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한/한국문화복지협의회장, 문화비전 2000위원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현재로서는 우리의 최대 우량은행이 멀쩡한 평일에 문을 닫고 있는 것을 보면서 2000년의 연말을 보냈다. 같은 시간, 한국 민주 제도의 상징적 장소인 명동성당의 앞마당은 쓰레기더미에 묻혀 있었다. 아직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각종 시위의 참가자들은, 주장은 격렬했지만 자신의 쓰레기를 치울 줄은 몰랐다.

그런가 하면 대학 특별전형에서는 급기야 수능시험 400점 만점자까지 탈락하는 사례를 만들었다. 그것이 창의력이나 상상력의 개인별 능력이 고려되어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점수로만 표기되는 수치상 여러 항목의 집계때문이라고 설명되었다.

그리고 국가적 창조력의 척도가 되는 코스닥 주가는 지난 한 해동안 5분의1로 줄었다. 단순한 산술적 계수로 70조원이 사라졌다.

연말 마지막 뉴스는 지역의료보험조합의 재정이 1월2일쯤 바닥이 날 것이라는 것이었다. 국고지원이나 은행차입이 없으면 연초부터 보험급여 지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 더. 새천년준비위원회가 막을 내렸다. 문화적 상상력을 책임졌던 심볼의 기능이 이 궁핍한 시대에 무슨 쓰잘데없는 일인가라고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그리고 문화에도 상징적으로나마 희망이나 기대가 남아 있지 않은 형국으로 21세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2001년의 덕담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 시스템의 혁명이 가시화되던 1980년대 중반, <시간속에서 생각하기: 정책결정자들을 위한 역사의 이용>이라는 책을 쓴 리쳐드 노이슈타트는 이런 표현을 했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단지 법조계의 의견이라는 제한된 프리즘을 통해 배운 역사만을 알고 있는 변호사들, 자신의 경제사상 외엔 어떠한 경제사나 경제 사상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경제학자들, 과학사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과학자들, 자신들은 역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기술자들, 자신의 학문을 수박겉핥기 식으로밖에는 가르쳐주지 않는 무수한 경영대학원들, 창의성을 가지고 모든 종류의 온갖 역사과목을 교묘하게 피해다니며 학사학위를 따낸 막연한 일반론자만을 양상해 왔을 뿐이다. 우리의 정부와 정치는 이러한 사람들로 들끓고 있다.’

이 문장을 우리의 현실로 표현한다면 더 치열해져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아무리 격하게 누군가가 이렇게 쓴다 해도 오불관언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또한 21세기 벽두에 우아한 담론을 펼 마당이 없다.

앤더슨 컨설팅의 경영자가 쓴 책을 연초에 한권 들추어 보았다. ‘불행하게도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을때 사람들에게 변화를 납득시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기업의 주주들에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은 5년 후에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므로 전혀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값비싼 실험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한번 상상해 보라.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사업현실이다.’ (로버트 볼록).

우리의 현실은 지금 앞으로 5년의 전망이 아니라 지나간 5년의 평가마저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의 요구는 대부분 5년 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혼자서 변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마술같은 재주는 해리포터에게도 없다. 그러나 어떤 일이나 조건도 5년을 유지해 가기가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21세기는 인간에게 매우 당황스럽고 값비싼 실험의 시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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