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합의는 외교 참사

국회는 예비비 만들어서

“사기 당했다”는 10억엔

일본 정부에 돌려줘야

 

“운동권의 따뜻한 자매애”

정대협 운동 함께해온

25년간의 긴 인연

“피해자 명예 회복에 온힘”

 

정의기억재단 지은희 이사장과 윤미향 상임이사가 16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내 마련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추모관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정의기억재단 지은희 이사장과 윤미향 상임이사가 16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내 마련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추모관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차가운 겨울바람을 뚫고 모처럼 햇살이 얼굴을 내비친 날이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가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성산동 골목길을 올라갔더니 꽃밭에 파묻힌 고 김학순 할머니 벽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모서리를 끼고 돌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담벼락에 노란 나비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소녀상 #평화 기억하고 기록하겠습니다” “할머니들의 꽃은 아직 지지 않았어요” “할머니! 응원합니다 사랑해요”…. 노란 나비 종이에 적힌 10대들의 메시지였다.

할머니들, 한일 정부 상대 손배소송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오히려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들의 연대는 더 깊고 튼튼해졌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라는 긴 이름의 재단이 그 정점이다. 지은희(70) 정의기억재단 이사장은 “한일 합의를 인정할 수 없었던 국민이 우리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성금을 모으고 재단을 탄생시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일 합의는 25년의 역사를 무효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 이익을 전혀 지키지 못했어요. 식민지 지배 아래 일어난 가장 비인도적인 범죄 행위에 대해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죠. 오죽하면 일본이 ‘우리가 버린 건 10억엔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겠어요. 저도 한일 합의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화도 나고, 체해서 며칠 몸이 아팠어요. 있을 수 없는 외교 참사였어요.”

지 이사장은 기자와 만났을 때 새삼 분개했다. 옆에 있던 윤미향(53) 상임이사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이미 한일 합의는 국민의 입장에선 무효화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 소추를 받는 대통령이 재임 중 수행한 정책 중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이기 때문이다. 지은희와 윤미향. 한일 합의를 무효화시키는 긴 싸움에서 둘이 보여준 것은 “운동권의 따뜻한 자매애”였다. 1992년 지 이사장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있던 때에 처음 만났으니 25년의 인연이다.

정의기억재단이 긴 이름을 갖게 된데 대해 지 이사장은 “내가 계속 주장했다”며 웃었다. 할머니들은 사실 ‘위안부’라는 호칭을 싫어한다. 할머니들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라고 분명히 밝히는 것은 긴 역사를 이어가야 하는 정의기억재단에선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는 게 지 이사장의 생각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현재 세 가지 사안을 소송 등을 통해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위안부 문제를 적극 해결하지 않은 정부의 소극적 자세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할머니들은 한일 합의가 헌재 판결을 무시하고 위헌을 영구화한 것 아니냐며 이를 해석해달라고 헌재에 요청해둔 상태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우리 법원에서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인들이 자국 법원에서 독일 정부를 상대로 다투다 승소판결 난 사례를 볼 때 우리도 승소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유족과 할머니들이 나섰죠. 피해자 중 한일 합의에 따라 지급된 1억원을 받은 두 분도 참여했어요. 할머니는 소송을 함께 하면서 ‘그건 법적 배상이 아니잖아. 일본 정부도 위로금이라고 했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보면 분이 풀리지 않다’며 소송을 함께 하고 싶어요.”(윤미향)

 

운동권의 따뜻한 자매애. 정의기억재단 지은희 이사장과 윤미향 상임이사를 보며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둘은 정대협 운동을 고리로 25년간 인연을 맺어왔다. ⓒ이정실 사진기자
운동권의 따뜻한 자매애. 정의기억재단 지은희 이사장과 윤미향 상임이사를 보며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둘은 정대협 운동을 고리로 25년간 인연을 맺어왔다. ⓒ이정실 사진기자

화해치유재단, 출발부터 원천무효

윤 이사는 “사실 할머니들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평균 90세가 넘었고 100세 되신 분도 두 분이라 재판이 쉽지 않다”면서 “우리 정부에 해결을 요구했으나 가로막았으니 이제 법으로 호소할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드러낸 데 의미가 있다.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로 재단이 태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복동 할머니가 낸 100만원이 재단의 마중물이 됐고, 십시일반으로 모아 10억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국회 예비비를 통해서라도 10억엔을 돌려주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희망을 걸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측이 ‘10억엔을 보이스피싱 당했다’고 한 뒤 ‘그러면 예비비를 만들어서 사기 당했다고 주장하는 돈을 돌려주자’는 이야기가 나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검에선 국정농단 주역인 최순실씨가 한일 합의에 개입한 의혹도 조사 중이다. 지 이사장과 윤 이사는 요즘 국회의장, 주요정당 대표를 만나 합의 무효화를 이끌어내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

