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부활한 종로서적 ‘여성 위한 서점’ 전략 

하지만 ‘페미니즘’ 코너 없고 여성 위한 콘셉트도 모호 

박래풍 점장 “평대 정리까지 평균 3개월 소요…

이달 중 전문서적 평대 작업 마칠 것”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종각역 종로타워빌딩 지하에 문을 연 종로서적.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종각역 종로타워빌딩 지하에 문을 연 종로서적. ⓒ뉴시스·여성신문

“독자와 소통하는 서점, 여성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점을 지향한다.”

지난해 12월23일 폐점 14년 만에 ‘종로서적’이 문을 열었다. 국내 대형서점의 효시이자 만남의 장소로 사랑받던 종로서적은 앞으로 ‘여성 중심 서점’이라는 콘셉트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겠다고 선언했다. 서분도 종로서적 사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종로서적은 전체 도서 구매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을 위한 서점이 될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출판시장을 떠받치는 가장 큰 독자군인 여성에 초점을 맞춰 서점을 운영하겠다는 생존전략인 셈이다.

지난 5일 문을 연 지 2주째인 종로서적을 찾았다. 여성 중심 서점으로 탈바꿈한 서점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연결된 출입문을 열고 서점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책이 아니었다. 출입구 정면에는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오른쪽에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이 위치해 있어 전통적인 서점이라기 보단 마치 북카페에 들어온 듯했다. 특히 지하 2층은 팬시점과 식음료 매장이 절반을 차지해 다소 산만했다.

 

5일 서울 종각역 종로타워빌딩 지하 종로서적 독서 테이블에서 고객들이 책을 읽고 있다. ⓒ변지은 기자
5일 서울 종각역 종로타워빌딩 지하 종로서적 독서 테이블에서 고객들이 책을 읽고 있다. ⓒ변지은 기자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독서 공간을 마련한 점은 눈길을 끌었다. 40여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긴 나무책상과 따뜻한 조명은 도서관 같은 느낌도 줬다. 여성 고객을 감안해 마련했다는 1인 독서공간은 벽면에 붙어 있어 조용히 책을 읽길 원하는 독자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서점 측은 “인근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독서공간은 20평당 1석인 반면, 종로서적은 10평당 1석의 독서공간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출입문 왼편으로 몸을 틀자 ‘10~60대 여성을 위한 책’이라는 추천도서 평대(서점 직원들이 별도로 설치하는 책 판매대)가 나타났다. 여성을 위한 코너라 유심히 살펴봤지만 추천도서는 신간도서나 베스트셀러 도서를 적당히 섞어 놓았을 뿐 별다른 특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추천 도서 중 페미니즘 도서는 20대 추천도서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30대 추천도서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 등 단 두 권 뿐이었다. 최근 페미니즘 책들이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듯했다.

이날 서점에서 만난 하수정(28, 서울 광진구)씨도 “여성을 위한 공간이라는 말을 듣고서 종로서적을 찾았는데 막상 실제로 와보니 실망스럽다”며 “연령대별 여성 추천도서 평대를 살펴봐도 그 기준이 뚜렷하지 않고 요즘 ‘여성’ 키워드가 부상하니 급하게 조성한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5일 서울 종각역 종로타워빌딩 지하 종로서적 여성을 위한 책 평대에 책들이 진열돼있다. ⓒ변지은 기자
5일 서울 종각역 종로타워빌딩 지하 종로서적 여성을 위한 책 평대에 책들이 진열돼있다. ⓒ변지은 기자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도 “종로서적은 여성을 위한 서점이라더니 페미니즘 평대는 찾을 수 없고 10~60대 여성을 위한 추천도서 평대만 만들어놨다”, “여성 타깃으로 연령대별 평대를 구성한 건 좋지만 겹치는 책이 많아 아쉬웠다”등 여론이 있었다.

이 같은 반응에 대해 박래풍 종로서적 점장은 “‘페미니즘 도서’와 같은 평대를 만드는 작업은 서점 개업 후 모든 도서를 세부 항목별로 정리한 뒤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작업”이라며 “기존 베스트셀러 평대가 아닌 이벤트 매대 등 특수 평대를 만드는 작업은 서점 북 MD 회의를 거쳐 세밀하게 진행해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박 점장은 “서점이 개업하고 운영을 정상화하는데 걸리는 평균 소요 시간은 3개월이지만, 종로서적은 개업 전부터 언론에서 주목받는 바람에 다른 서점들보다는 속도를 내서 매장 정비 작업 중”이라며 “1월 중으로 다양한 평대 작업을 마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독자들의 페미니즘 등 전문 서적 평대요구에 대해 “현재 독자들의 시각이 상당히 높아졌다”면서 “아직 개업 초기라 독자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서점 직원들이 최대한 노력해 철야 작업까지 하며 매장을 정비하고 있으니 계속해서 지켜봐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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