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 1인가구 증가로 달라진 연말연시 풍속도

싱글끼리 뭉치거나 혼자만의 ‘힐링’ 보내는 젊은 여성 늘어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인식· 제도 변화 필요”

 

올해로 1인가구주 13년차인 조하영(39·가명)씨는 얼마 전 버려진 고양이를 입양했다. 혼자 사는 ‘싱글’들의 연말은 쓸쓸할 것이라고 흔히 예상하지만, 조씨는 요즘 “새로운 가족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도 따스한 연말을 보내는 중”이다. 고양이의 애교에 흠뻑 빠져 온갖 애완 물품을 사들였고, 최근 온라인 반려동물 커뮤니티에서 만난 이들과 즐거운 모임을 가졌다. 송년회, 동창 모임 등엔 참석하지 않았다. “가봤자 ‘쟤 마흔 되기 전에 얼른 구제해야 된다’ ‘새해엔 연애해야지’ 같은 말만 들을 게 뻔해서요. 잔소리는 최대한 피하고 즐겁게 살려고요.”

직장인 김민희(29·가명) 씨와 프리랜서 이현주(37·가명) 씨도 혼자 사는 싱글이다. 두 사람의 연말연시도 우울하고 외로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김씨는 남은 연차 휴가를 써서 태국 여행을 떠났다. 일주일간 파타야의 해변을 즐기다 올 계획이다. 오는 설 연휴엔 일본 온천 료칸에 머물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애인이 없어 외롭지 않느냐’는 말은 그에게 “지금처럼 혼자서도 행복한 내 삶을 진부한 잣대로 평가하는 폭력”에 가깝다. 

 

 

이씨는 크리스마스 날 자택에서 친구들과 함께 ‘먹다 지쳐 죽는 포트럭 파티’를 열었다. 최근 요리 학교를 졸업한 그는 내년 봄 캐주얼 프렌치 비스트로를 열기 위해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새해 소망을 물었다. “식당이 안 망했으면 좋겠고, 국정 혼란과 AI 파동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애인이요? 남자보단 돈과 강인한 체력을 더 원해요.(웃음)”

혼자 살기를 택하는 2030 젊은 여성들이 늘면서 연말연시 풍속도도 달라지고 있다. 결혼을 인생의 목표로 삼던 시대, 크리스마스·연말이면 ‘솔로’라서 주눅 들었던 분위기에 과감히 결별을 선언한 여성들이 증가했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을 좇아 독립적으로 생활하며, ‘코드’가 맞는 이들과 소통·연대하고 있다.  

 

최근 통계청 자료를 보면 1인가구는 1980년 전체 인구의 4.8%에서 2010년 23.9%, 2015년 27.1%로 급증했다. 1인가구 중 여성 비중은 2010년 66.1%에서 2014년 69%로 늘었다. 특히 2030 여성을 중심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다. 2030 1인가구 중 여성 비중은 2010년 41%에서 2014년 50.9%로 약 10%포인트나 증가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 상승, 저출산·이혼 증가와 맞물린” 결과라고 풀이했다. 

“지금은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 ‘대세’인 시대다. 출산·육아의 부담, 경력 단절의 위험 등을 감수하면서까지 결혼을 택하는 여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30 여성들은 성장 과정에서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세대다. 자아실현과 개인 삶의 질 향상에 가장 집중하는 세대가 된 게 당연하다”고 젠더 연구자 앨리스 김 씨는 말했다.

물론 월세·전세 등의 거주 비율이 높아 ‘주거불안’에 시달리고, 강도·성범죄 등 각종 범죄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점 등은 2030 여성 1인가구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다. 저출산 위기의 원인으로 ‘비혼 여성 증가’가 지목되는 등,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필요한 건 ‘남자’가 아니라고 여성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서른 전에 결혼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전 지금 제 삶이 좋아요. 여자 혼자라고 불완전하고, 외롭고 이상한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관심사 비슷한 여자들끼리 모여서 수다도 떨고, 정보도 공유하고, 같이 밥 먹고, 필요할 땐 운전기사도 돼 주고 이사도 도와주고.... 사람들 사는 풍경이 바뀌고 있는 거죠. 결혼해서 애 낳고 ‘정상적으로 살라’고 윽박지르지 말고, 혼자 사는 여성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조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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