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소재 ‘스릴러’부터

세대별 여성 이야기, 여성 퀴어 

다채로운 여성 서사 다뤄 

 

올해에는 여성 서사를 조명한 다채로운 영화들이 개봉했다. ⓒ그래픽 박규영
올해에는 여성 서사를 조명한 다채로운 영화들이 개봉했다. ⓒ그래픽 박규영

2016년 올해는 여성 서사를 조명한 다채로운 영화들이 관객을 찾았다.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수상작 네 편을 포함해 총 9편의 한국 영화를 ‘드라마’, ‘스릴러’, ‘퀴어 로맨스’ 등 장르별로 소개한다.

모성애 소재로 한 ‘스릴러’

‘딸이 실종됐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결국 엄마는 홀로 잃어버린 딸의 흔적을 쫓는다.’

영화 ‘비밀은 없다’와 ‘미씽: 사라진 여자’의 공통된 스토리라인이다. ‘비밀은 없다’에선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내조하던 아내 연홍(손예진)이, ‘미씽: 사라진 여자’에선 이혼 후 육아와 생계를 홀로 책임지는 워킹맘 지선(엄지원)과 조선족 보모 한매(공효진)의 열연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특히 ‘비밀은 없다’ 뿐만 아니라 ‘덕혜옹주’에서도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인 손예진은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에서 배우상을 받았다.

독립영화임에도 4만 관객을 동원한 범죄 스릴러 ‘범죄의 여왕’도 주목할 만하다.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미경(박미경)은 아들이 사는 고시원에서 수도요금이 120만원이나 나오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가 더 큰 사건이 있음을 감지한다. 양복 차림의 조폭, 경찰, 검찰이 아닌 중년 여성이 이끄는 한국 범죄 스릴러라는 점부터가 눈길을 끌었다

 

초등학생부터 노년 여성까지 다양한 연령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혹은 코믹하게 담아낸 영화들이 개봉했다.
초등학생부터 노년 여성까지 다양한 연령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혹은 코믹하게 담아낸 영화들이 개봉했다.

세대별 여성 이야기 다룬 ‘드라마’

가장 대중적인 ‘드라마’ 장르에서도 초등학생부터 노년 여성까지 다양한 연령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혹은 코믹하게 담아낸 영화들이 관객을 찾았다.

상반기엔 유년시절 우정과 고민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우리들’이 개봉했다. 친구가 없어 혼자였던 선(최수인)은 여름 방학식 날, 전학생 지아(설혜인)를 만나 친구가 된다. 선과 지아는 서로의 비밀을 나누며 방학 동안 세상 누구보다 친한 친구가 되지만, 개학 후 학교에서 만난 선과 지아는 서로 엇갈리게 된다. 우리들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은 섬세하면서도 뛰어난 연출력을 인정받아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감독상을 받았다.

여성 청소년을 전면에 내세운 성장드라마 ‘걷기왕’도 있었다. 선천적 멀미 증후군으로 왕복 4시간 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니는 고등학생 만복(심은경). 만복은 매일 왕복 4시간 거리를 걸어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교내 육상부에 들어가 ‘경보’를 시작한다. 딱히 잘하는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던 만복이 경보를 시작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코믹하게 담아냈다.

‘굿바이 싱글’은 여성 원톱 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스캔들을 몰고 다니는 톱스타 고주연(김혜수)의 갑작스러운 임신 발표에 전 국민이 들썩인다. 점차 내려가는 인기와 믿었던 남자친구의 배신에 충격받은 고주연이 ‘진정한 내 편 만들기’에 돌입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려냈다. ‘굿바이 싱글’은 누적 관객 수 210만명을 기록하며, 올해 한국영화 관객 수 14위에 오르기도 했다.

노년 여성의 삶을 조명한 ‘죽여주는 여자’도 지난 10월 다양성영화 흥행 1위에 올라 화제가 됐다.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 소영이 한때 자신의 단골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 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고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진짜 ‘죽여주게’ 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담았다. 윤여정은 이 영화로 한 해 동안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을 펼친 여성영화인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았다.

 

올해 충무로에선 여성 퀴어 영화들도 흥행에 성공했다.
올해 충무로에선 여성 퀴어 영화들도 흥행에 성공했다.

편견 딛고 흥행 성공 ‘여성 퀴어 로맨스’

올해 충무로에선 그동안 비주류로 평가받았던 퀴어물, 특히 여성 퀴어 영화가 속속 개봉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해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하녀 숙희(김태리) 사이의 로맨스와 스릴러를 그린 영화다. ‘아가씨’는 개봉 전부터 제69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으며 화제를 모았고 누적 관객 수 428만명을 돌파하며 충무로에서 가장 흥행한 퀴어 영화가 됐다.

독립영화계에서는 이현주 감독의 ‘연애담’이 누적 관객 수 2만명을 돌파하며 주목받고 있다. 연애담은 미술을 공부하는 윤주(이상희)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취하는 지수(류선영)가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여성 퀴어 영화다.

영화 업계는 여성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수요가 커진 배경으로 ‘페미니즘 열풍’을 꼽았다. 한 극장 홍보 관계자는 “남성 주류의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에 질린 관객들이 여성 서사가 담긴 영화들을 찾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황미요조 영화평론가 역시 “페미니즘 열풍이 불면서 ‘남자판 영화들만 쏟아지는 게 불편한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를 많은 여성이 깨닫고 함께 행동하고 목소리를 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여성 영화 팬덤이 두터워졌다. 여성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바라고 영화 속 여성 서사 찾기를 즐기는 관객층이 확고하게 형성됐다.” 황미 평론가는 “‘비밀은 없다’ ‘우리들’의 경우 상업적으로 엄청난 흥행 수익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연말인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라며 “시장적 가치와는 별개로 여성 영화의 생명력을 연장해주는 팬덤의 확장이 올해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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