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페미니즘 모임 결성

“#나는_청소년_페미니스트”

SNS서 해시태그 운동

 

릴레이 인증샷 벌여

청소년 페미니스트 확산

 

3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사무실에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봄다, 태양, 혜민, 지혜(왼쪽부터)씨를 만났다.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오프라인 중심의 모임을 이어가다 12월 SNS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이정실 사진기자
3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사무실에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봄다, 태양, 혜민, 지혜(왼쪽부터)씨를 만났다.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오프라인 중심의 모임을 이어가다 12월 SNS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이정실 사진기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나는_청소년_페미니스트다”라고 선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사회에 페미니즘 지형이 깔리면서 청소년 중심으로도 페미니즘 논의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그들은 인증샷과 함께 자신이 왜 페미니스트가 됐는지 이유를 밝히며 당당하게 본인이 페미니스트임을 외친다.

“청소년 페미니스트”라는 선언이 나오기까지에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자발적으로 모임을 꾸려 청소년으로서 페미니즘 담론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모임을 만들어 이끌고 있는 지혜(20)씨와 태양(19·가명), 혜민(18), 봄다(17·가명)씨 등 팀원들의 눈빛에선 페미니즘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의지와 열정이 엿보였다. “청소년도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을 만들어 이끌어가고 있는 지혜씨. ⓒ이정실 사진기자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을 만들어 이끌어가고 있는 지혜씨. ⓒ이정실 사진기자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만들었어요!”

지혜씨는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이후 집회나 자유발언에 참여하며 다른 여성들이 경험한 다양한 폭력들을 듣게 됐다. 그 중에서 특히 여성 청소년의 ‘말하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 여성들은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이미 여성혐오, 성폭력을 겪고 있었다. “왜 여성들은 성장과정부터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시작으로 지난해 6월부터 여성 청소년들과 페미니즘 집담회를 시작했다. 

“처음엔 소모임하듯 시작했어요. 스무 살이 된 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면서 청소년기에 외모비하로 따돌림 당했던 기억이 밀집적으로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겪은 고민과 청소년 섹슈얼리티 등에 대해 다른 이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지혜씨의 말이다.

페미니즘 모임은 세 명으로 시작해 점점 늘어나 현재는 20여명의 구성원이 꾸려졌다. 이들은 집담회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여성 청소년 성토대회부터 청소년 페미니스트 자유발언대, 등굣길 선전전 등 활발한 오프라인 행동을 통해 청소년 페미니즘을 촉발시켰다.

오는 20~22일에는 페미니즘 캠프 ‘페미:나’를 진행할 예정이다. 더 많은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보고, 우리가 존재한다는 걸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캠프를 기획했다. ‘페미:나’라는 이름은 ‘페미니스트인 나’를 줄인 말이다. 지혜씨는 “일상 속에서 성평등을 이뤄가는 실천들이 페미니즘이라 생각한다”며 “그 서사 안에서 ‘나’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할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짓게 됐다고 했다. 팀원들은 캠프를 알리기 위해 등굣길 학생들을 대상으로 포스터를 나눠주고 해시태그 운동을 홍보하며 선전전을 벌이기도 했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태양(가명)씨. ⓒ이정실 사진기자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태양(가명)씨. ⓒ이정실 사진기자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혜민씨. ⓒ이정실 사진기자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혜민씨. ⓒ이정실 사진기자

“페미니즘에 관심 갖게 된 이유는요”

지혜씨처럼 다른 팀원들도 모임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가정이나 학교, 세월호 시위 등 집회에서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겪으며 자연스레 페미니즘을 체득했다.

태양씨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아져 집회에 나갔다. 그런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하대를 당하거나 누군가에게 종속된 객체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며 “그런 일을 겪고 청소년 인권에 눈을 뜨게 되면서 페미니즘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고 말했다.

혜민씨는 ‘나다움’이라는 잡지를 만들면서 십대 여성 청소년 잔혹사를 주제로 이야기하며 페미니즘을 논하게 됐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세미나를 열고 책도 읽으며 공부를 하다 보니 “페미니즘이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 전에는 외모에 대한 압박 같은 것도 있었는데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서는 그런 강박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봄다씨는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을 하면서 많은 배제의 경험을 겪었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자연스레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됐고, 모임에도 참여하게 됐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봄다(가명)씨. ⓒ이정실 사진기자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봄다(가명)씨. ⓒ이정실 사진기자

“학교에서 느낀 차별과 억압”

학교나 가정이라는 공간은 겉으로 보기엔 따뜻하고 ‘다름’을 포용해주는 곳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지혜씨는 “학교만큼 마초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이 없다”며 “자율성을 발현할 수 없는 교육문화가 학교폭력, 성차별 등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했다.

“학교 안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면 ‘너 메갈이냐’는 딱지가 붙어요. 그래서 학교 안에서 페미니스트를 선언하는 일은 참 외롭고 힘들죠.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학교 안에서의 고립에서 벗어나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기쁨을 느끼게 해줬어요.”

페미니즘은 특히 여학생을 중심으로 더 활발히 이야기되고 있다. 반면 남학생들은 여전히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대안학교에 재학 중인 혜민씨는 실제로 여학생들 사이에선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가 대화의 주제로 자주 오르내린다고 했다. 

혜민씨는 “페미니즘을 긍정적으로만 이야기하진 않지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다들 어느 정도 접해봤고 그것이 자기에게 의미가 있든 없든 뜻 자체는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저에게 친구들이 ‘이런 말 들었는데 왠지 여성혐오 발언 같다’라고 물어올 때가 있어요. 또 제가 있는 자리에선 남자애들이 ‘야, 얘 있으니까 조심해야 돼’라고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죠. 그런 작은 변화들이 쌓여서 우리 사회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봄다씨는 현재 탈학교를 했지만 학교를 다닐 당시 “문예창작 동아리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글을 많이 썼다”며 “학교라는 공간에서 친구들과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지혜, 봄다, 혜민, 태양(왼쪽부터)씨는 청소년, 여성, 소녀에게 정해져있는 정상성의 규범과 정의를 깨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실 사진기자
지혜, 봄다, 혜민, 태양(왼쪽부터)씨는 청소년, 여성, 소녀에게 정해져있는 정상성의 규범과 정의를 깨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실 사진기자

“페미니즘으로 사회 편견 깨고파”

앞으로 이들이 페미니즘 모임을 통해 이뤄나가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그들이 털어놓은 말들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청소년, 여성, 소녀에게 정해져있는 정상성의 규범과 정의를 깨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 사회의 모든 틀을 깨고 싶어요.”(봄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차별에 대해서 ‘나 그거 불편해. 하지 마.’라고 얘기했을 때 공감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랍니다.”(혜민)

“여성 청소년으로서 가정 내에서 받아왔던 억압이 많아요. 그 억압들을 다 부수고 싶어요!”(태양)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 학생이 아닌 청소년, 1인 가구 청소년 등은 한국사회에선 정상성 밖의 존재들로 여겨지죠.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은 청소년을 향한 편견의 틀과 청소년을 얽매는 규격들을 모두 깨는 것이라고 생각해요.”(지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에서 준비 중인 캠프 ‘페미:나’는 후원을 기다리고 있다. 지혜씨는 “정부, 기업의 지원 없이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의 힘만으로 꾸려가고 있어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의 만남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고 했다.

후원계좌 국민 792602-00-040062 오유선

소셜펀치 링크 http://socialfunch.org/youthf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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