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5000명∼최대 3만” 한국 군인, 노무자들

베트남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 낳고 ‘줄행랑’

 

한국 아버지 찾아온 아이도 대놓고 ‘푸대접’

친자소송서 지고도 모른체… 남성들 책임감 의심스러워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한국군은 아직도 사과를 안 하고 있다. 사과를 한다고 한국군 참전병사들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은 아닌데 왜 그러는 것일까. 사진은 하노이 시내 풍경. ⓒ뉴시스·여성신문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한국군은 아직도 사과를 안 하고 있다. 사과를 한다고 한국군 참전병사들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은 아닌데 왜 그러는 것일까. 사진은 하노이 시내 풍경. ⓒ뉴시스·여성신문

베트남에선 오랜 기간 전쟁이 벌어졌다. 2차대전 당시에는 일본과 싸웠고, 그 이후에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프랑스와 무려 9년간이나 싸웠다. 프랑스를 몰아냈지만 베트남에게 돌아온 건 분단이었다. 결국 완전한 통일을 위한 전쟁이 시작되는데, 이게 우리가 아는 월남전이다.

“베트남서 민간인 9000명 학살”

이 싸움에 미국이 참전한 것을 비판하고 싶진 않다. 자기네끼리 싸우는데 왜 외세가 간섭이냐는 논리가 맞다면 우리나라는 진작 공산화됐을 테니 말이다. 우리나라가 이 싸움에 끼어든 것도 마찬가지다. 당시 우리에게 미국의 부탁을 거절할 권한이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도움을 받아놓고 그 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다.

1964년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우리나라는 30만명의 병사를 파견했다. 우리나라 남자들의 용맹성이야 말해 무엇하냐만 때론 그 용맹함이 너무 나가곤 했으니, 바로 민간인 학살이다. 베트남 평화운동가 구수정 박사에 따르면 한국군은 80여개의 마을에서 9000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단다. 한 마을 사람들 전부가 같은 날에 죽는 끔찍한 일을 수십 번이나 자행한 것이다.

빈호아 마을을 비롯한 60여곳의 마을에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도대체 거기 간 남자들은 왜 민간인을 학살한 것일까. 이유는 있다. 베트남이 여러 강대국들을 차례로 무너뜨린 건 바로 게릴라전, 전혀 사람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곳에서 민간인 복장을 한 사람이 나와 아군을 쏘는 경험을 몇 번 하고나면 모든 이가 다 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노인이나 임산부까지 죽여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직접 전쟁에 나가지 않은 이가 그 상황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민간인 학살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닌 만큼 전쟁이 끝난 후 그 사실에 대해 사과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컨대 미군은 밀라이 마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고, 가해자를 처벌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며, 그 마을에 병원과 학교를 지원하는 일도 뒤따랐다.

하지만 우리나라 남성들은 아직도 사과를 안 하고 있다! 사과는 둘 사이의 꼬인 매듭을 푸는 첫 단추다. 게다가 사과를 한다고 해서 사망자 5000명을 포함한 한국군 참전병사들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사과를 안 하려는 것일까?

남자는 직진? 그래서 사과 안 하나

아마도 그건 미군에 비해 우리나라 남자들이 훨씬 더 남자답기 때문이다. 남자다움이라는 게 뭔가. 잘못해도 사과하지 않는 것이다. 쩨쩨하게 과거를 돌아볼 게 아니라 그냥 앞으로 내달리는 것 말이다. 오죽하면 ‘남자는 직진’이란 말도 있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직진을 좋아하는 남성들이, 물론 경우는 다를지언정, 일본에 대해서는 사과를 안 한다고 징징거리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이다. 나는 직진, 너는 후진이란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일까?

한국남성들의 남자다움이 드러나는 또 다른 사례는 바로 라이따이한이다. 베트남 여자와 한국인 남자 사이에 태어난 이를 가리키는 라이따이한은 ‘잡종’을 뜻하는 베트남어인 ‘라이’와 우리나라를 뜻하는 ‘대한’이 합쳐진 용어다. 부산일보에 따르면 그 숫자는 최소 5000명에서 최대 3만명까지란다. 물론 이게 다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이 낳은 아이는 아니다. 그 당시 군인들뿐 아니라 베트남 특수를 기대한 노무자들도 베트남에 파견됐는데, 주로 정글을 다니던 군인들보다는 노무자들이 베트남 여자를 만날 기회가 더 많았으니, 이들이 낳은 아이가 많았으리라.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는 얘기지만, 한국 남성들은 정력이 굉장히 센 편이다. 넘치는 정력을 주체하지 못해 강간 사건이 연간 3만건 이상 일어나고 있는데, 그 숫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게다가 이 수치는 신고된 것만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로 발생하는 빈도 수는 그보다 몇 배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강간 대신 성매매를 택했는데, 그래서 이들은 성매매특별법을 없애 달라고, 제발 합법적으로 할 기회를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다른 나라로 나가서 성매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 필리핀, 중국, 호주 등에서 한국 남성의 정력을 떨치고 있는데, 그러다 외국 경찰에 적발돼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해외 성매매 사범의 숫자는 2012년 38명, 2013년 64명, 2014년 94명, 2015년에는 387명으로 크게 늘고 있는데 강간 숫자도 같이 늘어나는 걸 보면 한국 남성이 점점 정력이 세지는 것 같아 흐뭇하다.

이렇게 정력이 센 한국남성들을 베트남에 보내놓았으니 라이따이한의 양산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 남성의 높은 책임감에 걸맞지 않은 일이 생겼다. 거기서 만난 여자와 아이는 당연히 한국에 데려왔어야 하건만 대부분은 자기 혼자만 빠져나오고 만다. 물론 이유가 있다. 전쟁에서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미국이 져버리자 당황한 나머지 가족들을 챙길 겨를이 없었을 터였다.

차별로 고통받은 라이따이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부에 요청하든 개인적으로 노력하든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데려와야 할텐데, 실제 그렇게 한 남자가 거의 없다. 그렇게 부르짖던 남자들의 책임감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베트남에서 라이따이한들은 심한 차별에 시달렸다. 혼혈에 대한 차별에 더해 적국 남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에서의 생활이 어려워 한국으로 아버지를 찾아온 아이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를 두고왔다는 죄책감이 더해져 두배로 반가워해야 할 테지만, 정말 놀랍게도 아버지는 그가 자기 아이임을 부정했다. 나중에 친자소송을 통해 아들로 인정받은 뒤에도 아버지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건 특수한 예일까. 다음 기사를 읽어보자.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냉대에도 잡초처럼 살아남은 라이따이한들은 이제 3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이들은 빛바랜 사진, 30년 전 주소를 유일한 희망으로 아버지를 찾아 한국으로 오고 있다. 대부분 서울 왕십리 봉제공장, 경기도 안산 기계공장 등지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아버지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버텨 나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아버지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다가 설사 아버지를 찾았다 하더라도 친생자로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다.”(경향신문 보도 인용)

 

그러니까 위에서 소개한 사례가 개인의 일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기서도 이유는 있다. 이미 포기하고 한국 여자와 가정을 꾸렸는데, 갑자기 아들 혹은 딸이 찾아오면 당황할 수밖에.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남자답고 책임감도 강한 한국 남성들이 자기 DNA가 섞인 자식을 외면하는 현실은 남성들의 책임감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문까지 품게 만든다.

남성들이여, 정력이 센 건 좋은 일이지만 너무 발휘하지 마시라. 책임감이 없는 정력 발휘는 모두에게 비극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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