일본 정부의 범죄사실 인정, 공식사죄, 법적 배상, 진상규명, 역사교육, 추모, 책임자 처벌이 포함된 법적 책임. 지 이사장은 “이 7가지가 완벽히 이행돼 정의로운 해결이 이뤄지는 날까지 모든 노력을 쏟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여성가족부 산하 화해치유재단도 박 대통령 탄핵과 함께 해산 요구를 받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대표는 “김 이사장이 할머니들을 회유한 방식은 폭력”이라고 분개했다. “생존자 중에서 절반 이상이 지금 병원에 계세요, 요양원 시설에. 가족도 별로 없어요. 조카나 동생들이죠. 그런 분들에게 가서 가족을 대신 만나 일본 정부가 사죄했고 10억엔이 배상금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윤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할머니들을 굉장히 집요하게 만나자고 했어요. 수원에 계신 한 할머니가 만남을 거부했더니 김 이사장이 조카라도 만나고 싶다고 하더래요. 그래서 만났다고 해요. 할머니가 ‘한국 정부에 소송건 거 알아요?’라고 물었더니 ‘안다’면서 ‘그것과 이 돈은 달라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일본 정부에 아무리 소송해도 일본 정부가 사과 안할 거예요. 그러니까 이 돈을 받고 다음 단계로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고 회유했다고 해요. 그래도 할머니는 끝까지 돈을 받지 않으셨죠. 심지어 여경들과 함께 할머니를 만났어요. 위안부 피해자라고 얘기하지 않고 보통 노인처럼 사는 분인데 경찰을 두 명 데리고 와 ‘내 보디가드 역할을 한다’면서 돈 받겠다는 도장을 찍게 만들다니 이는 범죄 행위죠.”

화해치유재단은 출발이 원천무효일뿐 아니라 김 이사장이 일본 정부의 대리인으로 ‘배상금적 치유금’이란 교묘한 수사를 써가면서 할머니들을 회유한 행위만으로도 책임지고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가부 장관을 지낸 지 이사장은 “여성가족부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공무원들이 문제제기를 했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조차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얘기를 했는데 여가부가 침묵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지은희 이사장이 조곤조곤 말하는 스타일이면, 윤미향 이사는 아프다는 말을 실감 못할 정도로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운동가다. 지 이사장 옆 조형물은 길원옥 할머니, 윤 이사 옆은 김복동 할머니 조형물이다. ⓒ이정실 사진기자
지은희 이사장이 조곤조곤 말하는 스타일이면, 윤미향 이사는 아프다는 말을 실감 못할 정도로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운동가다. 지 이사장 옆 조형물은 길원옥 할머니, 윤 이사 옆은 김복동 할머니 조형물이다. ⓒ이정실 사진기자

정대협 함께하며 25년간 긴 인연

두 사람의 인연은 정대협을 고리로 피어났다. 예전 이야기를 하면서 둘은 “5∼6명 규모의 정대협이 힘을 발휘하는 건 국민이 지원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정대협이 원칙적이다, 민족주의적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고 했다. 윤 이사는 “일부에선 비타협적 대응으로 한일 관계를 망친 사람이 윤미향이라고 하더라. 옛날에는 지은희라고 했는데….”라며 웃었다.

“일본은 사죄하고 싶은데 정대협이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 화해를 가로막고, 반일을 선동한다는 말도 나오더군요. 심지어 중국에서 자금을 받아 반일 의식을 키워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파괴시킨다는 거예요? 정대협이 정말 대단한 권력이네요(웃음).”(윤미향) 윤 이사는 한신대를 졸업한 후 92년 정대협 간사를 시작으로 사무국장,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고 2008년부터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지 이사장이 칠순을 앞두고 거리에 나선 것은 윤 이사의 전화를 받고나서였다. 30년간의 운동을 마무리하고 이제 쉬려던 시기에 받은 전화였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여성운동을 통해 잔뼈가 굵었다. 이효재 선생님의 직계 제자인 그는 83년 여성평우회 공동대표, 98년 정대협 공동대표를 맡았다. 공직에 입문해 참여정부 때 2대 여성부 장관을 지내고 덕성여대 총장을 연임했다.

지 이사장은 현장에 돌아온 후 두 가지에 놀랐다고 한다. 우선 수요시위에 10대와 젊은이들이 많이 참가한다는 사실이다. 나비기금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위안부 운동과 평화의 가치를 알리면서 운동이 젊어진데 대해 깜짝 놀랐다. 또 하나는 위안부 할머니가 진짜 평화인권운동가가 돼 있었다는 점이다. 고된 운동도 허무한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됐다. 지 이사장은 “김복동 할머니가 얘기하는데 단 한 마디도 보탤 말이 없더라”며 “평화인권운동가로 거듭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할머니들이 운동가가 된 것은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지 이사장이 조곤조곤 말하는 스타일이면, 윤 이사는 아프다는 말을 실감 못할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한일 위안부 합의의 부당성을 짚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지 이사장은 정대협 운동을 끈질기게 해온 윤 이사를 지긋이 쳐다보며 안쓰러움을 토로했다.

“다른 여성운동가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는 않아요. 법을 하나 만들면 성취감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정대협 운동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여지가 대단히 적어요. 계속 싸우는 일이니까요. 또 피해자를 끌어안으면서 하는 운동이 쉽지 않아요. 심지어 할머니에게 고소를 당한 적도 있어요. 그 고생을 감내하면서 묵묵히 20년간 운동해온 미향이를 보면 지금도 애가 타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