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위안부’ 이야기』

서울대 인권센터 조사 끝 연합군 공문서 등 발굴

자료 교차 분석 통해 위안부 실태 명확히 증명

 

김소란(가명)씨의 심문카드. ⓒ서울시
김소란(가명)씨의 심문카드. ⓒ서울시

1926년 경북 군위에서 일곱 딸 중 다섯째로 태어난 김소란(가명)씨는 1941년 봄, 어려운 가정 형편에 “병원에 붕대 같은 걸 씻어주면 한 달에 돈 얼마큼씩 받는다”는 말에 언니와 함께 일본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필리핀 마닐라의 한 시골에 도착했다.

“한 사흘인가 있었는데 군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너무나 놀랐고 무서웠습니다. 쉰이 넘은 일본인 할아버지는 나를 막 발로 차고 말도 못 하게 했습니다. 열흘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살 바엔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씨는 마을에 쏟아진 폭격으로 산을 넘어 도망치다가 미군에 발견돼 마닐라 포로수용소에서 잠시 머물렀다. 이후 그는 필리핀에서 배를 타고 부산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위안부’ 이야기』 표지. ⓒ서울시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위안부’ 이야기』 표지. ⓒ서울시

서울시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함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0인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사례집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위안부’ 이야기』(이하 『위안부 이야기』)를 발간했다고 29일 밝혔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이후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서적은 몇 차례 발간된 적 있지만, 증언과 근거자료를 접목해 분석한 사례집 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안부 이야기』는 서울시가 지난 3월 공모를 통해 선정·지원한 서울대 인권센터 ‘일본군위안부 아카이브팀’의 자료 발굴과 연구 노력을 바탕으로 발간됐다. 아카이브팀은 지난 7~8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태국 현지를 방문해 미·중 연합군 공문서, 포로심문자료, 스틸사진, 지도 등 위안부 관련 자료들을 찾아냈다.

시는 이들이 발견한 미국과 연합국 자료가 위안부 실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역사 사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봤다.

『위안부 이야기』에 담긴 피해 사례를 증언한 10인은 미디어 등을 통해 비교적 많이 알려진 분들 가운데 선정됐다. 시는 “많은 이들에게 그저 ‘위안부 할머니’로만 인식돼 있던 피해 여성들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소개함으로써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김소란(가명)씨의 이동경로, 붉은 선은 동원 및 위안소 이동경로, 파란선은 귀환경로.
김소란(가명)씨의 이동경로, 붉은 선은 동원 및 위안소 이동경로, 파란선은 귀환경로.

『위안부 이야기』 내용은 위안부 피해 여성의 생애사를 다루는 데 집중돼있다. 피해 여성들이 식민지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다가 끌려가게 됐는지부터 해방 후 귀환 여정, 귀환 후 생활상까지 상세히 담았다. 구체적으로 이들의 피해 경로와 귀환 경로를 지도로 표시해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지도는 이들의 증언과 함께 연합군 자료를 통해 입증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돼 그동안 보아왔던 지도보다 상당히 정확한 동선이 담겼다.

또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로서 해방 이후에도 침묵을 강요받았으나 세상의 편견에 맞서 피해 사실을 알리게 된 결정적 계기, 이후 인권 운동에 앞장서며 자신을 넘어 세상까지 위로하려 했던 피해 여성들의 활동 또한 담겨있다.

『위안부 이야기』는 비매품이다. 서울시는 추후 국공립도서관을 중심으로 『위안부 이야기』를 배포해 시민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정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교수는 “이번 사례집을 통해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해 삶을 꾸려온 여성들의 생명력 있는 이야기를 충실하게 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엄규숙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은 데 반해 정작 위안부 백서조차 발간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며 “이번 『위안부 이야기』 사례집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위안부 관련 자료와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아 사료로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구체적 증거를 통해 위안부 실태를 명확히 밝혀내는 데도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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