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민주주의 모범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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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숙자 회장(36세)을 만나기 위해 포항여성회 사무실 문을 열었다. 순간 눈에 들어온 건 형형색색의 손바닥 모양이 서명처럼 찍힌 ‘호주제폐지운동’이라고 적혀있는 대형 판넬이었다. 지난 해 5월 여성회 창립 5주년 기념 문화행사로 열린 ‘딸들을 위한 평등, 평화의 거리’ 때의 퍼포먼스 결과물이라고 한다. 김조 회장은 “3년 전부터 부모 성을 같이 써서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김조숙자’라고 불러줘요. 이젠 내가 원래는 ‘김숙자’였는지도 잊어버렸어요. 어머니가 굉장히 좋아하시죠”라고 말문을 연다.

포항여성회 발족을 준비하기 시작한 93년부터 본격화된 그의 여성운동 이력을 들어보았다.

“아들만 최고라는 할머니께선 우리 딸들은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도 보내지 않으려고 했지요. 그래서 아들들은 학교로 갔고 딸들은 돈벌러 일터로 간거죠. 방학 때면 대구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언니들한테 갔어요. 야근 할 때면 따라가 돕기도 했는데, 섬유공장이라는 데가 환경이 굉장히 열악해요. 무더위와 가루 속에서 일하는 언니들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아들은 대학, 딸은 일터’ 거부해 시작한 운동

이렇게 성차별적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가 여성운동을 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는 5녀 2남 중 막내지만 다행히 대학에 갈 수 있었다. 83년 학생회가 부활돼 3학년 때 영남대학교 사범대학 총여학생회장에 직선제로 당선되면서 그의 여성운동 행보는 시작되었다. 이후 영남대학 총여학생추진위원회와 사범대 여학생회를 따로 만들어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졸업 후 88년 포항시의료보험조합(현-국민의료보험공단 포항지사)에 입사해 직장내 노조를 만들어 3년간 지부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99년 10월에 12년 동안 근무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들어가 보니까 여성들은 6급에 제한해서 뽑았더라구요. 87년 12월에 남녀고용평등법이 통과됐지만, 제가 시험칠 땐 그 법이 없었어요. 같이 대학을 나왔는데 남자만 대리도 있고 5급도 있더라구요, 글쎄… 그때 평민당 박영숙 부총재에게 건의문도 내고 국회에 항의 했어요. 그후엔 승진할당제를 요구하게 됐어요. 내 직장에서 내가 부당한 문제들에 부딪치다 보니까 노동조합을 만들게 됐고 지부장으로 열심히 일했었지요. 그러다가 99년 5월에 무더기 승진이 있었어요. 오랫동안 승진할 기회가 없었는데 좋은 기회다 싶어 몇몇 공단 여직원들과 ‘승진할당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일정 비율 여성들의 승진을 요구했죠. 그렇지만 노조와 많이 부딪쳤어요. 남성 중심적인 노조와 여성운동과의 접점을 찾지 못했죠…그래서 절이 싫으니까 중이 떠난다는 심정으로 파업 중인 8월에 사표를 냈어요.”

김조 회장은 93년 5월 포항여성회 창립준비위원장으로 조직 결성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여성운동판에 뛰어들었다. 이후 95년 5월 18일 창립대회를 치르고 99년 4월 마침내 경북도청에서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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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여성회 사무실에서 실무자들과 함께 한 김조숙자 회장(왼쪽에서 네 번째).

여직원과 합세해 승진할당 추진위 만들어

“92년 노조지부장을 그만두고 ‘또하나의문화’에서 나온 책들을 보게 됐어요. 그 책들 속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과 답답함을 풀 수 있었지요. 그러다 우연히 대구여성회 회지를 보면서 이런 모임이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어요. 새로 조직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기에 한창 활동 중인 YWCA를 찾아 갔어요. 마침 한 달에 한 번 토론하는 소모임이 있었어요. 다음달 토론 주제를 정할 때 제가 성폭력에 대해 하자고 했더니 다들 의아해 하더라구요. 그때 제 주위엔 윤간당한 친구도 있었지만 92년 말만 해도 성폭력 문제는 쉽게 말을 꺼내놓을 주제가 아니었지요. 거금을 들여 비디오 기기까지 구입하면서 토론 발제를 준비했죠. 그런데 6명의 여성회원들이 하는 말이 요즘은 여자들이 더 문제가 있다고, 여자들이 꼬리치니까 문제들이 생긴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헌 잔을 씻어 물을 채우는 것보다 새 잔에 물을 채우자는 생각으로 단체를 새로 만들어야겠다고요.”

