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카톡방 새 소식 알림벨이 쉴 새 없이 울린다. 행여라도 중요한 소식을 놓칠까봐 인터넷 속보, 실시간 검색어 리스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지난해 10월 중순쯤부터 생긴 증상이다. 모바일 커뮤니티부터 소셜미디어, 공중파 프라임타임 TV뉴스와 종합편성채널까지 미디어란 미디어는 모두 희대의 막장드라마에 점령당했다.

절대 권력자의 비밀스런 사생활과 추종자들, 치정과 배신, 돈과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 아름다움과 젊음을 되찾으려는 처절한 몸부림…. 막장 드라마가 갖춰야 할 모든 요소는 다 갖췄다. 문제는 이것이 진짜 TV 일일연속극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을 중심에 둔 정경복합스캔들이란 점이다.

압축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어떻게 이런 막장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동안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무엇을 했나. 국민의 한사람으로 참담하고 자괴감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답이 보인다. 전문적인 법률지식과 실행능력을 갖춘 엘리트집단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기득권을 영속화하고 싶은 법률엘리트와 경제엘리트, 지식엘리트의 공고한 카르텔이 이 드라마의 제작자였다.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 중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친구로부터 수백억대 주식을 받아 해임된 검사장은 모두 ‘소년등과’한 검사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이들은 검사로 임용됐을 당시 이 검사선서문을 낭독하며 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공정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괴물로 만들었을까?

한편의 막장드라마 같은 작금의 탄핵정국은 한마디로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그릇된 가치관에서 기인했다. 이들도 처음에는 ‘공익의 대표자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겠다’는 사명감에 불탔을 것이다. 그런데 정검(政檢)유착 속에서 생존하는 과정에서, 성공을 위해서는 실력보다 연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익의 수호자가 되겠다는 초심을 잊고 권력자의 충복이 되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한국인은 근대성이라는 옷은 입었지만 합리성, 이성, 상식, 법치 등으로 대변되는 근대성의 가치를 체화하지는 못했다. 한국인의 이중적인 잣대가 우리의 막장드라마에도 적용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연고주의, 정실주의, 가족주의는 내가 하면 인정의 도리지만 다른 사람이 하면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치부된다. 한마디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이 땅에 출세를 위해,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 유명해지기 위해 괴물이 되어가는 또 다른 최순실, 또 다른 우병우가 얼마나 많은가? 기회가 없어서 하지 못했을 따름이지, 기회가 주어진다면 괴물이 되는 것도 서슴지 않겠다는 욕망이 나에게도 있지 않은가?

2017년 1월, 새해의 희망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 완전히 새롭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 적폐 청산을 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한국의 정치, 경제, 기업, 사회, 문화의 각 분야를 근본에서 뜯어고쳐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대한민국 리셋(Reset)’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리셋은 나 자신으로부터, 내 안에 쌓인 적폐 청산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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