 요구했다. 특히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소속 여성 의원들은 표 의원에 대한 국회 윤리위제소 방침을 밝혔다.

나경원 김현아, 송희경, 신보라 등 새누리당 소속 여성 의원 11명과 박순자, 이은재 등 바른정당 소속 여성 의원 3명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표 의원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할 것”이라며 “표 의원은 전시 내용에 대해 여성은 물론 국민에게 사죄하고 즉각 전시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가 불거지자 표 의원은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고 있다”며 “타인의 인격을 짓밟는 것까지 자유의 영역으로 보호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권은희, 김삼화, 김수민, 박주현, 신용현, 장정숙, 조배숙, 최도자 등 국민의당 소속 여성 의원들도 성명을 내고 “여성정치인 혐오가 담긴 작품 전시를 철회하고 즉각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박 대통령의 무능과 권력 비리이냐, ‘여성’ 대통령이라는 것에 대한 비하와 혐오냐”면서 “여성 정치인을 향한 혐오적 그림이 국회에 전시된 것에 여성 정치인으로서 깊은 우려를 표하고, 민주당은 해당 작품의 전시 철회와 즉각적인 사과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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