특히 그는 딸살리기 운동의 일환인 호주제 폐지운동과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의 인권보호에 몰두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구조조정 과정 중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배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에도 주목한다.

“가정폭력상담소, 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며 우리나라에선 여성의 권리찾기가 곧 인권운동이란 것을 절절히 느낍니다. 관련법이 제정, 실행돼도 법 집행자들이 피해자의 인권보호나 권리를 제대로 인식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특히 실질적인 폭행은 아니지만 교묘히 치졸하게 가해지는 잔인한 폭력은 그것을 법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에 맞닥뜨리게 되면 분노하게 되죠. 그래서 사회적으로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검찰과 경찰, 법조인, 의료인 등 각계 관련분야 전문가들과 긴밀히 연대하려 노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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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5월 포항여성회 창립 5주년 기념식장에서. 지은희 여성연합 상임대표, 박필근 전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김조숙자 회장, 이미경 민주당 국회의원과 함께(뒷줄 왼쪽부터).

호주제폐지는 딸 살리기 운동

그는 여성회 창립 때부터 95년 포항지역 여성의식 조사, 96년 기혼여성 대상 지역 여성의식 조사, 97년 노인의식 실태조사, 98년 편부모가족 실태조사, 99년 여성실업 실태조사 등 지역 여성문제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 현장조사들을 토대로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가는’ 친근감 있는 운동을 하고 싶어 한다. 가령, 반상회나 아파트자치회 등에 정기적으로 ‘사랑방 좌담회’란 자발적 모임도 기획중이다. 또한 여성의 정치세력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그나마 삶의 정치, 참여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주는 곳이 여성단체라 할 수 있지만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지 못한 한계도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여성학과 대학원에서 여성정치를 연구하고자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그 자신을 포함해 ‘정말 괜찮은 여성운동가’란 평을 들을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7년 동안 여성운동을 하면서 여성학을 알지 못하고 운동했던 사람으로 답답함을 많이 느꼈어요. 공부를 하면서 한 게 아니라 현장에서 느끼는 열정과 분노로만 일을 해왔어요. 좀 더 체계화하고 언어화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창피하게도 포항엔 여성의원이 한 명도 없어요. 연령별로 20대부터 50대까지 4∼5명을 국회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일정한 수가 되지 않으면 대표성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에 단 1명 정도라면 희망하지도 않아요. 무엇보다 여성들을 대표하고 운동으로 신뢰할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어요.”

<포항= 권은주 경북지사 통신원>

김조숙자 회장 약력 1965년 경북 영덕 출생. 88년 포항시 의료보험조합 입사 후 90∼92년 노조지부장 역임. 93년 5월 포항여성회 창립준비위원장, 95년 5월 포항여성회 회장 취임. 98년 대구경북여연 공동대표 역임. 99년 3월 사단법인 설립허가로 포항여성회회장 재취임, 2000년 3월 (사)포항여성회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장 취임. 99년 7월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장 수상.

2001년 경북 여성 신년교례회

안입는 옷 모으기·사랑의 자투리 991 캠페인 선포

2001년 경상북도 여성 신년교례회가 지난 4일 11시 경주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경북여성단체협의회(회장 채옥주, 이하 경북여협) 주관으로 이의근 경북도지사를 비롯한 기관단체장들과 500여 명의 여성지도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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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옥주 경북여협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난 해 지역의 등불이 되어 어두운 곳을 비추면서 봉사와 실천으로 지역 여성운동의 주도적 역활을 잘 수행한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새해에도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능력있고 강인한 여성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같이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이의근 도지사도 인사말을 통해 “올해는 여성부 신설로 여성정책 과제들을 풀어갈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앞으로도 여성권익 신장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도지사가 될 것이다”라고 말해 격려 박수를 받았다.

도립교향악단의 연주와 축가, 경주시 자원봉사팀의 수화 합창으로 시작된 이날 행사에는 사랑과 희망을 나누는 자리도 함께 마련됐다. 신년교례회를 통해 ‘안입는 옷 모으기’ 운동과 99명이 1 사람을 돕는 ‘사랑의 자투리 991 캠페인’이 선포됐다. 이 캠페인의 취지는 어려운 경제현실 속에 소외되고 고통받는 우리의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경주=권은주 경북지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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